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홍콩에서 영문기자로 일하면서 따로 영어공부를 하지 않았다. 일하면서 자연스럽게 느는데 뭘 공부까지하냐는 생각이었다. 지금 보니 큰 오해였다. 내 영어가 많이 늘은 듯했어도 기초가 모래성처럼 부실했던 이유다.
외국에 생활하면서도 언어를 공부해야 했다. 일본 교환학생 때도 다른 친구들은 기숙사 와서 자는 동안 나는 매일 30분이라도 공부한 덕에 빠르게 늘었는데 그동안 공부의 힘을 간과했다. 홍콩에 서양인들이 많으니 어울리다 보면 자연스레 영어 늘지 않냐고? 흠, 틀리다. 부정확한 영어만 반복해도 의사소통은 되니 자기가 잘 한다고 착각하기 십상이다. 특히 영국/미국/호주가 아닌 서양인들의 영어도 틀리는 경우가 많으니 그들과 얘기 잘 통한다고 아 나는 영어는 문제없어 헤헤 하지 말자.
영어는 정확하게 해야 한다. 정확하고 교양있는 영어는 그 사람의 실력과 근성에 아주 특별한 신뢰감을 준다.적어도 외국에서 일한다면, 부정확한 영어를 빠르게 말하는 그저 그런 외국인이 되지 말자.
1. 어휘가 가장 중요하다
모든 언어는 어휘를 모르면 절대 늘 수 없다. (당연하지 않나? 말을 모르는데 어떻게 말을 해!) 일단 단어부터 왕창 외워야 한다.
단어장은 내가 직접 만들든, 사든 꼭 갖고 다녀라.
좀 구식이지만 나같은 경우는 해커스 텝스 기출보카랑 문법포인트+어휘 문제집 이렇게 두 권을 갖고 다녔다. (이거 뭐냐고...독자들이 화면 끄는 소리 들린다)
이 교재들의 장점은 1. 영어 예문과 잘 번역된 한글이 함께 있다 2. 챕터마다 암기 확인할 수 있는 객관식 퀴즈가 있다 3. 300점, 400점, 500점 목표별 단어들이 난도에 따라 정리돼 있다 4. 평소 지나치는 문법 실수를 리마인드 해준다
단점은...500점 목표 단어들은 영어-한글로만 단순 매치되고 예문이 없어서 드럽게 안 외워진다. (영어로 기사를 쓰는 나도 500점 목표 단어들은 모르는게 태반이다)
특히 장점 1, 2번이 상당한 도움이 됐다. 영어 전문가란 분들이 '영어 단어는 영영 사전으로'를 주장하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엔 함정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같은 토종 한국인이 영어를 영어로만 배우려고 하면 정확한 한글 뜻을 몰라 기억도 못하고, 뉘앙스만 느끼고 이 단어를 안다고 착각한다. 그래서 잘 번역된 한글 문장이나 단어를 보는 게 중요하다. 위에 언급한 교재들도 번역이 꽤 깔끔하고 정확하게 돼 있었다. (overwhelm을 '압도하다' devastating을 '파괴적인'으로 번역하는 아쉬운 점을 제외하면, 네이버 영어사전도 꽤 괜찮다고 생각한다)
또한 퀴즈, 즉 테스트가 있으면 익숙함을 '앎'으로 착각했던 게 고쳐진다. 앞뒤로 봐가면서 하나라도 더 외우고 -> 넷플릭스 드라마나 영문 기사에서 아는 단어들이 나오고 -> 신나고-> 기쁜 마음으로 열심히 외우고 선순환. (**위에 언급한 교재가 촤선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자신이 열심히 공부할 것 같은 교재를 서점에서 찾아 보시면 됩니다)
마침 이윤규 변호사님 유튜브에서 영어공부를 검색하니 이렇게 아날로그적이면서도 신박한(!) 영단어 암기법이 있었다. '문맥' 속에서 외워야 한다는 점은 동일하다.
네이버 영어사전 단어장은 비추. 모르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등록해 2000개 정도가 되었는데(...) 절대 안 들여다본다. 페이지가 너무 느리게 넘겨진다. 퀴즈는 문맥을 배제하고 영어-한글 매칭으로만 작동한다. 네이버에서 신경을 안 쓰시나보다.
2. 리딩은 익숙한 주제의 짧은 글부터 시작
책을 좋아한다고 영문 원서와 한글 번역본을 비교하며 공부하면 오래 못 간다. (근성 싸움에서 승리하는 분도 있겠지만) 책은 너무 두껍기 때문이다.
이전 글에도 언급했지만, 내가 추천하는 방법은 같은 주제를 다룬 여러 언론사의 영문 기사들을 읽는 것이다. 자기가 관심있는 사건의 키워드로 각 영문 언론사 기사를 검색해서 읽는다. 물론, 거의 동일한 주제가 나올 수 있도록 키워드가 구체적이어야 한다. 막연하게 North Korea나 Moon Jae-in 검색하지 말고...
예를 들어 한국의 백신 수급 상황이라면 vaccination in Korea, 삼성의 최신 폴더블 폰이라면 Samsung foldable smartphone 을 코리아 헤럴드,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파이낸셜타임스, CNN 등에서 쳐본다. 코리아 헤럴드는 분석기사보단 보도 중심의 간결한 기사가 대부분인데, 이를 기초로 읽고 그 다음에 NYT, WSJ, FT 등 호흡이 긴 분석 기사들을 접하면 좋다.
이 방법의 장점은 첫 기사 읽기는 어려울 수 있는데 두 번째, 세 번째 기사를 읽을 때마다 겹치는 단어가 나오면서 핵심 표현을 익히게 되고 자신감이 생긴다는 것. 동일한 단어가 비슷한 맥락에서 여러 번 나오니 암기도 수월해진다.
3. 듣기는 짧은 시간이라도 집중해서 하루 두 번씩
듣기가 말하기, 읽기를 좌우한다. 정확하게 들어야 정확히 말하고 읽는다."나는 말하기는 되는데 듣기가 잘 안 돼"라는 사람은 스피킹에 오류 투성이일 가능성이 크다.정확지 않은 영어를 읊으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말 다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다. 그래서 영어 원어민이 무슨 표현을 어떻게 쓰는지 85%가 아니라 100% 제대로 아는게 중요하다.
내 경우는 대학생 때 듣기 통번역대학원 대비 학원을 다니면서 쉐도잉을 한 것이 발음이랑 듣기 향상으로 이어졌다. 듣기는 영어교재든 유튜브든 팟캐스트든 EBS든 자신이 80% 이상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을 최소 15분씩 아침 저녁으로, 집중해서 들을 것을 추천한다. 초보나 중급 실력이면 설거지하며 듣지 마라 나는 아침 저녁마다 호주 ABC 방송 유튜브를 틀어서 되도록 모든 단어를 정확히 들으려고 노력하며 본다. 미드는 취향에 잘 안 맞을뿐더러, 어쩌다 재미있는 미드는 내게 필요한 시사 단어가 많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넷플릭스에 YOU 좋아하는데 모르는 단어들 찾아보니 다 연애나 섹스 관련이었다
리딩을 할 때도 숙독이 아니라 문장 하나씩 읽는 경우는 미국인 앵커나 기자가 읽는다 상상하며 속으로 음성화하며 읽을 것.
영어공부 유튜브는 빨간모자샘의 라이브아카데미 (한국인이 꼭 틀리는 문장을 예리하게 집어주고, 한영 번역도 훌륭하다) 마이클 엘리엇 샘의 English in Korean (유용한 표현 100개 모음 등의 동영상들 매우 좋다!) 도움을 받았다. 너무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짝짝짝!!
이 모든 방법을 차치하고 제일 중요한 것은
내가 왜 영어를 잘 하고 싶고, 어느 레벨만큼 잘 하고 싶은지 이유와 수준이 아주 명확해야 한다. '그냥 영어 잘 하고 싶어서' '멋있어 보여서' '국제화 시대인데 영어는 좀 잘해야...' 같은 이유로는 두 달도 못 간다. 외국인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훌륭하게 하고 싶은지, 영어 블로그를 운영하고 싶은지, 글을 잘 읽고 싶다면 분야가 정치/경제인지 문화/예술인지 (문화/예술분야 글은 등장하는 단어들이 일반 뉴스와 매우 다르니 자신이 좋아하고 이미 잘 아는 영화 정보를 위키피디아 등에서 찾아보며 단어 공부할 것을 추천), 외국인 친구 앞에서 나의 일상에 대해 조근조근 얘기하고 싶은 건지.
그 목표에 맞춰서 엉뚱한 분야를 파고들지도, 무리할 필요도 전혀 없다. 결국 문제는 공부의 지속성인데, 자신이 얼마나 열심히 끈기있게 공부하느냐는 그 목표가 자신에게 얼마나 중요한지에 달렸다.그 중요성을 인삭하는 첫걸음은 공부가 팔요한 이유부터 명확히 인지하는 것이다.
이유를 인지했으면, 목표에 맞춰 나를 일주일에 한 번씩 자극할 '사람'과 '이벤트'를 만들어라. 주 1회 화상영어 튜터처럼 원어민이자 나를 가르칠 목적의 사람이어야 한다. 비슷한 수준의 한국인들 또는 외국인과 연애하며 영어실력 쌓을 생각하지 마라 인간의 실력은 타인과의 피드백 안에서 쑥쑥 큰다. 연애를 통한 영어실력 향상에 한계가 있는 이유는, 그 사람이 내게 편해지는 순간 포커스는 '공부'가 아닌 '소통'으로 옮겨가기 때문이다.동호회 같은 교제도 마찬가지다. "함께 어울리며 문화도 배우고 영어도 늘고"는 어릴 때 하는 거다. 20살 넘어가서 그런 식으로 하면 사람이랑 문화 알게되는 데 의미가 있을뿐 영어실력은 별로 향상되지 않는다.
또한 시간을 만들어서 일주일에 2번씩이라도 텝스든 토플이든 토익이든 모의 시험을 쳐볼 것. 한 개의 시험을 네 번으로 쪼개어 아침 저녁 틈틈이 해도 좋다. 나태해짐을 막아주고, 한 걸음 퇴보하는 것 같다가도 세 걸음 전진함을 느낄 수 있다. (아 나는 역시 시험형 인간...) 토플은 잘 모르지만, 토익보다는 텝스를 추천한다. 리딩이 너무 고난도 수능같긴 하지만 토익보다 유용한 영어 표현들이 훨씬 많다. 개인 견해로는 텝스가 너무 평가절하됐다.
시험을 치란 얘기는 말하기와 듣기는 와국인 튜터가 도와줄 수 있어도, 리딩은 내가 짧은 시간에 집중력을 갖고 정확하게 글을 이해할 능력이 있는지 측정할 척도가 없기 때문에 문제풀이를 해보란 것이지, 시험의 달인이 되란 의미가 아니다. (물론 영문 글을 술술 읽기 힘든 경우에 한해서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영어공부가 힘든 이유, 영어를 못 하는 이유(핑계)를 머릿속에 품고 있지 말 것!나도 영어 때문에 너무 절망해서 "나는 미국 대학도 안 나왔는데 어케 잘해 ㅠㅠ"라며 하소연한 적이 있는데 그 생각 버리고 한 자라도 공부할 걸. 나의 삶을 정말 사랑한다면 이런 것들을 아쉬워하며 남 부러워할 시간이 없다
* 영문기자의 영어공부법이라고 제목을 써놨는데 별거 없어서 실망하셨나요? ㅋ 일과 관련된 영어 공부는 너무 직업 제한적이라 보편적인 공부법을 써보았습니다. 다음에 기회되면 썰 풀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