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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ㄷㅣㅁ Jul 21. 2024

05. 잠 못 드는 밤

문제 탓 좀 해볼게요…


하늘에 구멍이 난 것처럼 비가 온다.

이번 시험이 끝나고 나서 총 맞은 것처럼 마음이 공허했다. 정중앙에 커다랗게 뻥 하고 구멍이 뚫린 것만 같았다.


좋은 시험과 나쁜 시험

감히 시험문제를 평가할 자격이 내게 있는지 모르겠지만 수험생의 입장에서 올해 시험은 서운하고 허무하기 짝이 없었다.


그 많은 교과서와 수험서 논문을 정독하고, 판례와 조문 해석을 고민하며, 수많은 수식과 그래프들을 반복하여 그려나갔던 모든 시간들이 조금이라도 빛을 발했다면 다행이지만, 준비한 것의 반의 반도 보여주지 못한 것만 같은 기분에 잔뜩 풀이 죽어있다.



국제정치는 과목 특성상 어떤 문제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으니 차치하고서라도,


국제법은 그 내용이 방대한 가운데 암묵적으로 수험가에서 형성된 범위가 존재해왔다. 그런데 이번 시험은 그 범위 밖에서 출제됐다. 물론 시험출제기관이 공식적으로 인정한 바 없는 실체 없는 수험가의 시험범위의 안팎을 논하는 게 사실상 의미가 없다고 해도 할 말이 없다. 우리가 분노하는 그 문제 역시 국제법의 일부이므로 여태 나온 적이 없다하여 경시하였다면 그것 또한 우리 수험생의 잘못이다.

그렇지만, 최후의 변을 해보자면, 그 실체없다 할지 모르는 범위가 정말 아무런 의미가 없었는지 묻고싶다. 적어도 국제법을 공부하는 학생이라면 꼭 알아야 할 중요한 것들만으로도 충분히 출제범위가 방대한데, 그 안에서 쏟아부은 우리의 노력과 시간들을 시험지에 현출할 수 있는 공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경제. 역시 미시 거시 그리고 국제경제에서 각각 한 문제씩 출제되는 것이 그간의 암묵적 룰이었다. 출제기관이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바 있냐 한다면 이에 대해서 역시 할 말이 없다.

그러나 문제를 푸는 내내 한 분야에 문제가 쏠린 것 같다는 기분을 지울 수 없었고, 안 그래도 방대한 시험범위를 제대로 공부했는지 단 세 문제만으로 평가하는 이 잔인한 시험에서 너무했다는 생각이 계속해서 들었다.



좋은 시험문제와 나쁜 시험문제의 기준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답하기 매우 부담스럽지만, 적어도 이 시험의 목적을 잘 달성할 수 있는지 그리고 수험생의 노력과 실력을 적절하게 평가할 수 있는지에 있어 고민이 드러나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보다 훨씬 더 뛰어난 학식과 고견을 가진 교수님들께서 충분히 이 점들을 고민하셨겠지만, 수험생의 입장에서는 아쉬운 점이 너무 많은 시험이었다.


동일한 고등고시인 행정고시와 입법고시에 비해 외교관을 선발하는 시험에서 경제문제가 더욱 까다로워야 했던 이유가 있는지, 거시경제는 내가 놓친 것인지 아니면 정말 출제되지 않은 것인지, 적어도 수험생이 국제법 전 범위를 성실히 공부했다면 배경지식을 사용하여 문제를 접근할 수 있는 여지가 있도록 할 수 있었을 텐데 특정조문을 암기하였는지 여부만으로 평가를 한 이유가 무엇인지, 간학문적 접근을 목표하는 통합논술의 취지가 지나치게 퇴색된 것은 아닌지… 여러모로 답답한 마음이다.



솔직히 좀 억울하다

시험을 잘 보았는지 못 보았는지의 문제를 떠나 헛헛한 기분을 지울 수 없다. 장장 9개월간의 시간이 좀 우스워지기까지 한다.


지금도 내 머릿속에는 명령만 있으면 언제든 출동준비를 마친 지식들이 총알처럼 장전돼 있는데, 얼마 안 있어 결코 쓰이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실망하여 스스로 폐기 처분될 예정이다.



이제 와서 말하지만 작년에 난 떨어질만했다. 온 세상 전부를 속여도 자기 자신은 속일 수 없다고 한다. 작년의 난 스스로에게 떳떳하지 못했고 부끄럽고 화가 날 정도로 결코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 그래서 고백건대, 작년의 기다림은 요행을 바라는 주술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올해는 다르다. 공부가 정말 물린다. 단순히 하기 싫은 수준이 아니라 한동안 내게 공부는 단물이 모두 빠져 버려 고무처럼 딱딱해진 껌을 계속해서 씹는 것과 같을 것이다. 정말 더는 못 해 먹겠다 싶다.


작년에 시험이 끝난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한번에 3시간 주 5일 하는 일본어 유학반을 수강할 수 있었던 데는 내게 공부 배터리가 남아있었던 거라는 확신이 든다. 올해의 난 시험이 끝난지 2주가 훨씬 지났음에도 당최 책상에 가만히 앉아있을 수가 없다. 좀이 쑤셔 금방이라도 소리를 지를 것 같다. 진짜 다 써버렸다.


그래서인지 너무 억울하다. 아니 나 진짜 이번엔 열심히 했는데, 보여주고 싶은데 기회를 안 주니까. 미치고 팔짝 뛰겠다. 그렇게 끝나버린 시험 후 남겨진 기다림은 답답함과 분노 그리고 허무함으로 가득 차 있다.




잠이 안 온다.

작년에도 잠이 안 왔다. 너무 불안해서. 내 게으름과 나태가 나에게 화살로 돌아올 것을 알기에, 지구 종말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초조했다.

올해도 잠이 안 온다. 너무 답답해서. 내 노력과 시간들이 헛된 것이었으면 어떻게 하지, 허망하고 허탈하다. 가슴에 구멍 난 것만 같다.


정말 시험을 잘 봤다면, 완벽히 답했다면 이런 마음조차 들지 않겠지. 진짜 공부를 완벽히 한 수험생에게 좋고 나쁜 시험문제는 없고 오로지 시험문제만 있겠지. 나도 안다. 근데 다시 수험기간으로 돌아간다해도 내가 이 문제들에 완벽히 대비할 수 있었을지 그러니까 내 노력 부족이 문제 아니냐고 한다면 아닌 것 같다. 진짜로….


하 하나도 모르겠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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