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줍은 고백

당신이 궁금해요

by 김소영

나는 충분히 열려 있다 말하는 다분히 고지식한 사람이다.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밀어붙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고, 지는 내기는 하지 않는다. 아이들에게도 늘 옳은 엄마이고 싶었고, 사회에서도 늘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운 점 없는 바른 사람이고 싶었다. 종교가 있기 때문에 더 그렇기도 하다. 그러나 허당들이 그렇듯 세상은 배운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뒤늦게 배우게 된다. 여러 번 넘어지고, 남의 탓, 세상 탓, 하나님 탓도 하며 살았다. 그리고 내가 아끼고 사랑해마지 않던 모든 것들이 ‘내 것’들이기 때문임을 알게 된 순간, 부끄러웠다.

‘내 생각만 하고 살았네,’ 하고 넘겨 버리기엔 보는 눈들이 너무 많았고, ‘아이코, 죄송합니다’라고 하기엔 사실 큰 죄를 지은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렇게 나의 이기심을 고백하는 이유는 사람들의 삶이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그간 행적을 보면, 오지랖이다 말할 게 뻔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 아이의 친구, 내 친구, 내 가족, 내 지인으로 불렸던 이들의 삶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그들이 나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아껴야 하는, 나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이들의 관한 것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들을 하나의 객체로 대한 적이 없다. 그들에겐 누구 엄마, 누구 친구 말고, 그들의 ‘이름’이 있다.


우리 엄마이신 박성실 씨는 누구보다 열심이신 한국 무용가이다. 세상은 그녀를 멋있는 사람으로 볼 지라도, 나의 어릴 적엔 늘 자리에 없는 엄마였다. 그녀의 화려한 삶은 그녀의 몫이지, 딸인 내게는 그저 파란만장일 뿐이었다. 그리고 대물림 될 것만 같은 불안을 떠안고 사는 것이 나는 늘 불만이었다. 성실이란 이름도 성실하라고 지었겠지 정도로 생각하는 딸이니 무용하는 할머니로 늙고 싶은 엄마의 마음을 알 리가 만무하다.

내가 아이를 낳고, 기르고, 아픈 와중에 엄마는 고군분투했다. 응급실로 달려가는 나를 대신해 밤길을 나 없는 우리 집으로 달려왔고, 딸과 같이 병원에 가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아이들을 봐주셨다. 그리고 아침 수업을 하러 두세 시간 가는 길을 다시 달렸다. 그녀의 성실함이 이름 때문이든 아니든 간에 그녀는 한 번도 게으른 적 없이 삶을 살았다. 그녀의 삶이 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끄럽지만, 둔 적 없던 마음이었다. 그때야 처음 나를 낳고 두려웠을 24살에 엄마가 보였다. 딴따라라고 세상이 놀려도, 집에서 쫓겨나도, 놓은 적 없었던 춤이었지만, 그녀는 분명 순간순간 고민하고 불안했으리라.


세상이 말하는 ‘엄마도 여자라는, 사람이라는 말’은 당연하게도 이해된 적 없었던 것이다. 순수하고 사랑 많은 우리 박성실 씨는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불리며, 상처받고 또 성장했다. 그리고 그녀의 이름을 불렀을 때, 나도 그녀의 아름다움이 보였다. 그녀는 계속 성장하는 사람이었고, 늙지 않는 매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녀가 더 궁금해졌다.


이렇게 나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또 다른 방법을 배웠다. 나를 살고 싶게 만들던 또 하나의 순간이었다. 오지랖이라 불릴까 두려워 다짜고짜 이기심부터 고백하던 나이지만, 앞으로 많은 날을 사랑하며 살겠노라 다시 고백해 본다.

부디 나의 사랑을 부담스러워하지 마시기를. 나를 살게 하던 많은 순간들 속에 당신이 있었음을 수줍게 고백합니다. 당신의 삶이 궁금하다고. 당신이 궁금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