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생신 기념으로 저녁 식사를 같이했다. 나만 본가로 내려가면 되었기에 부랴부랴 출발했다.
큰맘 먹고 소고깃집을 가자고 이야기했더니 아버지가 집이 좋다고 하신다. 어머니는 나가기를 원하셨지만, 아버지는 상차림비를 챙겨주신다고까지 말씀하셨다고 한다. 사실 어머니 음식이 웬만한 식당보다 낫기는 하다.
시간에 맞춰 도착했고, 굴비가 구워지고 있다. 조그만 굴비 한 마리에 만원 가까이한다고 하니 입맛이 돌았다.
상이 다 차려질 무렵 동생이 케이크를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촛불을 켜고 부엌으로 조심조심 걸어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빵집에서 초를 깜박한 모양이다.
황당했지만 어쨌든 들고 가 노래를 불렀다. 노래가 끝나고 나서 아버지는 촛불을 부셨다. 불고 나니 또 초가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굴비는 역시 돈값을 했다. 기존에 먹어 본 굴비의 맛과는 확실히 차이가 있었다. 보쌈은 또 얼마나 촉촉하던지 비결을 아니 물어볼 수 없었다. 사랑이 비결이라는 아버지의 말씀을 뒤로하고, 삶기도 하고 찌기도 했다는 어머니의 비법 전수가 이어졌다.
식사를 마치고 읍내에 나가자고 했더니 아버지는 쉬는 게 좋다 하셨다. 기력이 없어서 자꾸 집에만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는데, 어머니는 하도 돌아다녀서 그렇다고 하신다. 다행이었다.
아버지 생신 잔치 뒤풀이는 아버지 없이 진행되었다. 아버지 대신 소비를 좀 하고, 좋은 카페에도 가 보았다.
거기서 아버지 뒷담이 시작되었다. 색소폰에 재미를 붙이셨는데 시도 때도 없이 불어대니 식구들이 괴롭다는 이야기였다. 아버지 편을 들어보았더니 같이 살지 않으면 말하지 말라 한다.
사실 잘 알고 있다. 예전에는 아버지와 제일 많이 부딪히는 사람이 나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버지 편을 좀 들고 싶었다.
왜였을까?
하루 만에 날이 쌀쌀해졌다. 아홉 시가 되기도 전에 집에 가자는 소리가 나왔다. 아버지는 우리가 없는 틈을 타 색소폰을 실컷 부셨을까? 집에 돌아와 보니 벌써 주무시고 계셨다.
아버지는 잠이 오면 언제고 주무시는 분이다. 가족 여행을 가서도 저녁만 드시고 졸린다며 잠을 주무시기도 하셨다. 이른 새벽이 되면 어김없이 일어나 부스럭거리신다. 나는 잠귀가 밝아 그게 참 힘들었었다.
열한 시가 될 무렵 아버지가 일어나셨다. 시끄러워 도저히 잘 수 없다고 하셨지만, 오랜 경험으로 비추어볼 때 초저녁부터 주무셨을 것이다. 예상이 정확했다.
내가 자는 방의 문은 미닫이인데 바둑판같은 나무 사이에 유리가 끼워져 있는 문이었다. 텔레비전 불빛이 아주 잘 들고, 방음도 취약하다.
아버지 편을 든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잠을 청하기가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웬일인가. 아버지가 텔레비전을 끄고 방으로 들어가셨다. 벌써 졸리실 리 만무한데 아들이 피곤할까 일찍 들어가신 듯했다.
아버지 편 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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