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오랫동안 할머니와 살아온 친구가 있었다.
할머니는 손녀가 안쓰러워 그녀를 더 살뜰히 챙기셨다. 그러나 나이 든 할머니는 젊은 부모들을 따라가는 일이 힘에 부치셨다. 손녀 세대에 대한 정보가 너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할머니와 손녀는 티격태격할 때가 많았다. 그럼에도 손녀는 할머니의 헌신적인 사랑을 모르지는 않았다.
그랬던 손녀가 얼마 전 집을 나와 근처에 월세를 얻었다. 가까운 거리였지만 혼자만의 공간을 꾸리게 된 이유는 할머니와의 갈등 때문이었다. 갈등이 주는 괴로움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할머니와의 갈등은 이십 대 중반이 넘어가면서부터 심해지기 시작했다. 할머니의 세계와 손녀의 세계가 너무 달랐기 때문이었다. 손녀가 나이를 먹을수록 할머니는 하루라도 빨리 결혼을 했으면 하셨다. 손녀가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스물다섯이 갓 넘은 손녀에게 선을 주선했다. 상대 남자들은 하나같이 경제적으로 안정된 사람들이었고, 심지어 나이가 사십이 넘은 남자를 만나보라고 채근할 때도 있었다. 결혼할 상대라기보다 손녀를 보살펴 줄 상대를 원하는 듯했다. 그럴 때마다 손녀는 치를 떨었다. 시대가 바뀌었다고, 그녀는 할머니가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며 푸념했다.
할머니의 시대는 여자가 남자를 잘 만나야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는 시대였다. 그러나 손녀의 시대는 달랐다. 손녀는 남성의 경제력에 기대는 삶은 오히려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간극은 결국 좁혀지지 않았고, 티격태격하던 갈등은 서로를 괴롭힐 만큼 심해져만 갔다.
결국 손녀는 무리를 해서라도 분리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멀지 않은 거리에 집을 얻었고, 일주일에 한 번은 할머니를 보기로 했다. 할머니가 미웠지만 여전히 고맙고 사랑스러웠기 때문이다. 그 친구의 말을 듣고 난 후 나는 “굉장히 현명한 선택을 했네요.”라고 반응했다.
그녀는 막상 혼자가 되어 보니 경제적으로도 힘들고 집안일도 만만치 않다고 했다. 그럼에도 해방감을 느꼈기 때문에 스스로의 선택을 후회하진 않았다. 일주일에 한 번 할머니를 만날 땐 함께 식사를 했다. 할머니는 반찬을 하나라도 더 챙겨주려 했고, 손녀는 너무 많은 반찬이 부담스러워 하나라도 놓고 가려했다. 손녀를 아끼고 사랑하는 할머니의 모습 그대로였다.
손녀는 독립을 통해 해방을 누림과 동시에 희미해진 할머니의 사랑을 다시 선명히 느꼈다. 그녀는 안정된 자신의 삶을 지켰고, 할머니를 지속적으로 방문하는 일을 빼먹지 않음으로 인해 손녀를 걱정하는 할머니의 마음도 안심시켰다. 이 모든 일들은 손녀의 지혜로운 선택 덕분이었다.
놀라웠던 점은 이 친구가 현명한 선택을 했다는 나의 말에 “이런 소리는 처음 들어봐요.”라고 반응한 부분이었다. 왜 그렇게 반응을 했을까? 그녀는 스스로를 지혜와 지식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어려서부터 소심한 성격 때문에 대인 관계에도 어려움이 있었고, 두 세 사람 앞에서 말하는 것조차 힘들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자존감도 점점 낮아졌고, 능동적이고 주도적인 삶의 모습을 가지기가 어려웠다.
할머니 입장에서는 손녀의 이런 의기소침한 모습을 보며 급하게 선 자리를 알아봤는지도 모른다. 최선을 다해 손녀를 보살피던 할머니는 여전히 보살핌이 필요해 보이는 손녀가 걱정되었을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몸에 힘이 빠지고 기억력도 이전 같지 않음을 느낄수록 손녀에 대한 걱정이 커졌을 수 있다. 그럴수록 빨리 시집을 보내야 한다는 의무감이 생겼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내 생각이 잘못된 생각이었을까? 재차 생각해 봐도 손녀의 선택은 지혜로운 선택이었다.
하지만 더 많은 친구의 이야기를 듣게 되니 왜 그런 반응을 보였는지 이해가 되었다. 사람들은 편견을 가지고 사람을 대할 때가 있다. 또 답답함을 느끼는 상대에게 존중보다 함부로 대하는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그녀의 주변에는 다그치고 타이르며 가르치려 드는 사람이 많았다. 그렇다 보니 그녀는 사건을 긍정적으로 해석하기보다 부정적으로 해석하게 되었을지 모른다. 예컨대 사람들은 친구의 선택을 두고 할머니에게서 제대로 벗어나지 못한 답답한 선택으로 평가하기도 했고, 갈등을 적극적으로 해소하려는 의지가 없는 무기력한 선택으로 해석하기도 했었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스스로를 대견하게 여기는 마음이 줄어들어 갔는지도 모른다.
타인의 감정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자기 이야기에 빠져있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평가보다 더 마음이 아픈 것은 자신에 대한 편견을 가지는 일이다. 어떻게 그 삶의 서사를 다 이해할 수 있겠냐마는 현명한 선택을 스스로 좋게 여기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었다.
다행인 점은 “현명한 선택을 했네요.”라는 말에 그녀가 감동을 했다는 것이다. 나의 말이 누군가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는 점은 좋은 일이지만 보다 더 좋은 일은 자기 안에 있는 가능성을 직면하는 일이다. 스스로에게 있는 지혜로움, 밝음, 사랑스러움 등을 발견하고 기뻐할 때부터 존엄한 삶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런 경험이 있었다. 서른이 넘은 나이에 택배 상하차 아르바이트를 하며 길을 찾으려 애썼던 적이 있다. 그때 나의 긴 이야기를 흐트러짐 없이 귀 기울여준 사람을 만났다. 그 사람은 나의 삶에 대해 “용기 있는 선택”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때 나는 지쳐있던 마음이 가득 채워짐을 느꼈었다.
타인에게서 또한 나에게서 좋음을 발견하고 그 좋음을 충분히 좋다고 말해 줄 수 있는 힘. 그 지혜로운 힘이 그 친구와 나의 삶을 일으켜주었듯이 넘어져있는 또 다른 누군가의 마음도 일으켜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