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생 카스트 2_최하층의 난
아 진짜 안 그래도 꾸역꾸역 쓴 거 다 날려버리다니.
노트북 자판을 누르기엔 손가락이 아파 핸드폰으로 대충 끄적이고 있었는데. (손가락이 아픈거 일종의 티저 겸 셀프구속장치다. 이렇게 해놔야 내가 미루지 않고 글을 쓸거같으니 ㅎ)
역시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노트북으로 무언가 작업할 때는 과거 화려한 전적들을 교훈 삼아 강박적으로 ctrl+s 를 누르는데, 핸드폰엔 그게 없어 대참사가 일어났다…
아니 그리고 브런치 pc버전에는 자동 저장 기능 있던데 모바일은 왜 없는 건데? ㅠㅠㅠ 제발 만들어줘라ㅠㅠ
하 여하튼... 원래 글은 날아갔지만 대충 기억을 더듬어 다시 써 본다.
취업시장에 발을 담가보았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번아웃의 나날들을 보내고 있는 와중이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기엔 내 나이가 자꾸 내게 눈치를 줬다.
아 잉여인간이란게 이런 건가 싶을 정도로 무료하고 무의미한 일상들을 흘려보내고 있자니 불안해진 것도 있다.
어쨌든 그래서 난 취준이란 걸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시는 상상도 하고 싶지 않지만, 올해는 정말 나 스스로에게 약속한 마지막이라서.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는, 뒷걸음질을 잘못 치다간 까딱하면 추락해 버리는 낭떠러지기에. 만약, 또 만약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치만, 본격적으로 취준을 시작하는 건 아직 나오지 않은 결과를 내가 예정해 버리는 것만 같다는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나의 답안지가 나의 손을 떠난 순간부터 그 어떤 것도 나의 합불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임을 잘 알지만, 뭐랄까. 지금 나의 선택이 나비효과를 불러일으켜 결과를 바꿔놓을지도 모른다는 미신적 우려가 나를 불안하게 하기도 했다.
그래서 완전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지만, 완전한 취준도 아닌, 반쪽짜리 취준을 해야겠다 생각했다. 정규직이 아니라 오로지 인턴만을 노렸다.
아 물론, 약 4년의 공백기 동안 내가 얻게 된 건 나이뿐이라서, 감히 정규직은 지원할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도 있다.
나름 공직사회를 꿈꾸며 공부를 했다고, 마케팅/기획 등 대부분의 문과생이 지망할 수 있는 직군들에는 눈길이 가지 않았다 (뭐 딱히 지원한다고 해서 그들도 나를 반길 것 같지는 않지만).
뭐랄까. 좋은 상품/서비스를 만들어 고객의 니즈를 충족시키는 것. 이상적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으니까. 명과 암이 있는 상품에서 암을 지워내고 명을 부각시켜 세일즈를 한다는 것이 나의 어쭙잖은 가치관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뭐 사실 다 핑계고, 자소서에 딱히 쓸 내용도 없었다.
근데 또 웃긴 건, 무슨 오기인지. 내가 더럽고 치사한 고시판에서나 최하위계층 취급을 받지, 그런 카스트 따위 아무런 의미 없다고 증명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공기업, 국제기구 등 그나마 나의 수험기간을 그저 흘려보낸 시간이 아닌 것으로 쳐줄 곳들은 오히려 지원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관이 날 버린다면, 난 최대한 공적인 곳에서 멀어지겠노라 다짐했다. 자본주의의 최전선에서 누구보다 화려한 커리어 우먼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 양가적이고 모순적인 마음이 날 복잡하게 했다.
딱 3개월짜리 계약직이어야만 했다. 3개월 뒤면 결과가 나와 나의 거처가 정해질 것이므로. 딱 그때까지만 나를 바쁘게 해 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행복회로를 돌렸다고나 해야 할까. 회사와 계약기간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합격통보를 받으면 회사를 그만둬야 하니 참으로 기쁘게도 곤란한 일이 발생할 것이라 상상했다. 그런 일을 미연에 방지하려면 잘 끼워 맞춰진 퍼즐처럼 계약기간의 끝과, 새로운 인생의 시작이 딱 맞아떨어져야했다. 그래서 3개월.
이거 저거 재고 따지다 보니 애초에 지원할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았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지원날짜나 지원서나 이런 것들을 이유로 이 핑계 저 핑계 대다 보니 딱 두 군데에 원서를 넣었다.
하나는 일이 재밌어 보여서. 그동안 전혀 내 관심분야도 아니었고 그래서 당연히 고시 이전에도 관련 경력이 전무했지만 뭔가 새롭고 재밌어 보인단 이유로 다소 뻔뻔하게 지원서를 내밀었다. 게다가 해외출장도 보내준다고 적혀있어 좀 있어 보이기도 했어서. 얼레벌레 자소서를 썼고, 역시는 역시. 서류탈했다.
다른 하나는 솔직히 처음부터 서류는 될 거라고 생각했다. 일단, 업무내용이 너무도 나의 관심사였고, 고시를 시작하기 전 내가 하던 일과 관련이 깊었다.
예전에도 이 애매한 기다림의 시간동안 취업시장을 기웃거렸던 적이 있는데, 그때 운 좋게 합격했던 몇 개 기업의 자소서를 쓸 때보다도 더 강력한 확신이 들었다. 이 업무는 나를 위한 거구나! 자신 있게 자소서를 썼고, 며칠 뒤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아, 정말 잠시 잊고 살았는데. 합격문자는 언제 받아도 기분이 참 좋다.
소위 말하는 mz 세대들의 꿈의 기업 중 하나였다.
너무 붙고 싶었다. 거기서 딱히 일을 엄청 하고 싶었던 건 아니다.
그치만 증명하고 싶었다.
고작 3개월 체험형 인턴에 불과했지만 이 더럽고 치사한 고시판에서나 내가 이런 취급을 받지, 나 꽤나 괜찮은 사람이란걸.
인혁처 당신들만 못 알아봤지 내가 이렇게 쓸모 있는 인재라고! 내가 안 해서 그렇지, 하면 이렇게 어! 된다고. 당신들 실수한 거니까 올해는 같은 실수 두 번 하지 않게 나 꼭 붙이라고.
꼭 보여주고 싶었다.
이 시험을 위해 청춘을 깎는 우리들이 얼마나 멋진 사람들인지. 갈 곳이 없어서가 아니라,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갈 수 있지만, 혼자가 아니라 우리 모두 함께 살기에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일을 하기 위해 이렇게 기를 쓰고 공부하는 거라고. 그러니 우리를 소중히 해달라고.
위로하고 싶었다.
나 스스로를, 그리고 나와 함께 공부한 모두들을. 우리는 가치 있고 정말 멋진 사람들이라고. 이 시험이, 이 기간이 우리를 갉아먹고 자꾸만 우리를 낮추려 하지만, 위축되지 않아도 된다고. 고시촌의 카스트 따위는 실재하지 않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렇게 고시생 카스트 최하층의 대반란을 꿈꾸며 면접을 준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