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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에서 제일 힘든게 뭐냐면

집이야 집

연휴가 끝난 월요일, 집중도 잘 안되고 너무 힘빠지는 날.

연휴를 틈타 머릿속에 지식을 채워넣자며 안되는 공부를 붙잡고 했는데...오히려 더 멍하다.


이사를 준비하고 있다. 지금까지 집을 20군데쯤 봤고, 부동산중개업자랑 페이스북에 광고올린 사람들도 20명쯤 연락했다.

지금도 너무 힘이 빠져서, 뭘 어떻게 써야할지 모르겠는데...


내 월급의 00%로 정하고 잡은 나의 렌트 예산은 최대 11500 홍콩 달러. 지금 1달러에 157원이 넘으니 약 180만원이다. 어마어마하지 않나? 서울에서도 월 180만원이면 청년 1인이 살기엔 꽤 좋은, 어쩌면 호화로운 수준이다.

그런데 이 돈으론 홍콩섬 - 서울의 강남처럼, 바닷길 남쪽에 있고 주거 인구가 몰린 곳 - 에서 200 스퀘어피트의 방을 겨우 구할 만하다. 200 스퀘어피트가 얼마나 작냐면...5~6평 될까. 냉장고와 세탁기, 부엌과 화장실은 기본으로 있다 치고, 침대 하나, 책상 하나, 작은 옷장 하나 두면 끝이다. 다른 가재도구나 식탁, 소파를 놓을 공간이 못 된다.


그리고 홍콩에서 집을 보러다닐 때 가장 견디기 힘든게 뭐냐면, 고집스럽게까지 느껴지는 '더러움'이다.

홍콩 여행을 와서 어디 건물에 잘못 들어가거나, 로컬 맛집에 들어가본 분들은 알겠지만

손님 밥먹는데 바로 옆에 하수구같은게 보여도 아랑곳 안하고, 건물들은 대부분 50-60년이 넘고,

일년에 6개월을 틀어놓는 선풍기들은 20년은 닦지 않았을 - 먼지와 때가 낄대로 낀 - 상태로 바람을 내뿜고 있고

Chinese walk-up building 이라고 부르는, 엘레베이터가 없는 계단식 낡은 건물들은 귀신 나올것처럼  어둡고 더럽고, 그 와중에 문앞에 덕지덕지 붙여놓은 붉은 장식품들 - 복을 기원하고 귀신을 내쫓는 -

그런 더러움과 누추함에 대한 일반 홍콩인들의 무심함이 너무나 싫다. 이젠 소름끼칠 정도로 싫다.

어제 본 233제곱스퀘어의 방. 바다가 보이는 작은 방인데 14000 홍콩달러 - 220만원 -이다.

홍콩에서 조금 살아본 사람은 알겠지만, 홍콩 섬만 벗어나도 같은 가격에 훨씬 깨끗하고 쾌적하며 넓은 집에서 살 수도 있는데

실은 오늘 통총까지 갔다가 부동산중개업자에게 바람맞았다. 우리집에서 한시간이나 걸리는데...

내 예산으로 거의 400스퀘어피트의, 생긴지 3년된 세련된 집을 빌릴 수 있어서, 멀긴 하지만 맘 잡고 갔는데

중개업자가 정신을 놔서 약속시간 25분이나 지나서 내게 연락한 것이다. 그때 난 이미 돌아가는 지하철 안...


그 '강남' 같은, 홍콩섬에만 주거인구가 몰리는 것은 다른 지역보다 좀더 개발돼 있고, 회사들이 몰려 있어서 출근시간을 아끼고자 하기 위함인데

서울 내 출퇴근 시간이 50분 내외였던걸 생각하면 1시간쯤이야 참을만 하지만,

홍콩에 사는 사람들은 그 1시간을 '무지막지하게 긴' 시간으로 여긴다.  

그래서 셩완, 완차이, 코즈웨이베이, 쿼리베이, 노스포인트, 사이완호에 그렇게 주거지역이 밀집한 것이다.


처음엔 1시간 출퇴근이 그렇게 멀다는 홍콩인들이 이해가 안 갔는데,

너무 치열한 경쟁사회다 보니 20분, 30분이라도 아끼려는 거구나 싶어 안타깝다.

홍콩의 평범한 욕실과 발코니. 내겐 정말 Eyesore (눈버림)이다. 부동산중개업자에게 더이상 이런 사진은 받고싶지 않다...


홍콩에 살다보면 정말 너희들 왜 이렇게 사니? 왜 이것밖에 안되니? 싶을 때가 자주 있는데

정말 한심하고, 수준 낮아서 안타까울 때가 적잖다. 물론 생활의 질적 수준과 청결 습관을 말하는 것이고 그들의 인품을 비난하는 게 아니다.

그건 다음에 또 쓰기로. 오늘은 너무 지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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