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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ㄷㅣㅁ Jul 22. 2024

06. 같은 신분, 다른 자격

고시생 카스트1

고시생이라고 다 같은 고시생이 아니다.

고시생에도 계급이 있다.

오늘은 내 맘대로 정한 고시 계급 이야기.


브러우면(지는거).

먼저 브러우면(지는거).

가장 높은 계급으로, 대학생 신분으로 기특하게도 일찍이 고시에 진입한 파릇파릇한 이들이다.

물론 초시생이라고 다 브라만에 속하지는 않는다. 대게는 이른바 '허수'거나, '올림픽 고시생'들이다.  

그럼 진짜 브라만을 어떻게 구별하냐고?

옆에서 보면 안다. 마치 올해가 아니면 안 될 것처럼 초인적인 집중력과 나이에 맞지 않은 독기를 내뿜는 이들이 있다.

이런 사람이 최연소합격 하겠구나 싶은 이들.


이들은 아직 어린 나이임에도 합격확률이 높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공부 외의 걱정에서 자유롭다.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이라든가, 친구들이 떠나간다는 초조함이라든가.

그리고 2년쯤 공부하다가 그만둔다고 해도 아직 어리다. 그래서 대안적 선택의 폭이 넓다. 취업을 해도 늦지 않은 나이고, 대학원에 간다고 해도 남들에 비해 뒤처지지 않은 나이다.


감정적 방해물과 사회적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우니 공부에만 집중하면 된다.

물론, 이제 막 대학생이 된 만큼 애초에 고시를 결심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며, 모두가 취준을 준비하는 가운데 공부하는 것과 남들이 축제며, 여행이며 인생을 즐기는 동안 공부하는 것은 천지 차이이다.

그래서 이들 나름의 고충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이들에게 기다림의 시간은 상대적으로 덜 잔인하다. 아직 많은 재도전의 기회가 남아있으며, 포기하기에도 늦지 않았다. 그래서 이 기나긴 기다림의 시간을 아직은 부모님의 눈치를 보지 않고 마음껏 편히 쉴 수 있다. 그럴 자격이 있다.



(이미다왔다)트리아.

그다음 높은 계급으로, 합격 문턱에 가까이 닿아봤던 사람들이다. 단, 수험기간이 길지 않을 것을 조건으로.


2차 합격의 문턱에서 아슬아슬하게 떨어졌거나, 면접에서 고배를 마신 이들. 면탈자라고 해서 다 크샤트리아에 속하는 것은 아니다. 오랜 수험기간 끝에 꾸역꾸역 등반에 성공한 이들을 제외하고, 대개 2-3년 안에 합격을 바라보는 이들이 여기 속한다.


브라만 계급보다는 초조함과 불안함이 더하지만, 아직은 부모님께 지원을 부탁드릴 염치가 남아있는 상태이다. 그리고 본인 스스로도 다음엔 합격하리라는 확신이 가득 찬 상태이다. 그래서 이들은 이 기나긴 기다림의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다음 시합을 위한 몸 풀기에 돌입한다.



(아직믿는구석이)있어바이(샤)

높지도, 그렇다고 낮지도 않은 이들.

어린 나이에 시작했지만 수험기간이 길어진 이들, 일을 하거나 대학원에 다니다가 시험에 뒤늦게 진입한 이들이 여기에 속한다. 전자는 나이가, 후자는 경력이 믿는 구석이 된다. 각각 앞으로 갈 곳이 있거나, 돌아갈 곳이 있는 이들이다.


어린 나이에 진입한 이들은 친구들과 달리 대학생활을 충분히 즐기지 못하고 택한 이 길이 생각보다 너무 길어져 답답하다. 일궈 놓은 경력을 버리고 낮은 자세에서 고시를 새로이 시작한 이들은 포기한 커리어가 부담이 된다. 각자의 부담과 스트레스를 안고 죄송스러운 마음으로 부모님께 손을 벌리거나, 본인이 모아둔 돈을 야금야금 까먹으며 공부를 한다. 그래도 어쨌든 각자 믿는 구석이 있으므로, 아직은 용기가 남아있는 상태이다.


이들은 기다림의 시간 동안 각자의 믿는 구석을 방패 삼아 대안적 선택지를 알아보기도 한다. 특히, 아직은 늦지 않은 나이를 가진 이들은 열심히 로스쿨, 대학원, 취업시장 등의 문을 두드리고, 문이 열리곤 한다.



(고시가나인지내가고시인지모르겠)드라.

고시의 노예가 되어버린 사람들. 바로 내가 속한 계급이다.

나이가 어리지도, 수험기간이 짧지도, 사회경력이 있지도 않은 이들.

오랜 수험기간 끝에 변태를 위한 번데기의 삶에 익숙해진 이들.

합격이라는 두 글자를 위해 청춘을 바친 이들.


부모님께 죄송스러웠던 마음이 고착화되며 스스로에 대한 원망과 후회로 바뀐다.

답답함은 간혹 분노로 표출되기도 하고, 잠시를 위해 떠나보냈던 인연들은 어느새 손이 닿지 않는 거리로 멀어졌음을 느낀다.


취업시장에서도 매력도는 떨어진 지 오래이다. 경력도 없고, 나이도 많은 사람을 인턴, 신입으로 대하기 부담스럽다는 것은 우리들 스스로가 가장 잘 안다.

고시를 더 할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더 이상은 없다.


이들에게 기다림의 시간은 가장 잔인하다.

마냥 쉬거나 놀아버리기에 눈치 보인다. 무언가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할 것만 같다는 강박. 오랜 수험기간 동안 부모님은 어느새 나이가 드셨고, 동기들은 새 가정을 꾸리고 있다.

나이만 먹어버렸다. 그러나 누구보다 그 시간들을 성실하게 살아왔음은 분명하다.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고 자부할 수 있다. 단지, 이 시험이란 게 결과 말고 과정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은 별달리 없다는 게... 그게 문제다.




같은 고시생 신분이지만, 계급에 따라 자격이 다르다.

앞으로 남은 재도전의 기회, 열려 있는 대안적 선택지, 기다림의 시간에 직면한 마음의 여유, 밑으로 갈수록 점점 더 좁아지고, 공부 외 고민할 것들은 점점 많아진다.


사실상 나이와 수험기간이 벼슬이 되는 고시 사회에서, 나이도 수험기간도 꼬리가 긴 수험생들은 배로 초조해진다. 시험이 끝났지만 맘 편히 놀 수 없어 마음이 혼란하다.

물론 모든 고시생이 나름의 스트레스와 고충이 있을 것이므로 함부로 재단하는 것 같아 이 글을 쓸까 말까 고민이 들었다.

그렇지만 나의 기다림에 있어 빠질 수 없는 부분이기에 용기 내어 말해본다.


사실 이런 계급이 실재하는지도 모르겠다. 아마 내 마음속 두려움과 불안함이 만들어낸 허상일 수도 있다. 나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걸 수도 있다.

혹 이 글을 읽게 되는 고시생이 있다면, 불편함을 느끼거나 상처를 받지는 않을까 걱정이다.... 미리 사과의 말을 전하고 싶다.




모든 고시생들이 각자 서로 다른 사정을 가지고 다른 환경에 놓여 있지만, 모두 열심히 고생하고 있다는 걸 잘 안다. 그렇지만 분명히 수험기간과, 그 뒤에 이어지는 기다림의 시간이 주는 무게에 나이, 경력 등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카스트가 실재한다면 이건 어디까지나 고시사회에 한한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두고 싶다. 고시생의 신분에 한해 나는 최하층일지 몰라도, 그 밖에서 나는 아직은 자유가 남아있는 상태일 수 있다. 아니 애초에 계급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것 일지도 모른다. 내게는 아직 수많은 대안이 열려 있고, 나의 가치를 입증할 방법은 생각보다 많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찾아보려 한다.


고시생 카스트는 2편에서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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