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8일 목요일, 월드잡플러스 토크 콘서트에서 홍콩 취업 멘토로 나섰다. 나 자신에게 굉장히 유의미한 경험이었고, 자신감을 얻은 계기가 됐다. 반면 강연을 주최해준 한국산업인력공단과, 특히 코트라를 당황시킨 내용을 전달한 것 같기도 하다. 이벤트의 취지는 더 많은 한국 청년들에게 홍콩 취업을 '장려'하는 것이었는데, 나는 홍콩살이와 현지 취업에 대해 상당히 차갑계 얘기했기 때문이다.
좋았던 점.
홍콩 취업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내가 꽤 많은 경험과 감각을 제공해 줄 수 있다는 걸 느꼈다. 사소한 예로, 링크드인 등 구인구직 웹사이트 이용시 함정이 있다는 걸 누가 자세히 알려주겠는가. 나는 오랜 구직기간 동안 잡 서치 웹사이트에서 여러 번 실패했고, 몇 번의 최종면접에서 예스도 노우도 아닌 '고려중'이라는 답변을 들었으며, 한국계 회사로부터 굉장히 인권침해적인 면접을 보고 펑펑 운 적도 있고, 취업 조언을 받는 줄 알고 나간 자리에 상대방이 전혀 다른 의도로 접근한 적도 있었고, 우연히 맺은 인맥으로 단번에 글로벌 대기업 최종면접도 봤다가, 기대를 걸지 않았던 구인구직 사이트 지원을 통해 첫 직장을 잡았다. 자랑할 만한 경험들은 아니나 홍콩 취업길이 막막한 사람들에게 시행착오를 공유함으로써 그들의 시간과 에너지 낭비를 줄여줄 수는 있는 것 같다.
덧붙이면 이는 '글과 말'의 차이다. 브런치에 쓸 때는 앞뒤가 맞는 말인지, 논리적 허점이 있는지 점검하며 글을 쓴다. 감성이 아니라 현실 정보를 제공하려는 목적이니 당연하다. 한 가지 메시지를 던지려면 한 단락 이상을 구성할 논리와 사례들이 필요하니 쉽게 못 쓴다. 반면에 입으로 '썰'을 풀 때는 논리적 연결성이 좀 부족하더라도 이런 저런 얘기를 짧게 할 수 있다. 자기 검열에서 조금 자유롭다. 글보단 논리성이 떨어져도 듣는 이들에겐 나름 유용할 수 있다.
코트라에선 홍콩의 취업시장, 한국인들이 많이 진출하는 부문, 비자 취득 방법, 유망 직종 등을 소개하셨는데 사실 나는 그중 많은 부분의 속사정을 알고 있다. 객관적인 정보도, 주관적인 견해도 갖고 있다. 물론 내 관점과 경험에는 한계가 있고, 너무 주관적인 얘기만 하지 않도록 홍콩 금융업, 명품업계 등 다른 섹터에서 일하는 한국인들에게 업계 얘기를 들어보고 강연에 임했다. 이것도 언젠가 나눌 수 있을지.
완차이역 이민국으로 연결되는 육교. 외국 이민자들, 특히 비자를 갱신하려는 동남아 헬퍼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아쉬웠던 점.
코트라와 나 30분씩 강연하고 사전 질문에 30분간 답하는 형식이었는데, 10-15분 정도만 더 즉석 질문을 받았으면 좋았을 것 같다. 사실 사전 질문은 대부분 너무나 일반적인 것이라 (예: 홍콩 비자는 어떻게 받나요, 홍콩 취업의 장단점을 알려주세요) 강연에서 이미 커버한 내용이었다. 헤드헌터는 어떻게 찾느냐는 등 즉석 질문도 몇 개 받았으나 홍콩 취업을 오래 준비한 듯한 질문은 없었다. 시간이 좀더 있었으면 좋은 질문이 나왔을 것 같다.
유망 직종에 관한 부분은...사실 코트라에서 발표하신 첫 번째 분야와 회사가 어디를 가리키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나도 코트라를 통해 지원한 적 있고 연봉도 알고 있다. 솔직한 견해는, 이것을 유망 직종이라고 해도 될지 잘 모르겠다. 지원 가능한 옵션으로 소개할 수는 있어도. 진입 장벽이 낮고, 입사하는 데 특정 전공이 필요치 않으며, 초봉이 매우 낮고 이직률이 높다.
또한 소위 '각광받는 분야'에 대한 통념이 있긴 하나 (예: 데이터 분석, 인공지능, 우주과학, 백신기술, ESG 투자 등) 이는 그 산업이 성장하고 있다는 참고지식을 줄 순 있어도, 이미 대학 전공을 정했거나 졸업한 사람들에게 '유망하니 이곳 취업을 고려하세요'라고 제안하기엔 상대방의 현실을 너무 고려하지 않은 것 같다.
...그건 그렇고 내가 그 유망 직종 회사 면접 내용 내 브런치에 써놨으니 궁금하면 와서 보라고 했다. 코트라 직원분께서 매우 당황했을 것 같다(...) 너무 나대서 죄송합니다 다행인지(?) 강연 이후로 구독자 거의 안 늘었다
비자 설명에 대한 부분도 홍콩 취업을 원하는 한국인들 관점에 맞게 좀더 조정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비자 승인은 신의 영역이라 사전 준비가 크게 필요치 않다. 내가 워홀이 가능한지, 아니라면 일반 취업비자는 주로 어떤 경우 승인/탈락하는지 알아보는 정도일 뿐.
중국이 홍콩 사회와 취업시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언급이 없어 아쉬웠다. 중국이 홍콩 일자리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별로 느끼지 못한다-? 2020년이었으면 나도 예스라 했을 것이다. 우물 안 외쿡 개구리였다. 2021년에 체감하는 바는 확실히 다르다.
홍콩살이랑 취업에 대해 너무 싸늘하게 말해서 다시 멘토로 초청받을 일이 없을 것 같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