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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ㄷㅣㅁ Aug 11. 2024

12. 끼리끼리

마음 톺아보기2

어른들이 종종 하던 말이 있다.

결국 끼리끼리 놀게 되어있다고.

난 이 얘길 참 싫어했다.

그 끼리끼리가 뭘 뜻하는지 누구도 드러내 얘기하지는 않지만 결국 학벌이나 가정환경, 직업 등의 것이란 걸 알고 있었기에 속물적이고 참으로 계산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대학생이 되고 나서 끼리끼리는 의도적으로 저울질을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다는 걸 알게 됐다.


과외로 용돈벌이를 하는 게 대단한 일인 거 마냥 떠벌리고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등록금과 생활비는 부모님께서 해결해 주시지만, 그 외의 것들을 스스로 벌어 쓴다는 것에 알량한 자부심을 가졌던 거다. 과외가 잘려봤자 고작해야 술자리를 나가지 못하거나 쇼핑을 하지 못하는 불편함이 있었던 나는 어리석고 오만하게도 과외가 생계인 친구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있었다.

생각 없이 던진 돌에도 개구리는 맞아 죽는다는 사실을 몰랐다.


알고 나서는 불편해졌다.

그 친구의 사정을 알고 나서 어떻게 대해야 할지, 나의 섣부른 배려가 혹시 더 큰 상처를 주는 것은 아니게 될지 고민했고, 그 친구와 약속을 잡을 때면 내가 먼저 알아서 그 친구를 배려한답시고 가격대가 저렴한 밥집과 술집을 알아봤다. 그리고 해외여행이나 쇼핑 등 사치스럽다 싶을 만한 나의 일상들이 생각 없이 공유되지 않도록 입단속을 했다. 함부로 어디 놀러가자는 얘기도 하지 못했다.

자꾸만 의식하니 불편해졌고, 아마 그 친구도 그러는 내가 불편했을 거라 생각한다.

배려를 하는 만큼 신경이 곤두세워지고 민감해지니 그 친구에게 할 수 있는 이야깃거리가 줄어들고 답답해졌다.

그렇게 그 친구와는 자연스레 멀어졌다.




대외활동을 하며 수많은 사람을 만났는데, 소위 말하는 좋은 학벌을 가진 대학생일수록 대외활동을 잘 하지 않는다는 것을 얼마 지나지 않아 알 수 있었다. 굳이 그런 활동들을 하지 않아도, 학교 안에서 좋은 인프라가 제공되기도 했고, 학벌이 그 모든 것들을 커버해줘서 그런 것일 수도 있고.


뭐 어쨌든, 그래서 종종 대외활동을 할 때면, 나와 같은 기수인 사람들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날 엘리트라고 불렀다. 명문대생, 어나더 클래스 등 듣기 거북한 이름들로 나를 치켜세우는 듯하며 선을 그어댔다.

취업이야기를 하거나 자격증 이야기를 할 때면 그들이 나를 의식하는 게 느껴졌다. 어차피 기업들 다 학벌 보고 뽑는다는 푸념을 하다가도 내 눈치를 스윽 본다거나 이런 식.


내가 그들과 공감하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었다. 내가 공감을 하려 시도하는 것도 그들에게는 잘난체로 느껴졌거나 엄살로 받아들여질 수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난 그 모임에서도 입을 닫고 자꾸만 자기검열을 했다.

그런데 나의 침묵은 다른 의미로 그들에게 재수가 없었나 보다. 넌 그런 걱정 안 해도 돼서 좋겠다라든가, 너네 애들은 **기업은 쳐주지도 않지 않아?라고 묻는다거나, 디귿한테는 별거 아니겠지만, 사실 나 미음 기업 1차 됐어 라며 이야기를 꺼낸다든가.

이러한 이야기에 대한 나의 침묵은 암묵적 동의로 간주되어 오해를 샀던 것이다.


그들 역시 내 앞에서 할 얘기들과 하지 못할 얘기를 구분했다.

자격증을 준비한다거나, 영어학원을 다닌다거나 나는 모르는 우리 조원들의 근항을 나는 종종 다른 조의 사람들에게 전달받기도 했고, 나만 모르는 스터디가 짜여진 적도 있었다. 내가 서운한 티를 내면 '아 어차피 넌 필요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 넌 영어 잘하잖아'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어차피 난 알았더라도 그 스터디를 안 했을 거다.

그치만, 그래도, 나는 그런 이야기를 편하게 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이 난 서운했던 것 같다.

근데 그들 딴에는 날 배려했던 것 같기도 하다.




이래저래 나와 비슷하지 않은 사람과 친해진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결국 어른들의 말대로 끼리끼리가 되는 건가 싶기도 했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려는 노력이 너무나 많은 에너지를 요하는 것이다 보니 만남이 즐겁지 아니해져서 말이다.


우리 세상은 결국, 나의 소그룹이 아니라 수많은 다른 이들과 섞여 살아가야 하는 것임을 알면서도, 그런 외집단에 속한 이들과는 피상적이고 형식적인 관계를 맺을 뿐, 깊이 있는 교류를 하지 않게 되는 게 아닌가 싶었다.




공유하는 경험과, 공감하는 시간들이 사라져 가면서 끼리끼리였던 무리가 해체되기도 한다.

같은 과에서 함께 웃고 울던 친구들이 사회에 나가 각자의 길을 걷게 되면서 차이가 나게 된다.

인정하기 싫지만 누군 잘 나가고, 누군 그러지 못하고.


과거의 우정을 추억하며 연을 이어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니 어쩌면 원래부터 관심사도 취향도 성향도 다 달랐는데, 하나의 집단 안에 속해 있다는 소속감과 그 안에서 함께 보내는 시간들에 그게 가려졌던 걸 수도 있다.

더이상 우리를 묶어주는 공통의 소속도, 시간도 사라지고 나면, 이제 각자의 위치와 수준에 따라 더욱 극명하게 드러나는 성향과 관심사의 차이를 무시할 수 없게 된다.



나의 사랑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아픈 손가락이 된 지 한참이 되었다.

어느샌가 나는 모여도 잘 나가는 친구들 덕분에 깍두기 대접을 받으며 돈 한 푼 쓰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명절날 어른들의 대화에 끼지 못하고 붕 떠 있는 어린아이처럼, 사회인이 된 친구들의 이야깃거리에 난 흥미를 잃고 만다. 세금, 결혼, 주식, 야근 등등. 온통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 투성이기에.


어찌 보면 고마운 일인 것 같기도 하다.

괜히 내 앞이라고 날 어쭙잖게 배려한답시고 입을 닫아버리거나, 나를 위해 하향평준화된 주제로 이야기 화제를 돌려버렸다면 그건 그 나름대로 비참했을 것 같다.


근데 문제는, 그들과의 시간이 더이상 예전만큼 즐겁지 않다는 거다.

그들을 사랑하고 여전히 나의 소중한 사람들인 건 맞지만, 우리가 정말 친한걸까라는 생각이 든다.

친구들의 얼굴만 보아도 반갑지만, 내가 모르는 세상에 대한 그들의 이야기에 난 낄 자리가 없다.

애써 공감하는 척, 관심있는 척 하지만 너무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한다.


그리고 사람을 미쳐 돌아버리게 만드는 기다림의 시간은 내겐 너무 고역인데, 할 일이 없다는 게, 매일 정해진 루틴이 없다는 게 얼마나 사람을 한심하고 비참하게 만드는 일인지 직장에 치이고 야근에 시달리는 친구들은 공감을 해줄 수 없다. 늘 쉼이 고픈 직장인들에겐 나의 고민은 사치 그 자체이니까.

제발 쉬라고, 여행 가고 낮잠도 퍼질러 자고 하라고 말한다. 니가 언제 또 니 인생에서 이렇게 쉴 수 있는 시간이 있을 것 같냐고, 아등바등 뭘 하려고 하지 말라고 얘기한다.

그런데 쉼은, 바쁜 일상 틈새에 짬을 내서 있을 때 값지고 달콤한 것이지, 삶 자체가 쉼 범벅이 되어버린 상태에서 쉼은 괴로움이라는 걸 그들은 모른다.   

아침에 눈을 떠서 갈 곳이 없다는 것. 해야 할 일이 없다는 것. 밥벌이를 하지 못한 채 밥을 축내는 기분과 그렇게 또 하루가 저물어갈 때의 허망함.

말로 설명할 수도 없고,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함께 웃고 떠들수록 외로워진다.

지독하게 외로워진다.



이 모든 게 결국, 나 혼자 자라지 못한 탓이라는 생각에 울적해진다.

같은 우물 안에서 함께 뛰놀던 개구리들이 모두 훌쩍 커서 우물을 떠나게 됐는데, 나 혼자 아직 그 안에 갇혀 있는 느낌이랄까.

내가 진작 그들과 함께 우물 밖으로 나갔더라면, 그들의 대화가 남 얘기가 아니라 내 얘기였을텐데.

끼리끼리라는 말에서 나는 이제 여기에 끼지 못하는 존재가 된 건지 싶다.


그리고 이런 찌질한 생각 끝엔, 이들이 언제까지고 나와 함께 해줄까라는 미안함과 고마움, 부끄러움이 밀려든다.

벌써 4년째 똑같은 우물 안에서 이 지독한 기다림의 시간을 버티고 있는 나를 보기 위해 언제까지고 친구들이 우물 곁에 찾아와 줄까 싶은 마음...




이제 한 달이 좀 넘게 지났다.

기다림의 시간이 반도 채 지나지 않았다. 망할…


아직도 너무 많은 시간들이 남았는데, 이 시간을 함께 버텨내 줄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아 지독하게 외롭다.


이미 저만치 멀어져 간 친구들을 내가 따라잡을 수 있을지.

난 아직도 그들과는 끼리끼리이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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