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쉬듯 남들처럼 쉬고 싶어 도망간다(2)

도망친 곳에서 마주한 세부바다 그리고 내 숨소리

by 디그레시움

동남아의 비행은 늘 피곤하다.

대부분의 비행시간이 밤비행기 그리고 새벽도착


나 같은 예민한 사람은 이동시간에 잠도 못 자기에

그저 메모장에 브런치글을 쓰며 시간을 때웠다.


그리고 답답한 비행기와 세부공항을 나가


정말 오랜만에 낯선 공기를 들이마셨다.




동남아는 자주 여행했지만 필리핀은 처음이다.

그냥 막바지 휴가기간 제일 싼 비행기라 택했을 뿐


공항 주변을 벗어나자마자 즐비한 판자촌

그리고 그와 대비되는 깨끗한 리조트 거리.


이렇게 빈부격차가 근접하게 느껴지는 동남아는

처음이라 놀랐다.


다시금

난 참 배부른 고민과 아픔을 겪고 있네


생각하며 시내에 한 호텔에 도착해서 잠만 잘 생각으로

뻗고 다음날 아침이 되었다




나는 오션뷰를 신청하지 않았는데 커튼을 걷으니

바다가 보였다. 세부 분명 우기라고 했는데


그나저나 생각해 보니 올해 여름 첫 바다였다.


두 달간 숨참고 방에 스스로 갇혀있을 때는

상상하지도 기대도 하지 않았던 풍경


리조트에서도 나는 뷰 따위 신경 쓰지 않았는데

뜻 밖에 풀부킹으로 오션뷰로 업그레이드를 받았다.


참, 내가 정말 좋아했던 바다를

떠올리지도, 보러 갈 생각조차도 하지 않았는데

바다는 나를 졸졸 따라다니네




옷을 갈아입고 나를 졸졸 따라다니던 바다에

스노클링 장비를 쓰고 머리를 푹 박았다.


분명 물 속인데
공기가 존재하지 않는 곳인데

나는 숨을 쉬고 있었다.

공기가 가득한 지상에서는 들리지 않던
내 숨소리가 크게 들렸다

스읍-후

그렇다.
난 원래 숨을 쉴 수 있는 존재였다.

그저 숨 쉬는 법을 잠시 잊었을 뿐.


그렇게 나는 내 숨소리 외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고요한 정적 속에 몸을 맡긴 채


굳어있던 내 어깨 위에 올려놓았던

나에 대한 실망, 자책, 두려움, 무기력을

물 위에 살며시 올려보았다.


그리고 살짝은 가벼워진 몸과 함께

한참을 둥둥 떠다녔다.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