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하지 않을 용기

투병을 기회삼아

by 김소영

오늘도 카페에 앉은 그는 최대한 Goofy 한 표정으로 여자를 웃게 한다. 닭살스러운 커플을 연상하실 수 있겠지만, 실상은 빡빡이(?)인 나와 며칠 째 씻지 못한 채 암 환자인 아내 손에 못 이긴 척 끌려 나와 좋아하지도 않는 커피를 마시며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남편의 모습이다. 영화로 치면 로맨틱 코미디보다는 슬픈 멜로에 더 가깝다고나 할까.


뻔한 말이지만, 사람이 몸이 약해지면, 맘도 약해진다. 나도 결혼 초반에 이혼을 생각했던 적이 있었는데, 이혼하지 않아야 하는 더 많은 핑계들을 생각해내어 생각을 접었었다. 그런데 암투병을 시작하면서 내가 태어나 이보다 아플 일은 없을 거 같은데, 이 사람이 나한테 이렇게 한다고? 생각하니, 아픈 와중에도 이혼하고 싶다는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맘이 약해진 부분은 바로 이 부분인데, 몸이 약해서 누구보다 남편이 필요한 나는 이혼하고 싶다는 생각조차 사치처럼 느껴졌다. 아픈데 이 정도 남편이면 감지덕지라거나, 애들은 누가 볼 거냐 와 같은 남도 하지 않을 말들을 나에게 하고 있었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사랑은 그런 곳에서 시작된다.

아이들, 남편, 친구, 부모님, 회사, 교회…그리고 나. 우선순위에서 늘 마지막에 있던 나 자신에게 살면서 가장 합법적으로(?) 이기적이게 행동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니, 나의 행복에 대해 생각했다. 누군가로부터 얻는 행복 말고, 나 스스로 온전히 홀로 일 때 얻을 수 있는 기쁨에 대해서. 마치 한강변에서 이어폰을 꽂고 혼자 조깅을 하는 기분처럼 혼자여서 기쁜 순간에 대해 생각했다. 이혼하면 그 수많은 관계들과 헤어져 슬프겠지,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이혼을 결심한 사람들은 전부 서로 다른 이유들로 헤어짐을 선택했겠지만, 결국엔 서로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길을 택한 것이다. 스스로 외로움을 택한 그 길은 때때로 용기 있다 평가받는다. 혼자됨은 아주 큰 용기를 필요로 하기에. 그러나 혼자인 것이 자유로운 것이 행복한 사람들은 이혼을 하지 않는 데도 큰 용기가 필요하다. 나를 가장 우선시했을 때, ‘자유’가 가장 중요한 사람이 자유를 포기하고, 상대를 혹은 다수를 택한 다는 것은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1 순위인 행복의 요소를 알고도 포기한다는 것이다.


나의 행복을 포기하는 용기를 가지면서, 내가 나의 삶에 작은 불행을 허락하면서, 사랑은 시작된다.


그는 10년을 다닌 직장을 포기했다. 30년 지기 친구와 본인의 쉼을 포기했다. 내가 포기한 것은 나를 우선시하는 이기적인 마음이지만, 그가 포기한 것은 그가 우선시하던 것들이었다. 전에 보이지 않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도시 빛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밤하늘의 별들처럼 나의 욕구들을 꺼버리니 그의 사랑이 보였다. 결국 자유니 나니 너니 하는 우선순위를 따지기 어려운 것들은 행복하다는 감정 아래서 전부 의미 없는 것이었다. 사랑이 보이면, 행복한 것은 당연했다.


사랑은 모래시계처럼 나의 행복을 포기하면서 상대방의 시간을 채우면, 상대방의 시간이 나의 행복을 채워 나가고, 그가 나에게 준 시간이 나의 행복을 채우면, 그의 시간이 채워져 그가 행복해진다. 뫼비우스의 띠 같은 나의 이런 사랑 논리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이해하기 어렵지만, 이혼하지 않고 참고 산다 비난하는 이들에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용기라고 외치게 해 준다. 경제적인 이유나 자녀들의 문제나 하는 것들보다 나의 행복을 포기하면서 이혼하지 않는 것은 핑계가 아닌 사랑을 선택할 용기가 필요한 행동이라고 말이다.


마침내 다시 정한 삶의 우선순위에도 ‘나’는 마지막이다. 하지만 나를 마지막에 두어 불행했던 시간들을 뒤로하고 상대방을 먼저 두어 행복한 시간들이 온다. 시작은 자유를 포기할 용기를 가지는 것이었지만, 결국 사랑을 선택하는 것이었기에.


이제 로맨틱 코미디로 가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