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친구가 평일 오전 시간 카페에 삼삼오오 모여 앉은 엄마들을 보고, ‘할 일 없는 사람들인가 봐…’라고 말한 적이 있다. 우리도 그 시간에 카페에 와 있었으면서도 말이다. 온전히 동감하진 못했지만, 약간의 부러움과 소심함이 담긴 그 말에 어느 정도는 공감할 수 있었다.
사실 그 삼삼오오 모인 엄마들 가운데 자주 내가 있었다.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카페에 앉은 우리는 실제로 여유로운 것은 아니다. 집안일을 잠깐 미뤄두고, 아이가 돌아오기 직전까지의 두어 시간을 이 시간에 할애하는 이유는 일주일 혹은 한 달을 살아 내기 위한 자기 방어의 몸짓이다. 대부분의 시간을 ‘아이와 나’ 만의 시간으로 하루를 채우는 우리는 육아맘이던 워킹맘이든 간에 일방향적인 대화(사실 대화라고 하기 어렵지만) 말고, 쌍방향적인 토크를 원한다. 작은 생명에게 외치다시피 하는 우리의 언어들은 사실 자주 공중에서 사라지고, 또다시 울음이나 소리 지름으로 메아리쳐 돌아온다. 그렇기에 내가 대화를 건넨 상대에게 공감을 얻고, 다시 상대에게 공감을 건네는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대화를 위해서 우리는 ‘일부러’ 시간을 내는 것이다.
코로나로 대화가 단절되었다는 말은 일상이 되었고, 그 시간 동안 엄마들은 시간을 만들어 대화를 나누던 그 시간조차 빼앗기게 되었다. 카페를 사랑하는 나 또한 마찬가지로 대화 없이 앉아 있는 카페는 팥 없는 찐빵처럼 중요한 무언가를 잃은 채 그렇게 우두커니 앉아만 있어야 하는 공간이 되었다. 그 시간에 쓴 글들도 주로 나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 찬 채 오래도록 고여 있었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다. 코로나가 잠잠해진 요즘에도 그 시기 소통의 부재로 생겼던 문제들이 곳곳에서 풍선처럼 떠오른다. 어린이집에서 각종 활동이 멈춰버린 채 2년이란 시간이 지나는 동안 어린이집과 학부모들 사이에 불신이 생겼고, 그 작은 틈은 장마를 지나고, 더더욱 벌어져 버렸다. 가족과 바깥 사회와의 단절은 가정 내에 울타리 안에서 자행되는 폭력들을 가려주었다. 그리고 나의 글도 나라는 울타리 안에서 계속 돌고 돌기만 했다. 그것은 스스로에게 자행되는 일종의 폭력이었다. 만족스럽지 못한 글과 반복되는 일상, 언제가 될지 모르는 소통의 장은 부러 시간을 내는 우리들의 일상의 소중함을 일깨웠다.
그러다 우리는 반찬을 건네기 시작했다. 어느 날부터 인가 문 앞에 각종 과일과 막 만든 따뜻한 반찬들이 든 종이가방이 걸렸고, 나도 그 다정한 걸음에 동참했다. 그 걸음에 동행하고 나서, 반찬을 만드는 것이 즐거워졌다. 맛있어야 할 텐데, 잘 익어야 할 텐데, 아가가 잘 먹어야 할 텐데 작은 바람이 섞인 뚝딱 거림은 대화를 여는 문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꽉 채워진 채 다시 돌아온 반찬통과 작은 노트, 큰 미소들은 바짝 말라버렸던 다정함 그릇을 채워 나갔다.
이런 시간들로 단련된 나는 쓰러져 입원해 있는 동안에도 그 다정함에 기대어 멀리서도 아이들을 돌볼 수 있었다. 아이 하나를 보는 데만 여덟 명의 어른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말을 새삼 실감했고, 일주일 내내 저녁밥을 챙겨준 언니에게 어떠한 방법으로 고마움을 전할 수 있을지 알 수가 없었다. 그 정도 해 줄 수 있지 않나,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집 안에 다른 아이를 들이는 것조차 어려워하는 이 시기에 아이가 둘 있는 엄마가 다른 집 아이 둘을 케어해준다는 것은 일종의 경외심을 자아내게 한다. 나 따위 육아 초보는 섣불리 말조차 꺼내지 못할, 경지에 오른 엄마, 이런 사람이 옆에 있다는 것이 또 다른 감사의 시작이었다. 누군가 감사한 일을 하나 둘 찾다 보니 어느 순간 감사가 넘쳐서 그 수를 셀 수 없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래서일까 이 일로 물고를 튼 감사는 끝날 줄을 몰랐고, 고였던 물이 수년간 마을을 지킨 우물처럼 맑아졌다. 마음도 가족의 평화도 나의 글도 조금씩 넓어지고 있음을 확신했다. 이 크고 작은 다정함은 아이 친구 엄마에서 시작한 관계가 카페 친구로 동네 언니로 나의 다정한 동네 언니로 성장하는 가을비가 되었고, 진정한 의미의 공동체를 발견한 순간으로 만들어 주었다.
나와 내 아이는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다정한 옆 동 언니와 함께 성장하고 있고, 그 집 아이들도 나의 눈길을 받고 있다. 나의 눈길도 다정하기를 바라면서 프로 육아 맘인 다정한 나의 동네 언니에게 이 글을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