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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Nov 14. 2024

고독의 서사

외로움의 곁에 서서

내가 고독을 처음 알아차린 게 언제였을까요?


슬기로운 생활을 배우다가 집에 돌아와 대문을 열고 텅 빈 마당을 바라봤을 때, 괜히 식구를 불러보며 여기저기 방문을 열어 보았을 때, 할아버지는 열심히 붓글씨 연습을 하고 계셔서 나를 돌아봐 줄 여력이 없으셨고, 나는 길로 옆집에 놀러 나갔습니다. 어쩌면 그때 어슴푸레 알고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읍내로 전학을 갔습니다. 삼십 명은 족히 넘어 보이는 아이들이 다 나를 쳐다봅니다. 일곱 명이 큰 교실을 사용하던 때와는 달리 교실이 꽉 차 있었는데도 나는 외로웠던 것 같습니다.  


첫 교복을 입고, 새로운 친구를 사귀었습니다. 셋이 친하게 지내면 좋으련만 나를 빼고 둘이 더 친하게 지내는 게 속상했습니다. 짓궂은 장난을 치며 신이 난 친구들과 어울리려면 나도 좀 용기를 낼 필요가 있었을 텐데 왜 겁이 났던 걸까요? 나는 용기가 없어서 외로웠는지도 모릅니다.


키가 훌쩍 자라 어른티가 나던 때 여고생들과 노래방에 갔습니다. 그때는 왜 말 한마디 건네는 게 그렇게 어려웠을까요? 초등학교 땐 곧 잘 어울렸었는데 몇 년을 남자들하고만 어울리다 보니 어색하기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친해지지도 못하고 그냥 노래만 불러댑니다. 


신기하게도 대학에 가니 언제 그랬냐는 듯 같이 지내기가 편해집니다. 같은 과 학생끼리 술도 마시고, 노래방도 갑니다. 환영회와 모꼬지에 학술대회까지 모이고 또 모입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그렇게 자주 만나고 어울리는 데 집에 돌아오면 마음이 휑합니다.


첫 연애를 시작했습니다. 한 시라도 붙어 있고 싶어 시간표를 맞추고, 집에 갈 땐 꼭 여자 친구 집을 들렀다가 갑니다. 그때 나는 고독을 잠시 잊어버린 듯했습니다. 함께이지 못한 시간이 아쉬웠지만, 아쉬움과 고독 사이에는 틈이 있었습니다. 이제 나는 외로움을 잊은 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점점 힘이 듭니다. 좋아서 하던 일들이 왜 괴로운 일이 되어버리게 되는 걸까요? 사랑이 이전만 못 한 이유를 말하자면 길어질 수 있겠지만 길기만 할 뿐 핵심은 찾지 못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다시 외로움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이전이라면 옆집에라도 놀러 갔을 텐데 이제는 자주 그러진 않게 되었습니다. 어느새 나는 혼자서 이야기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렸을 적 나와 마주 앉아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어저께의 나에게 실망을 하기도 합니다. 이랬다면 어땠을지 저랬다면 어땠을까 하고 조언을 해보기도 하고, 혼자서 배우가 되어 연기를 해보기도 합니다. 그러고 있는 내가 고독해 보이기도 했지만 텅 빈 마당을 보는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지나온 세월을 돌이켜보면 내가 외롭지 않았던 때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가끔은 잊어버릴 만큼 옅어지기도 했지만 나는 늘 외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아이러니한 건 내가 외로운 사람이란 걸 가르쳐 준 게 바로 고독의 시간이었다는 점입니다. 혼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될 때 나는 더 선명히 외로움을 마주하게 됩니다. 스쳐 간 인연들과 불현듯 찾아오는 깨달음들이 어우러져 외로운 마음을 달래주기 시작합니다. 


당신에게 나의 고독을 고백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당신의 고독을 함께 느낄 수 있어서 기쁩니다. 떠난 자리를 그리워하고 고마워할 있는 우리가 서로 고독한 사람이었기 때문인 같습니다. 


나도 당신도 고독한 채로 또 하루를 살아가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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