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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필 Nov 16. 2024

단지 해는 저물고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머물렀던 곳
바둑이라는 같은 이름의 강아지들이 늦게까지 소란을 떠는 곳
하나 둘 가로등이 켜지고 길고양이들이 담장 위에서 가만 저녁을 바라다보는 곳
전선 위로 슬레이트 지붕 위로 노을이 말없이 져가는 곳

기우는 시간 위를 걸어 걸어 용케도 하루를 제겨냈음에
사람들도 나도 한숨, 담배연기와 함께 뱉어냈었다
저녁거리로 한잔 마시고 또 노을빛 곁들인 탓에 사람들도 나도 벌써부터 낯이 발그레했더랬다
비척 비척 걷는 길 끝에는 피차간의 기다림이 있었고 각자의 것이었던 이야기는 맞물려 또 이어져갔다

이 골목을 걸어 걸어 왼쪽 모퉁이 혹은 오른쪽 막다른 길을 돌아서 가면 숫기 없는 가로등도 아니고 끼익-하고 우는 벙어리 대문도 아니고 네가 노을빛 뒤로 하고 네가 노을빛 무색게 하고 그런 일 만무함에도 나도 여기에 기다림이 있길 바란 적 있었다
이야기가 그치지 않길 바란 적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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