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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보는 홍콩 취업기 -1

100번의 원서질 끝에 잡은 첫 직장

한국 정부기관에서 내 브런치를 보고 홍콩 취업 관련해 짧은 강연을 요청했다. 그동안의 글들을 보니 참 쓴 게 없었다. 강연도 준비할 겸 벼락치기(!) 심정으로 홍콩에서의 커리어, 생활을 다시 기록해보려 한다.

(3년 전 쓴 면접기는 왜 지금도 조회수가 올라오는지...민망쓰)


글솜씨가 워낙 없으니 Q&A 형식으로 풀어보고자 한다.


1. 왜 홍콩을 선택했나요?

영어, 일본어에 자신있었고 아시아에 있고 싶었기에 일본, 싱가폴, 홍콩을 고려했다. 허나 일본 직장문화는 상하수직관계가 워낙 빡세고, 한국인이라면 나 같은 문과보다는 이과에 더 좋은 기회가 많은 듯했다. 싱가폴은 잡 포스팅이 얼마 없고 지리적으로 멀었으며, 당시 동료가 싱가폴 회사에서 겪은 성추행을 털어놔서 인상이 별로였다. (미투가 한창이던 시절이다) 그래서 홍콩을 택했다.  


2. 홍콩의 첫 인상은요?

본격 구직하기 전 친구와 3박 4일 정도 홍콩을 여행했다. 덥다 못해 뜨겁고, 여러 갈래로 난 길은 구글 지도를 봐도 알 수 없었다. 여름인데 건물 에어컨 실외기에서 물 떨어져 머리에 맞는 것은 기본. 살다보니 하루에 바퀴벌레를 (죽은것+산것 합쳐서) 50마리 이상은 만나고 온갖 벌레들의 천국이며 쥐도 가끔 보이더라. 길거리에 보이는 사람들, 특히 노인들은 왜소하고, 옷차림도 누추하고, 한국 어르신들보다 건강이 훨씬 안 좋아 보였다. 그런가 하면 블룸버그 본사 같은 빌딩은 별세계였다. 으리으리한 건물에 세계 각국에서 온 대단한 인재들이 모여 홍콩을 이끌어가는 것 같았다.


3. 일자리는 어떻게, 얼마만에 구했나요?

현지에서 구직해 수 개월이 걸렸다.

한국에서 온라인으로 지원하고 면접본 후 최종 합격하면 약 2달간 준비해 홍콩으로 이주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링크드인을 통해 20군데 넘게 지원해도 면접 연락조차 없었고, 홍콩대를 졸업한 친구가 지인으로부터 "홍콩 현지에서 구직하면 당연히 훨씬 취업 확률이 높지"라는 말을 듣고 홍콩행을 결심했다는 데 영향을 받았다. (친구 따라 강남 갔다...)


이런 무모한 짓은 바람직하지 않다. 당시만 해도 팬데믹 전이라 온라인 면접이 지금보단 어색했다. 따라서 구직하는 도시에 있으면 면접 보는 데 메리트가 있었다. 바로 직접 만나볼 수 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온라인 미팅이나 면접이 일반화했고 예전같은 화상 대화의 위화감이 훨씬 덜하다. 어마어마한 체류비용을 내면서까지 굳이 현지에 있을 필요가 없다.

정말 필요한 건 시간, 실력, 인내심, 그리고 건강한 정신상태다.

 

4. 원서는 몇 군데, 어떤 산업군에 넣었나요?

첫 직장을 구하기까지 원서질만 거의 100군데 했다. 링크드인, jobsDB, Indeed, efinance career 등에서 Korean language, Korean corporate, Korean speaking, 그리고 내 직업과 관련한 키워드를 넣었다. 그런데 여기엔 단점이 있다. 내가 못하는 것, 즉 Chinese나 Cantonese를 검색 결과에서 걸러내지 못한다. 코리안을 넣어서 검색 결과가 쏟아졌는데 하나 하나 클릭해 읽어내려가면 중국어나 광동어가 필수라고 써놨을 때 그 허탈감은...

산업군은 처음엔 유리할 것 같은 곳만 엄선하다 나중엔 결격 사유만 없으면 넣었다. 광고, 패션, 화장품, 이커머스, 금융, 물류, 방송, 잡지, 컨설팅, 심지어 미술경매...그러나 역시 나를 면접에 불러주는 곳은 내 경력과 연관된 언론이나 광고, 그리고 아주 전문 스킬은 필요없지만 한국어가 필요한 컨설팅 회사였다.


참고로 내가 볼 때 한국인을 자주 구인하는 직군은 이커머스(마케팅이나 번역), 금융, 패션(고객전화응대), 무역, 화장품, 면세점 등이다.


5. 원서 넣을 때 주의점이 있나요?

'이력서'가 아닌 '원서 넣을 때'에 대한 주의사항이다.

1) 여러 전문가에게 검증까지 받아서 썩 훌륭한 이력서를 만들고 나면, 일단 많이 넣는다. 채용공고나 회사가 아주 형편없어 보이지 않을 정도면, 꼭 원하지 않는 회사라도 다 넣는다. 각 회사는 제각각의 면접 경험을 제공할 것이고 이는 사람에게 자기를 어필하는 훌륭한 연습이 된다.

내 맘에 안드는 회사 대여섯 군데에서 면접 실패의 경험을 갖고 그 후에 정말 가고싶은 회사에서 훌륭하게 성공하는 게 가장 좋다. 처음이나 두 번째 면접 기회에 너무 좋은, 내가 가고 싶은 회사가 걸리면 나의 미숙한 스킬 탓에 기회를 놓치기 쉽다.

2) 원서 하나 하나에 너무 크게 기대하거나 마음을 쏟지 않는다. 금방 지쳐버린다.

이력서와 커버레터에 최선을 다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원서 제출은 다다익선이듯이, 내 성의와 탁월함이 잘 드러나도록 "기법"을 터득하는 것이 중요하다. 너무 많은 진심, 정신력을 쏟지 말라는 것이다. 내 마음은 누구보다 간절할지라도, 내 원서는 훨씬 훌륭한 지원자, 또는 인맥으로 서류를 통과해버린 낙하산 지원자들 때문에 묻혀버리기 십상.

3) 채용공고가 다른 채용사이트, 그리고 기업 홈페이지에서도 유효한지 확인하라

의외로 out-dated된 공고가 정말 많다. 내가 Glassdoor을 추천하지 않는 이유가 그래서다. 1년 전 잡포스팅이 마치 최근 것인 양 올라와 구직자들을 혼동시킨다.

홍콩에서 처음 면접본 회사 아시아 세일즈 헤드가 한국분이었는데, 그분이 나를 격려하며 한 말이 "이미 뽑았는데 회사 홈페이지엔 남아 있는 경우도 있더라구요. 잘 확인해요" 였다. 그렇다. 잡포스팅이 내려지는 시기는 최종면접 다 끝나고 예비 직원들과 계약서 싸인까지 하고 첫 출근 도장을 찍은 후인 경우가 많다. 그때까지 링크드인 등 채용 웹사이트에는 약 2주마다 똑같은 공고가 업데이트된다.

"2주 전" 올라왔다고 해서 정말 따끈따끈한 채용공고란 기대는 말자. 석 달, 넉 달 전부터 올라왔고 이미 최종면접 끝났을 수도 있다.


6. 홍콩에서 특별히 구인이 많은 시기가 있나요?

매해 2월 중순-4월이라는 설이 일반적이다. 많은 사람들이 구정인 1월 말-2월 초쯤 구정 보너스를 받고 이직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 직후 인력 대이동이 이뤄진다. (즉 12월-2월 중순은 잡 마켓이 얼어붙어있다고들 표현한다) 따라서 회사도 2월 말 - 3월에 새로운 직원들을 많이 채용하는 편이다. 물론 이 때 아주 획기적으로 채용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아니고 내가 체감하기엔 20-30% 정도 더 기회가 있었다. 시기 상관없이 꾸준히 원서질하고 준비해야 한다. 본인도 3월 중순에 첫 잡오퍼를 받긴 했으나, 어느 한 시기에 갑자기 될 것이라고 지나치게 기대하진 말자.


7. 홍콩에서 취업할 때 가장 필요한 것은?

위에 쓴 시간, 실력, 인내심, 그리고 건강한 정신상태를 제외하고 필요한 것은

1) 글로벌 환경에 적합한 면접 스킬. 말을 분명하고도 배려와 균형감각 있게 하며, 지나친 겸손은 안 된다. 홍콩은 글로벌 무대다. 자신의 실력과 커리어에 대한 긍정적 자신감과 ambition을 보여야 한다. 교만해 보이는 것은 금물이나 실력엔 자신감 뿜뿜, 면접관과 면접보는 기업은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러면서도 말은 분명하게 시작해서 분명하게 끝맺는다. 물론 영어 또는 자신이 지원하는 외국어로.

2) 면접과 테스트 실전처럼 준비. 이것은 그 회사에 다니는 사람 또는 면접을 봐본 사람에게 정보를 얻으면 제일 좋다. 물론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내가 면접 본 소량의 기업 테스트라도 다음 회에 공유하겠다.

만약 이 경로가 unavailable하다면, 헤드헌터에게 도움을 구하는 방법이 있다. 그러기 위해선 물론 헤드헌터를 많이 알아놔야 한다. 그들은 당신의 인재 가치를 알아보고 접근하거나 연락을 유지하는 사람들이며, 수많은 지원자들과 면접 경험을 나누기에 어떤 직군 또는 기업이 어떤 성향이며 무엇을 물어보는지 대강 알 것이다. 평소 연락을 주고받는 헤드헌터에게 커피라도 한잔 사주며 그 회사, 또는 비슷한 경쟁 회사의 면접 내용을 물어보자.

3)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지만,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은 비자 제공 여부다. 본인이 첫 직장 잡는데 100번 원서질해야 했던 주요한 이유도 비자 때문이라 생각한다. 기업에게 외국인 직원 work visa를 내주는 것은 적지않은 발품, 비용, 시간을 들이는 일이며 이것 때문에 많은 중소기업들, 헤드헌터들이 당신의 훌륭한 원서를 휴지통에 버린다. 대기업들도 점점 (비자가 필요없는) 홍콩 또는 중국인을 뽑는 추세기 때문에 외국인의 첫 취업은 더욱 힘들어진다. 특히 경력이 없는 대학 신입 졸업자들은 글로벌 대기업에서 잡 오퍼를 받고도 이민국 비자 허가가 안 나 홍콩살이의 꿈을 접기도 한다. 비자 제공 여부는 잡포스팅에 명시돼 있지 않은 경우가 많고, 내가 노력한다고 어찌할 수 없으니 복불복이다.


다음 화엔 면접 질문과 시험들, 첫 직장, 그리고 홍콩의 이직과 해고에 대해 풀어보겠다.


심심하니 재미없는(?) 질문: 저 한국에서 인기없는남(녀)인데 홍콩 가면 연애할 수 있을까요?

답: 일단 호기심 갖고 접근할 분들이 많을 겁니다. 홍콩에서 현재 한국인, 한국 상품은 1980-1990년대 일본 붐과 비슷할 정도로 인기입니다. 홍콩 아줌마들은 한국 드라마 열성 팬이고 한국인들은 훈남 훈녀 이미지가 있습니다. 한국산도 이미지 좋습니다. 센트럴역 한가운데에 올해 새로 생긴 마스크 전문 매장은 아예 '한국형 마스크'라는 코너가 따로 있어 3단으로 펼쳐지는 마스크를 팝니다. 옷, 화장품은 물론 배, 딸기, 사과, 육류, 인테리어 도구, 청소용품, 심지어 애완동물 간식까지 한국산 스티커를 붙여놓고 팝니다. 어쩌다 삼천포로 빠졌는데 아무튼 신기해하며 호의적으로 접근하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누구를 골라 연애하느냐는 각자 알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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