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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ㄷㅣㅁ Aug 01. 2024

09. 당신의 마음을 읽고, 내 마음을 들려드려요.

내가 요리를 하는 이유 3

당신의 마음을 읽습니다

'먹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르다'라는 말이 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 같다.


내가 해 준 요리를 맛있게 먹어주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감정적으로 충만해진다. 허했던 마음이 따뜻함을 채워지며 실제로 배가 부른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서 반은 맞다.

근데 반은 틀리다. 왜냐면 배가 부르다기보단 물리거든. 재료를 다듬고, 볶고 끓이며 내내 불 앞에서 땀을 빼는 동안 냄새에 물리고, 진이 빠진다. 그래서 식욕이 떨어진다. 너무 지치면 밥맛이 없어지는 그런 기분.


어릴 적 더운 여름에 땀을 뻘뻘 흘리며 밥을 차려주셨던 엄마가 배부르다고 그랬던 걸 난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다. 엄마가 되면 그렇게 되는 줄 알았다.




요리를 하며 알게 된 것들이 참 많다. 특히 엄마 마음을.

모성이라는 당위에 집어삼켜졌던 다양한 감정들이 이제야 읽힌다. 아 엄마도 사람이었구나.


국 식는다고, 빨리 와 앉으라는 말은 잔소리로만 들렸는데 애써 요리한 음식이 식어가는 동안 요리 한 사람의 마음도 함께 식어가는 줄 이제야 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힘들게 요리하는 게 물론 즐겁긴 하다만, 두세 시간을 넘게 고생한 요리가 십 분도 안 되어 사라져 갈 때의 약간의 허무함, 허탈함이 있다는 것.

맛있다는 참 쉬운 한 마디가 나오지 않을 때 슬며시 고개를 드는 섭섭함.

가장 늦게 첫술을 뜨고, 모두가 밥그릇을 비우고 어질러진 식탁에서 혼자 남아 식사를 할 때의 서운함.


아무래도 이제야 철 좀 드나 보다.



내 마음을 들려드려요

나는 내가 나의 마음을 잘 표현하는 사람인줄만 알고 살았다.

고맙다거나 미안하다는 말을 습관처럼 해대니까.

카카오톡으로 사랑해라는 말을 글로 그리고 이모티콘으로 남발하니까.


근데 그런 휘발적인 거 말고.

아 물론 그 당시에 내 마음이 거짓이었단 말은 아니다.

그치만 그것보다는 좀 더 오래된, 깊은 마음이라고 해야 할까.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에게 나도 사랑한다고, 당신의 꽃길을 응원한다고. 이런 마음들은 그냥 고맙다, 응원해라는 말로는 부족한 것 같다.

좀 더 정성스레, 내 진심을 전해야겠다고 언젠가부터 생각이 들었다.



편지를 쓰기도 뭐하고, 갑자기 장문의 톡을 보내기도 어색하고. 대뜸 선물을 주는 것도 웃기고.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어색해지는 그런 마음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마음을 인사하듯 건네고 싶었다.


요리가 취미면 그게 가능해진다.

'집에서 만들어봤는데, 맛있더라고. 생각나서 좀 챙겨봤어' 정도의 말과 함께 나의 마음을 들려준다.

'늘 고마워, 내 곁에 있어줘서.' '진심으로 응원해, 너의 앞길을'.

 

자취하는 동생한테는 밑반찬을 만들어주기도 하는데, 친구들한테는 주로 절임음식을 선물하게 된다. 밖에서 새기라도 하면 곤란하니까


이때 뭔가 헤까닥 해서.... 무려 사과 한 박스로 콩포트를 만들었다..... 한 시간 썰고, 두 시간 졸이고, 다시 졸이고.... 그것도 한 여름에. 귀신 씌었었나 보다.


아 물론, 요리하는 과정 내내 저런 장밋빛 예쁜 생각만 가득한 건 절대 아니다.

재료를 다듬고 한참을 불 앞에 서있다 보면 현타가 올 때도 있다.

그냥 사줄걸. 돈도 내 정성과 노력이 들어간 건데.


근데 또 사람 마음이란 게,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설령 파는 게 더 맛있을지라도. 확실히 다른 것 같다.

그리고 사실 종종 요리보다, 다 만든 요리를 알맞은 유리병에 담아 맞춤 라벨을 그리는 게 재밌기도 하다. 라벨 그리려고 선물하나 싶을 때도 있다.




올해 날씨가 작년보다 더운 탓인지, 요즘엔 통 요리하기 싫다.

삼시세끼 밥해먹기도 버거운데, 저런 절임 요리는 또 불 앞에 오래 서있어야 한단 말이다.

시작할 엄두가 안 난다.


그래도 전하고 싶은 마음의 크기가 커지면 나도 모르는 새 또 유리병을 사고, 세척해 소독하고, 적당한 요리를 만들어 라벨을 붙이고 있겠지.


날씨가 빨리 선선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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