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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ㄷㅣㅁ Aug 02. 2024

10. 노란 엉덩이

흰 솜털에 검정콩 3개 1

오늘로 이틀째다.

할머니가 된 우리 강아지가 소변을 가리지 못하기 시작한지.

처음엔 내 바지, 그다음엔 내 가방.


바지야 빨면 되는데, 내가 아끼는 가방 그거 세탁도 안되는데...

어제저녁 그 위에 누워있을 때 안 된다고 하고 대충 치워뒀다고 생각했는데. 기어이 그 가방을 찾아내 자리를 잡고 잔 모양이다.  

다행히 검은색이라 티는 나지 않지만, 오줌 지린내가 이미 베어 버렸다.


가족들 냄새가 나는 옷이나 가방 등을 좋아해서 거기서 자는 게 습관이 된 둥이는 바닥에 적당한 옷가지나 가방이 없으면 한참을 이 방 저 방 돌아다니며 잠자리를 찾아 헤매고 구슬피 운다.

그래서 안되는데, 하면서 자꾸만 내어주게 된다.




야뇨증인지, 요실금인지 아직 확실히 알 수 없지만, 뭐가 됐든 너무너무 마음이 이상하다.



자기 앉은자리에서는 절대 실례를 하는 법이 없었다. 그리고 아무리 피곤하고 아파도 소변을 잘 가렸다.

심지어는 오랜 시간 차를 타고 가는 일이 있더라도 기특하게도 꾹 참고 휴게소나 도착지에 가서 급하게 소변을 보곤 했다.

무슨 상황인지, 차량을 타고 이동한다는 건 아는지도 모르겠는데, 어쨌든 여기선 소변을 보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 같아 차에서 내리자마자 급하게 볼일을 보는 모습이 너무 기특하고 사랑스러웠다.


그런 아이가 그제 아침, 엉덩이가 샛노랗게 된 줄도 모르고 자고 있는 모습을 보니 당혹스럽기 그지없었다.

급한대로 엉덩이를 씻기는데 심장에 쿵 하고 뭐가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노화는 너무도 당연한 건데, 이렇게 하나둘씩 변화가 눈에 보이니 시간이 참 야속하다.


세월은 가장 처음으로 우리 멍멍개의 청력을 뺏어갔다.

복도에 사람이 오는 소리만 들어도, 아니 우리는 듣지도 못하는 엘리베이터 소리만으로도 먼저 나서서 현관문에서 집을 지켰었는데.

몰래 과자를 먹으려고 해도 비닐봉지 소리를 용케 알아채고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참견을 했었는데.

이제는 자기 이름을 불러도, 간식, 산책을 말해도 듣지 못한다.

이름을 부르면 귀찮다는 듯 특유의 심드렁한 표정으로 뒤돌아봐주는 것도, 저 멀리서 자기 이름을 듣고 꼬리를 흔들며 달려오는 것도 이제는 더 이상 볼 수 없게 됐다.

어찌 보면 당연한 건데, 시간이 지나도 적응이 안 된다.


그다음 세월은 그토록 예쁘던, 너무도 빛나던 새까만 보석 두 개를 하얗게 뒤덮어갔다.

처음엔 한쪽 눈, 그다음엔 다른 쪽 눈.

멀리 있는 장난감, 간식을 잘 보지 못하는 것에서 시작해 지금은 눈앞에 간식을 흔들어도 겨우 알아챌 정도이다.

가족들이 집에 돌아와도 달라진 공기의 흐름과 냄새로 겨우 알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추측컨대, 지금은 명암 정도 구별 가능한 것 같다.


수술을 고려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런데 보험이 안돼  입이 떡 벌어지는 가격을 차치하고서라도, 말티즈 중에서도 작은 체구에 심장병을 가지고 있는 우리 아이가 전신마취를 버텨낼 수 있을지... 병원에서도 장담할 수 없다는 입장이기에.

하얗게 하얗게 물들어가는 두 검정콩을 바라보며 미안함을 느낄 뿐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직도 우리 둥이는 식욕도 넘치고, 활기도 넘친다.

날이 더워 요즘은 낮잠을 자는 시간이 늘었지만, 아직도 먹을 것 앞에서는 기운이 넘친다.

아니 좀 웃프지만, 시력과 청력을 잃어가면서 우리도 자기만큼 안 들리고, 안 보인다고 생각하는 건지 목소리가 더욱 커졌다. 아주 화통을 삶아 먹었는지 생떼가 날이 갈수록 늘어난다.


동물병원에서도 식욕이 남아있다는 건 아직 건강한 거라고 했다.

그래서 조르거나 때를 쓸 때면 성가시지만, 그래도 아직은 우리 둥이 건강하구나 하면서 마음이 놓인다.




목욕을 시켜줬다.

피부도 민감해서 목욕을 자주 시키는 게 좋지 않은데, 어젯밤에는 새벽에 푹 적셔진 엉덩이를 아빠 품으로 들이밀었다고 한다. 처음엔 물인 줄 알았는데, 냄새에 불을 켜보니 엉덩이가 노랗게 물들어 있었다고.

잠결에 아빠가 대충 물로만 씻고 다시 주무셨다고 하니, 넌 오늘 목욕이다 이놈아. 니가 자초한거라구.



기분 탓인지, 내가 상상이 과한건지.

목욕을 하는 동안 왠지 둥이가 수치스러워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좀 꾸짖다 말았다. 뭐 어차피 들을 수도 없겠지만. 아니, 듣더라도 알아듣지도 못했겠지만.


물에 적셔진 우리 둥이 몸에는 언제부턴가 갈색 검버섯들이 피어난 걸 볼 수 있었다.

애써 외면해도 늘어만 가는 검버섯을 괜히 세게 문대본다. 지워지라고.

닦이지 않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눈도 닦아준다. 이렇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보일까 싶어서.



그냥 다 내가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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