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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nah Jul 21. 2021

인어 소년

  어렸을 적 가끔 횟집을 가곤 했었다. 어른들은 회를 못 먹는 우리를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 보였다. ‘스끼다시면 충분하지’라며 아빠가 말했다. 그때마다 입에 콘 옥수수를 잔뜩 집어넣고는 바닷가 근처로 뛰어갔다. 동생들이 바닷가에서 모래성을 만들고, 파도와 장난치는 걸 즐길 때에 나는 멀찌감치 철조망 뒤에 서서 바다를 보았다. 철조망 사이에 다이아몬드 만한 구멍으로 바다를 보고 있노라면 내가 바다 한가운데에 서 있는 것 같았다. 치는 파도를 맞지 않을 만큼 멀리 하지만 가까이 서서 돛을 달고 항해했다. 한창 바다를 떠다니다가 마치 날아갈 것만 같은 기분이 될 때쯤, 돌아가야만 했다. 아주 오래도록 바다를 바라봐 야만 돛을 달 수 있었기에 아주 오래도록 아쉬웠다. 그날 이후부터 나는 회를 먹으러 가자고 졸랐다. 내가 졸라서 가는 것이니 어른들은 내심 더 좋아라 했다. 그때마다 나는 그 창살 가까이 내달렸다.

  엄마가 잠자리에서 ‘인어 이야기’라는 노래를 불러주었다. ‘인어가 되었다네, 꿈이 변하여, 인어가 되었다는 슬픈 이야기.’하며 끝나는 노래였다. 그날 밤 나는 바닷가에서 사라져 버린 창살을 찾아 헤매는 꿈을 꾸었다. 모래가 거칠게 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그날 그 바다에서 그 아이를 처음 만났다. 작은 창살 사이에서 다시금 바다 어딘가를 헤매고 있을 때, 눈이 부시게 반짝이는 무언가가 내 시야를 가렸다. 바위 사이에 있던 그것은 거울 같은 것을 쥐고서 내게 사인을 보내고 있었다. 반짝, 한번. 반짝반짝, 두 번. 바다로 뛰어들 용기는 없었다. 바닥에 떨어진 유리 조각을 쥐고 나도 사인을 보냈다. 반짝, 한번. 우리는 그렇게 한참을 반짝였다. 보일지 모르지만, 바다 쪽으로 손을 크게 흔들고서 자리를 뜨지 못하고 한참을 서있었다. 그 기억은 오래도록 남아, 그것이 꿈이었는지 현실이었는지 구분이 잘 되지 않았다. 그 후로 오래도록 그 꿈을 꾸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열여덟 수학여행을 바다로 가게 되었다. 여전히 나는 해변 언저리에 앉아, 친구들이 노는 모습을 보았다. 반짝. ‘야, 방금 그거 봤어? 네 눈 쪽으로 뭔가 번쩍 했는데?’ 보았지만, 보지 않은 척했다. 친구의 팔을 잡아끌고 숙소로 향했다. 밤에 어떤 술을 먹을지, 남자애들은 얼마나 오는지 한창 떠들어 대는 내내 생각은 계속해서 바다로 달렸다. 밤이 되어 친구들이 하나 둘 스러지자, 곧장 바다로 향했다. 밤바다도 여전히 눈부셨다. 무엇을 찾는지도 모르면서 한참을 바다 쪽을 바라보며 헤매다 반짝. 하는 무언가와 마주쳤다. 달빛에 비친 그것은 낮보다 더 아름답게 반짝였다. 나는 천천히 파도가 닿는 곳까지 걸었다. 멀리서 서서히 다가오던 무언가가 파도를 치며 내 발목을 잡았다. 그들의 나이를 알 수는 없지만, 내 나이와 비슷해 보였다. 반짝이는 머리칼, 푸른 눈동자, 그리고 거울인 줄 알았던 그의 비늘. 여태껏 어렴풋이 여자아이일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 후회스러웠다. 그보다 더 아름다운 남자아이를 보니 나는 숨이 멎을 것 같았다. 말을 할 수 있나. 순간 생각했다. 그 아이는 해변가를 나란히 헤엄치며 바위 뒤로 나를 이끌었다. 겁이 나서 숨이 막힐 수 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바위 뒤에서 아이는 먼저 용기 내어 말했다.

  ‘보고 싶었어’

  어릴 적 그 꿈이 꿈이 아니었구나. 나는 뭐라 말해야 할지 몰라 어깨를 움츠렸다. 얼굴이 더 가까이 다가왔다. 그의 머리칼을 만졌다. 달빛에 비친 무지갯빛 머리는 마치 파도처럼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갔다. 그는 움찔했지만, 이내 수줍은 듯 웃었다. 내가 놀라 손을 뗐다. 나의 손목을 부드럽게 잡은 그가 자신의 반짝이는 비늘 하나를 건넸다. 차갑고 단단했다. 그리고 그는 어렸을 적 내가 그랬던 것처럼 머리 위로 높이 손을 흔들고는 내가 멀어지는 것을 내내 지켜보았다. 나는 왜 그때 무엇을 알지 못해서 이렇게 그를 멀어지게 하고 있을까. 지나버린 영겁의 시간을 아쉬워하면서도 나는 돌아섰다. 그리고 다시 이 자리에 섰다.

  스물일곱. 취업에 실패했다. 카페를 하자는 친구를 따라 다시 그 바닷가로 돌아왔다. 혹시라도 그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을까. 학자금 빚 밖에 없어도, 가진 것이 두려움밖에 없어도 망설이지 않았다. 그리고 대부분의 시간을 바다에 앉아 보냈다. 오지 않을 그를 기다리면서.

  외딴섬으로 가는 배를 잡아탔다. 그를 만날 수 있다는 기대보다는 내가 먼저 찾아가 보고 싶었다. 돛을 달고 항해하던 그때처럼, 마치 날아갈 것 같던 그때처럼 자유롭고 싶었다. 바다 위에 서서 그를 볼 수 있다면, 실패한 것만 같은 내 인생도 왕자님을 만나 행복했다고 마무리 지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 무언가 꼬리를 치며 튀어 올랐다. 배를 함께 탄 이들은 이 주변에 돌고래들이 오가니 부딪히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면서도 한번 더 그 찬란함을 보려고 배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는 수선을 떨었다. 나도 그들을 따라 허리를 배 밖으로 내밀었다. 비늘을 오른손에 꼭 쥔 채, 왼 손으론 난간을 잡았다. 몸은 이미 검은 바다로 뛰어들 듯 저만치 멀어져 있었다. 내 소중한 비늘을 누군가 잡았다.  ‘안 돼!’ 비명을 채 지르기도 전에 몸은 바다를 향해 기울고 있었다. 이번엔 강하게 손목을 잡고 끌어올리는 그의 손이 느껴졌다. 차갑고 단단한 그의 손. 배 위에 선 그의 머리칼은 그날 달빛 아래 빛나던 그 색 그대로 빛났다. 지쳐버린 나의 몸을 잡아 올린 그의 눈은 환희에 차있었다.

“보고 싶었어”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굵고 선명하게. 노래를 부르는 듯했다. 내가 그를 찾아서 그가 올 수 있었다고. 바다의 시간을 지나 나와 거품 같은 시간을 살겠다고.

  우리는 바다 위를 천천히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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