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
의사의 얼굴을 보고 있지만, 정신은 저 멀리 3개월 뒤에 있었다. 항암이 끝나면 끝나는 줄 알았던 치료가 방사선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 순간에 내 귀에 들린 것은 3개월이라는 단어뿐이었다.
‘그래, 3개월만 버티면 돼. 그때 확인해서 괜찮으면 난 전부 나은 거야’.
아득히 멀었던 3개월이 지났다. 사나흘 잠을 설쳤고, 몸이 여기저기 쑤셨다. 나쁜 예감을 떨쳐 버리려, 가을을 핑계 삼아 걷고 또 걸었다. 진료실 앞에서 눈물이 핑 돌았다. 오늘은 절대 울지 않으리라고 다짐했다. 흡사 군인처럼 걸어 들어오는 나를 보고 의사는 웃었다.
- 몸이 좀 아파요?
- 네
- 괜찮아요. 깨끗합니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아쉽다고 해야 할까. 시원섭섭한 기분은 이럴 때 쓰는 것이 아닐 텐데. 나는 무엇이 두려웠던 걸까. 다시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 아니면 이대로 치료가 끝나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 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나는 두려운 걸까. 오래 생각할 것도 없었다. 나는 다시 평범하게 살기 싫었다. 아니, 평범하지만,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 아무도 갖지 못하는 행복을 나는 기적처럼 얻은 채로 살고 싶었던 것이다.
결국 내내 알고 싶었던 질문은 이것이었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는데? 행복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냐고? 뭣이 중헌디?’.
달라진 것 없는 삶에 화가 났다. 삶에 큰일이 닥치면, 이를테면 ‘암’에 걸리는 것 같은 일이 생기면, 게다가 기적처럼 6개월 만에 낫기라도 한다면, 세상이 달라질 것이라 믿었다. 늘 힘들기만 했던 삶이 가볍고 쉬워질 거라 여겼다. 그러나 어떤 것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도리어 사는 것은 전보다 더 힘들어졌다. 한번 무너진 몸과 마음은 쉽사리 돌아오지 않았고, 사회에서도 약자가 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나를 측은하게 여기거나, 기적으로 여겼다.
나는 무엇을 위해서 암에 걸리고, 무엇을 위해서 기적처럼 나았는가. 그저 지나가는 고난이었나? 그 끝에 어떤 특별한 보상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내가 그토록 헤아리고자 했던 ‘잘 사는 방법’이라던지 아니면 ‘삶의 섭리’ 같은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걸까? 큰 우주에서 나는 그저 작은 다람쥐 같은 존재로 지구 위를 쉼 없이 달리고 있는 것일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이 겨우 되찾은 생기를 앗아갔다.
그렇게 흐른 6개월 더하기 3개월 동안 내가 얻은 것은 많지 않았다. 겨우 생명을 부지했고, 그 이외의 모든 것을 잃었다. 그리고 그제야 비로소 전부 잃어야 얻을 수 있음을 알았다. 내가 가진 것. 가족과 건강, 사랑과 같은 남아 있는 것들 만이 변하지 않는 것들이었다. 그것들 만이 내가 소유할 수 있고, 잃으면 안 되는 것들이었다. 기적 같은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시간이 흘렀고, 그 흘러가는 시간들 속에서 나는 많은 것들을 잃었다. 그리고 그 잃은 것들 틈 들에서 걸러진 것들이 내가 지키고,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들이었다.
우리는 늘 말한다. 돈, 명예, 성공 다 필요 없다고. 사랑이 제일이라고. 그러나 그것들은 때때로 행복으로 데려다줄 것처럼 우리를 속이고, 행복에서 점점 멀어지게 한다. 그리고 전부 잃고 나서야, 나 가진 것, 몸 밖에 없어도, 살아 있음에 감사하다는 당연한 진리를 알게 한다. 정말 진부한 결말이지만, 내가 암을 통해 비로소 알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생명의 소중함, 그리고 가족과 사랑의 가치이다. 결코 가볍게 여기려야 여길 수 없는 것들. 나를 살게 하고, 당신을 살게 하는 것들. 그 중헌 것들을 소중히 여기며 살 것이다. 때때로 넘어지고, 또다시 잊을지라도. 절대 잃지는 않도록. 나의 사랑을 지키며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