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위복으로 삼아야지

'암, 암 것도 아니더라고'

by 김소영
전화위복 : 재앙과 근심, 걱정이 바뀌어 오히려 복이 됨. - 화가 바뀌어 오히려 복이 된다는 뜻으로 어떤 불행한 일이라도 끊임없는 노력과 강인한 의지로 힘쓰면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다는 말. - 네이버 한자사전


'행복'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다 보면, 늘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었다. 엄마는 탁탁탁 야채를 썰어 된장을 끓이고, 아빠는 거실에서 신문을 본다. 어린 나와 내 여동생은 잡기 놀이를 한다. 행복한 음악이 깔리지도 않았는데, 마치 음악이라도 흐르는 것처럼 그 장면은 행복으로 넘쳐난다. 행복은 이렇게 너무나도 작은 순간들로 이루어진다. 아무것도 아닌, 소중한 줄 몰랐던 일상. 코로나를 겪으며 느꼈던 일상의 소중함처럼 이번에 나는 경험하지 못한 행복을 그리워했다.

이미 답은 나와 있었다. 나도 알고 있었고, 의사도 이미 알고 있었지만, 정확한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확진'을 미루었을 뿐.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렇게 벌어준 시간이 우리에게, 적어도 나에겐,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을 주었다. 처음에는 너무 놀라 눈물만 낫지만, 이제는 '암'이라는 글자를 그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사용한다. 다들 왜 이렇게 담담하냐면서 눈물을 보였지만, 이제 나는 담대하기로 했다. 늘 격렬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곤 하던 나는 평온하고 안정된 상태를 늘 동경하고, 때론 그런 사람들을 보면 경외하기 까지 했는데, 지금의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평온하고 안정된 기분이다. 살면서 늘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은 불안 속에 살았던 나는 그 경험이 어쩌면 지금을 위해서 준비된 것이 아닌 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오르락내리락하는 삶의 흐름 속에서 나의 템포를 찾고, 가장 높이 올라왔을 때, 긴장할 지라도 추락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낙하할지라도, 추락하지는 않을 것이다. 급격한 삶의 속도가 나의 머리칼을 휘감고, 손 떨리는 긴장감을 선사할 지라도, 나의 머리칼은 결국 남을 것이고, 손은 땀을 내며 그 온도를 맞춰갈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은 너무나 빨리 지나가, 삶의 책에서 보면, 채 한 장도 되지 않을 수 있다. 나는 이 짧지만 굵은 이 순간들을 내 책에서 아주 짧게 쓸 것이다. 그저 가장 높이 올랐을 때, 그 순간의 긴장 정도로만 남길 것이다. 나의 불행이 눈물로 번지지 않게, 강렬한 위트로 남길 것이다. '암이었는데, 암 것도 아니더라고!'라며 너무 짧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길지도 않은 여운으로 남길 것이다. 그렇게 멀리서 보면 비극이었지만, 사실은 희극인 것처럼 모든 시선을 바꾸어 놓을 것이다.

사실 전화위복이라 함은 끊임없는 노력과 강인한 의지로 힘써야 한다지만, 내게 필요한 것은 그저 '올바른 삶의 태도'이다. 일이 너무 하기 싫었는데, 하지 않게 되었고, 아이들과 시간을 더 많이 보내고 싶었는데, 그럴 수 있게 되었고, 편안한 몸과 마음의 상태가 되고 싶었는데, 또 그렇게 되었다. 지금 이 순간은 롤러코스터의 최고점에서 추락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내리막길처럼 순조롭게 삶을 내려가고 있는 것이다.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다는 말, 그 말 자체가 힘을 가지고, 그저 손바닥 뒤집듯 그렇게, 나의 불행은 행복이 되었다. 어떤 불행도 나를 집어삼키지 못할 것이며, 어떠한 병도 기도의 힘을 뛰어넘을 수는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도 무력감이 아닌, 능동적인 기도의 자세로 나를 이끈다. 내가 할 일이 아니라는 것은 나의 짐을 대신 지어준다. 이제 나를 쥐고 흔들던 불안과 스트레스로부터 마침내 벗어난 기분이다.

우리는 모두 내재된 두려움을 가지고 산다. 돈, 가족, 인간관계, 건강... 한 번씩 경험한 적 있던 삶의 고비들은 우리 마음속에 두려움의 씨앗을 심고, 계속해서 물을 준다. 그 두려움이 자라 우울이 되고, 병이 될 때까지 말이다. 그러나 정말 다행히도 나는, 이유 모를 우울에 그렇게나 이름을 붙이던 나는, 삶이 이끄는 불안이라는 파도를 타고, 희망이라는 지평선을 보았다. 그 너머에는 행복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 망망대해 같던 우울의 바다에서 희망을 본 나는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니다. 나는 감히, 행복을 맛보았다고 말하고 싶다. 무엇이 중요한 지, 무엇이 우선이 되어야 하는지,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지 알게 되었다.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을 것이다. 행복이 무엇인지 보았고,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자주 만날 파도들이 나를 다시 모래밭으로 되돌려 놓을 지라도, 때론 길을 잃게 할 지라도, 길을 알고 가는 길은 두렵지 않다. 재앙과 근심과 걱정과 모든 화를 원동력 삼아 행복으로 항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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