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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ㄷㅣㅁ Aug 06. 2024

11. 나의 사랑의 모양은 눈물이다

마음 톺아보기1


고시를 핑계로 미뤄둔 것들 중 하나는 내 마음이다.

약 4년이라는 시간동안 세상과 단절되려 애쓰며 고시생 신분으로 살아왔다고 해도, 감정까지 완전히 차단시킬 수는 없었다.

그러나 수없이 떨리고 진동하였던 마음을 모른척하며 무거운 수험서들로 꾹 눌러두었다.


그때 묻어두었던 마음들을 톺아볼 때가 온 것 같다.




좋아하는 영화감독의 가장 좋아하는 작품.

Shape of water: 사랑의 모양

종종 외국영화를 들여올 때 시장선호나 문화적 차이 등을 고려해 영화 제목이 원제와 아예 딴판으로 지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이 영화는 특이하게 원제를 살리면서 번역된 부제를 추가했다.

해석은 각자 나름이겠지만, 원제와 부제가 쓰인 언어의 모양도 다른 가운데 물을 매개하여 서로 다른 모양의 두 연인이 그려내는 사랑 이야기에서 물은 곧 사랑이고, 물의 모양이 곧 사랑의 모양이라서 그런게 아닐까 싶다.


감독 특유의 잔혹한 환상동화, 어른을 위한 판타지를 그대로 살린 아름답지만 시리게 현실적인 영화.




01 당신의 사랑의 모양은 무엇인가?

언제부터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나의 경우 아주 오래전부터 사랑의 모양은 눈물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면, 가슴이 미어지듯 아프고 코끝이 찡해지며 어느새 눈에는 그렁그렁 한가득 마음이 차오른다.


가족들. 친구들. 처음으로 내가 진심으로 좋아했던 실패한 첫사랑.

아직 이별의 순간이 다가오지 않았음에도, 실패하기 전에도 이들을 떠올리면 눈물이 났다.

찬란하게 시려서, 잔혹하게 아름다워서. 마음이 생길까 겁이 나서, 마음이 흐려질까 두려워서.


그래서 내게 사랑은 눈물이다.



02 사라질까봐 슬픈걸까?

사람마다 사랑을 떠올리면 느끼는 감정은 다를 테지만 보통 긍정적인 감정을 많이들 떠올리지 않을까 싶다.

그렇지만 내게 사랑은 가련하고 쓰라린 것. 울멍이는 가슴을 달래야만 하는 그런 것이었다.

울컥하는 마음이 나를 더 불안하게 만드므로, 사랑은 내게 눈물, 불안함, 슬픔 이런 것들을 떠올리게 한다.


사랑이 영원하다고 해도, 그 대상은 불멸이 아니다. 사랑의 대상이 사라지기 전이라도 언제 그를 향한 마음이 식어버릴 줄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 언제나 초조하게 끝을 향해 갈 수밖에 없는 게 사랑이기에, 내게 사랑은 늘 결국엔 눈물로 그려지는 건가 싶다.


아주 어릴 적, 잠시 미국에서 살았던 적이 있는데 그때 사귄 친구들을 두고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을 때, 친한 친구 집에서 마지막 날 밤을 보내며 하도 울어 퉁퉁 부어버린 눈을 제대로 뜨지도 못한 채 이층 침대 1층에 누워 2층에서 들리는 친구의 숨소리를 들었던 기억이 있다. 친구의 숨소리를 자장가 삼아 애써 잠을 청해 보지만, 이미 여러 차례 몰아치는 마음을 쏟아낸 바 있는 눈물샘은 지칠 줄 모르고 가늘게 열린 눈구멍을 타고 슬픔을 흘려보내 하염없이 볼을 적셨었다.

이렇게 슬플 거면 차라리 만나지 말걸, 친해지지 말걸 싶었다.

그게 내가 기억하는 첫 번째 이별이었다.


그때부터였는지, 아니면 그전부터였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나의 첫 이별의 순간에서 조차도 난 기시감이 강하게 드는 사랑에 대한 슬픔을 느끼고 있었으므로, 아마 나는 더 오래전부터 이랬는지도 모른다.




이쯤 되면 전생 체험을 해봐야 하나 싶었던 때도 있다.

마치 영화 속 주인공처럼, 천년의 세월이 지나도 흐릿해지지 않는 비극적인 이별의 주인공이라서 내가 이러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그게 아니라면, 나는 대체 왜 이런 건지 모르겠다.



사랑이 차지했던 공간만큼이나 그게 사라지고 난 다음 내 마음에서 느껴지는 빈자리가 클 것이므로,

나는 섣불리 내 마음에 자리를 내어줄 수 없다.

사람 마음은 쉽게 변하고, 그 어떤 것도 장담할 수 없기에.

나의 마음조차 확신할 수 없는데 상대의 마음은 더욱 믿을 수 없다.


누군가 내게 사랑하는 연인의 모습을 그려보라고 한다면, 내 머릿속에는 늘 같은 모습이 그려진다.

눈물 흘리는 연인이 작별하듯 서로의 품에 안겨 있는 장면.

너무 사랑해서, 혹은 이제는 사랑하지 않아서.

무엇이 되었든 간에, 사랑의 시작은 결국엔 이별을 향해 가는 길이므로 그걸 아는 연인들은 웃기보다는 눈물지을 수밖에 없는 것만 같다.




03 공허해서 슬픈걸까?

인간관계에서 자꾸만 나는 연기를 하게 된다.

내가 마음을 내어주지 않은 척, 나의 마음엔 그 누군가를 위한 공간도 없는 척.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또 다른 연기를 한다.

사랑받기 위해서. 처절하게 몸부림친다. 그들이 좋아하는 모습의 사람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부모님에게도, 친구들에게도, 연인에게도. 나의 마음이 무엇인지는 중요치 않다. 그들이 곁에 두고 싶은 사람의 모습을 한다. 그들이 원하는 맞춤형 인간이 되려고 한다. 그렇게 다른 이들의 사랑을 얻어낸다.


그렇게 연기를 하고 나면 마음이 헛헛해진다.


내것은 하나도 내어주지 않고, 발버둥 쳐 얻어낸 사랑들로 잠시나마 나의 마음은 풍족해지지만, 나의 마음을 내어주지 않은 채 받아들인 사랑들은 머무를 공간이 없어 이내 흩어지고 만다.

그리고 나의 마음은 다시 공허해진다.

설령 그렇게 얻어낸 사랑이 나에게 머무른다 해도 그것은 진짜 나의 모습으로 얻어낸 것이 아니므로, 결국 나에 대한 마음들이 아니다.




04 예뻐서 슬픈걸까?

나는 종종 예쁘고 아름다운 것들을 보면 마음이 슬퍼진다.

자꾸만 눈물이 나오려고 한다.

벅차오름의 눈물인지, 누군가의 말처럼 필멸을 떠올리며 미리하는 작별인사인지. 알 수 없다.

그냥 예쁘면, 너무 예쁘면 슬퍼진다.

어쩌면 내가 사랑을 떠올릴 때 자꾸만 눈물이 나는 까닭은, 그것이 너무도 아름다운 것이어서 그런 걸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나의 사랑이 눈물의 형태인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정을 나누고, 가까워지고, 마음속 차지하는 공간이 넓어질수록 나는 자꾸만 눈물이 난다.

그때 나는 깨닫는다. 나는 무언갈 사랑하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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