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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Nov 03. 2024

회상

나아지고 있습니다.

술 취한 듯 살았던 때가 있었다.


휩쓸리기도 잘했고, 한 번 휩쓸리면 멈추기도 어려웠다. 절제가 필요할 때도 감정적이었고,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도 부끄러워할 줄도 몰랐다. 애써 중심을 잡아보려 하지만 이내 비틀거리는 사람과 같았다. 


스스로 서고 걷는 것 외엔 돌아볼 겨를도 없었다. 누군가의 가슴에 못을 박아 놓고도 미안한 줄을 몰랐다. 희미하게라도 타인의 아픔을 알아차렸으면 멈춰서 돌이켜 볼 만도 했지만 그러질 못했다. 취한 기분을 느끼기 위해 또 술을 찾듯이 나는 이내 휩쓸려 살고 있었다.


어쩌면 그렇게 취한 듯 살아야 아프지 않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다른 이의 마음에 박힌 못을 신경 쓰지 않고 살았던 건 내 마음에 박힌 못 들을 찾아내게 될까 봐 겁이 나서 그랬던 거다.


내가 휩쓸리는 삶에서 벗어나고자 마음을 먹었던 이유는 아무리 휩쓸려도 사라지지 않는 불행한 마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거절하기 어려워 쩔쩔매고, 그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아 웃었다. 웃음 뒤에 감춰진 볼품없는 모습들은 감추려고 할수록 선명해졌다. 외로움을 견디기 힘들어 누군가를 찾았으면서, 외로움 때문에 사람을 만나는 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동떨어진 마음들이 한곳에 머무르게 되면서 계속 진통을 느꼈다. 


급식실 공사로 인해 도시락을 싸서 다녔던 적이 있다. 가방 하나를 더 들고 다니는 일이 불편했고, 다 먹은 도시락통을 다시 가져와야 하는 게 또 귀찮았다. 나에게 불행은 그 도시락통과 같은 종류였던 듯하다. 불편하고, 귀찮아도 늘 지니고 다녀야 했었다. 


늘 지니고 다녀야 하는 걸 늘 감추려 드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박힌 못을 빼내어도 자국은 남듯이 나의 마음에도 나와 관계된 마음들에도 자국이 남아 있었다. 내가 그 자국을 어찌해 볼 수 없었던 건 내일 또 도시락을 싸 와야 했기 때문일 수 있다. 불행하더라도 내일을 살아가야 하기에 정신을 차리고 살아보려고 애썼다.


삶의 크고 작은 불행들은 나를 어렵게 만들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따뜻함이 묻어있기도 했다. 떨쳐버리고 싶어도 지니고 다녀야 했던 따뜻한 보온 도시락과 같은 특징이 있었다. 버리는 게 아니라 잘 곱씹고 골고루 생각하여 비워내야 했던 거다. 소화가 되지 않으면 조금 움직이거나 가볍게 걸어도 보듯이 그렇게 지내와야 했다. 


아주 서툴고 아팠어도 잘 소화하면 살이 되고 만다. 어지러운 마음들이 조금 정리되어 가고, 감추려 애쓰지 않고 차분히 받아들여 보는 일이 잦아진다. 그렇게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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