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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Oct 17. 2024

믿어보기로 했다

영원한 사랑에 대하여

영원한 건 없다. 모든 것은 변하고 소멸한다.


만약 영원한 것이 있다면 초월을 떠올려 보아야 할 테다. 그러나 유한한 존재가 초월을 입증할 방법은 없다. 다만 할 수 있다면 초월을 믿어볼 수는 있겠다.


나는 그 초월을 믿어보고자 한다. 더 구체적으로 믿어보고자 하는 것은 초월적 사랑, 곧 영원한 사랑이다. 


지금까지 내 삶에서 일어났던 사랑은 늘 변해왔다.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뜨거웠어도 허무하리만치 빨리 소멸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어떤 사랑은 위태로웠어도 견디어 냈고 조금씩 성숙해져 왔다. 어떤 차이였을까?


순간적인 마음이 컸다고 하여 영원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영원에 가까웠던 건 이러나저러나 곁에 있어야 하는 존재에 대한 사랑이었다. 순간의 사랑에 빠져 곁에 있음을 알아차리지 못해도 돌아서면 여전히 곁을 내어주는 존재. 예컨대 가족이 그런 존재일 있겠다. 마음을 나누는 벗이 있다면 또한 감사할 일일 것이다.

 

나의 방황에도 나를 떠나지 않고, 나의 서투름에도 곁을 지키는 사람. 그런 존재는 오래 두고 사랑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나의 순간적인 사랑들을 돌아보게 되기도 했다. 덕분에 나는 섣부르게 사랑을 판단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 갈 수 있었다. 순간의 뜨거움만이 사랑이 아님을 알았고, 사랑을 포장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곁을 지키는 존재에 대한 사랑은 나를 조금 더 나은 곳으로 인도해 주었다. 


영원한 사랑에 대해 생각해 보면 영원히 곁을 지켜주는 존재를 떠올려 보게 된다. 소멸하지 않는 초월적 존재가 늘 나의 곁에서 나를 사랑해 준다면 나는 조금 더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어도 느낄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생각과 상상만으로 가슴이 벅차오른 순간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더 따뜻하고, 더 지혜로우며, 더 사랑스러울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영원한 사랑의 존재를 믿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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