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센티 자란 머리만큼,

비극을 희극 삼아

by 김소영

머리를 밀던 날, 친구를 만나기로 되어 있었다. 고민했다. 약속을 미룰까 하고. 그런데 나의 비극을 보여주고 싶은 아이러니한 마음이 들었다. 나의 비극이 친구의 팍팍한 삶에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비난을 감수하고 솔직히 말하면, 우리는 어리석게도 남의 슬픔으로 나의 슬픔이 작아지는 경험을 자주 한다. 나는 정말 어리석게도, ‘암’이라는 나의 비극이 친구에게 위로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럴 리가 없었다. 친구는 나의 비극이 더 고꾸라질 것 없는 인생에 더 큰 비극처럼 느껴지는 듯했다. 모자를 푹 눌러쓴 나의 창백한 얼굴보다 더 하얗게 질려버린 얼굴로 눈물을 흘리던 친구의 얼굴을 기억한다. 빨간 순두부찌개 위로 하얗게 떠오른 얼굴이 내내 선명하게 남았다.


엉엉 울던 친구의 얼굴이 나의 얼굴과 겹쳐졌다.


친구를 만나기 한 시간 전에 나는 미용실에 있었다. 어색하게 머리를 긁적이며, ‘밀어주세요’ 했을 때, 오래 다니던 미용실 사장님이 눈물을 흘리셨다. 나는 울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울고 있었다. 그것도 엉엉. 참아 왔던 눈물들이 머리칼과 함께 쏟아져 내렸다. 눈물과 뒤섞여 달라붙는 머리칼들이 날카롭게 볼을 찔러왔다. 털어낼 수 없는 아픔이 내게 온 것 같았다.

사장님이 머리를 까슬까슬하게 깎아 주셨다.


‘사장님, 스님처럼 밀어주세요.’


안 된다고 하셨다. 더 못하겠다고 하시는 말이 맞았겠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나왔다. 집에 와서 남편 면도기로 다시 머리를 밀었다. 이왕 미는 거 시원하게 밀고 싶었다. 머리가 시원하고, 매끈했다. 서툰 손짓으로 여기저기 베어 피가 났지만, 괜찮았다. 그리고 친구를 만나러 간다며 모자를 눌러쓴 모양새가 어색하고 기뻤던 것 같다. 기특한 마음에서였다. 스스로 민 머리를 친구에게 보여주는 것이 친구에게 위로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니 참으로 어리석었다.


미용실에 갔다. 1년 만이다. 머리가 더 자란 후에 가고 싶었지만, 여름 내내 쓰고 다니던 가발이 삐져나온 머리로 어색하게 흔들리고 있어 어쩔 수 없었다. 예쁘게 머리를 깎고 나니, 래퍼처럼 마음에 ‘깡’이 찼다. 웃음이 낫다. 빨간 립스틱에 가죽 재킷을 입어야지. 가을을 핑계 삼아 멋을 좀 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자란 머리만큼 지나간 시간이 새삼 감사했다. 지나간 시간임에 감사했다. 나의 마음을 아시는지, 사장님도 웃으셨다.


머리만 자란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키가 자라고, 지혜가 자랄 때에, 마음도 자라게 해 달라던 아이들을 향한 나의 작은 기도가 나도 포함되었던 것 같다. 많이 어리석었고, 많은 것이 부족했던 그때에 나는 그대로 멈추지 않고, 2센티만큼 자라 ‘여기’ 있다. 머리칼에 부는 바람을 느끼고, 오십견이 온 팔을 주무르면서, 살아있음에 투덜거린다.


앞으로의 가을은 춥고 여기저기 쑤시겠지만, 결코 춥지만은 않을 것이다. 멋 내다 앓기도 하겠지만, 누군가의 비극을 누군가의 희극삼지 말고, 비극을 희극으로 바꾸는 삶을 살아야겠다. 추우면 껴입으면 되지. 올 겨울은 따뜻할 것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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