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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 한국인들과 소통할 때

직장생활 10년차, 여전히 어려운 이메일

해외에서 일하니 영어만 쓸 것 같지만, 주요 업무가 한국 기업을 영어로 알리는 일이다. 따라서 한국 기업과 거의 매일 소통하는데 초기엔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다.


1. 우리 회사가 어떤 곳인지 한국인들이 잘 모르고

2. 우리가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음(영어로 기업소식을 알림)을 명확히 알리지  못하며

3. 우리가 요구하는 게 뭔지 정확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주요 수단은 전화와 이메일인데, 보통 전화로 마케팅/언론홍보 담당자를 찾아 이메일주소를 받은 뒤, 이메일로 우리회사 소개와 우리가 필요한 정보, 마감시한을 알린다. 그리고 한번 더 전화를 해서 메일이 갔는지 확인하고 잘 부탁드린다고 말한다.


상대에게 '우리가 너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 요것만 노력해주면 너희에게 좋은 일을 해줄거야!'라는 뜻을 알리려면,

첫 문단에 나의 소속과 이름을 포함한 자기소개,

둘째 문단에 우리가 가진 자원 (resource) 중 그들에게 혜택이 될 수 있는 점,

둘째와 셋째 문단 사이 한 줄로 '우리가 메일을 보내는 이유는 너가 이런이런 면에서 우리에게 도움을 줄 적임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조금만 도와주면 너희에게 이런 혜택이 올거야!'를 알리고

셋째 문단에 우리가 필요한 정보

마지막으로 마감기한과 함께 공손한 끝인사를 한다.


처음엔 이 노하우를 몰라 몇달간 애를 먹었다.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것은

1. 누구나 들어서 알 만한 회사가 아니면 (상대방 입장에서 듣보잡이면) 회사 소개부터 길게 하지 않는다. (어디에 본사를 둔 00전문 언론사 0000 라고만 한다)

2. 상대방이 전화 받자마자 '0000 회사죠?' 하고 묻지 않는다. 단지 내가 제대로 전화걸었는지 확인하려고 하는 질문인데, 의외로 여기서 짜증스런 반응이 꽤 온다. (누구 찾으시는데요? 어디신데요?) 내 이름과 소속부터 먼저 말하고 거기가 000 회사 맞는지 물어보자.

3. 통화 초기부터 입술에 침바른듯 장황하게 자기소개하지 말자. 필요없는 텔레마케팅인줄 안다. 차라리 '너희가 이런 면에서 매력적이라 우리가 먼저 연락하게 됐다'는 걸 명확하고 깔끔하게 한 문장으로 말하자.

4. 당당함이 뻔뻔함처럼 들리지 않게 하자. 상황에 따라 우리 도움이 필요 없거나 귀찮은 경우도 있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홍보해줄테니 너희는 정보를 내놔라'는 식으로 들리면 기분 상할 것이다.

5. 메일 쓸 땐 이름과 직함, 특히 직함만은 빼놓지 말자. (이름+님 이라고 부르지 않는 이상)


예시) 최근에 받은 메일:


안녕하세요?

기사 전문을 읽고 싶은데, 유료 싸이트 인가요?

확인 부탁드립니다.


감정이 쌔-해지는 메일이었다. 기업 언론담당 직원인데, 짧은 시간 내 우리가 요구한 정보를 최선을 다해 준비해준 기업이다. 나도 그 수고로움을 알아서 고생했다고, 고맙다고 메일을 보냈었다.

기업 입장에선, 그정도 공을 들였으면 마무리까지 좋게 끝낼 수 있는 건이다. 그런데 열흘만에 follow-up차 온 메일엔 내 이름도, 직함도, 우리 회사명도 없었다.


000 기자님께,

안녕하세요. 일전에 000 건으로 연락드린 000 주임입니다.

000 뉴스란에 0월 0일에 저희 기사가 발행된 걸 보았는데, 기사 전문을 열람할 수가 없습니다.  

열람 방법을 알려주시거나 기사 내용을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렇게만 보냈어도 훨씬 완성된 이메일이 된다. 특히 기자들은 나름대로 자기 언론사에 대한 프라이드(...)가 있는데, 00일보, 00뉴스도 아니고 '싸이트'라고만 언급되면 상대가 정말 대충 말하는 느낌을 받는다. 언론사가유료게임싸이트는아니잖아요


그동안 150여개 한국기업과 전화,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가지각색의 형식, 태도, 매너를 경험했다. 삼십년 넘게 한국에 살면서 내 모국어능력을 의심한 적이 없는데 착각이었다. 소통은 언제나 개선될 여지가 있다. 나는 지금도 배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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