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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nah Jul 15. 2021

창작은 고통보단 즐거움이지?!

‘엄마 상어~뚜뚜뚜루루, baby shark~배고파아아아~~~~’


  나를 부르는 다섯 살 난 딸아이의 부름. 아가들은 그렇게들 개사를 한다. 하는 줄도 모르고 하는 거겠지만, 어찌나 귀여운지 놓칠 새라 카메라를 든다. 그 찰나의 찍은 짧은 동영상으로 하루를 먹고, 몇 주, 몇 년을 산다. 우리는 이렇게 태어날 때부터 창작이 즐겁다. 머나먼 기억이겠지만, 당신도 노랫말마다 개사를 하고, 글씨 쓰는 즐거움에 ‘사랑 하미다’라며 서툰 편지를 건네던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사랑하는 이의 냉장고 한 켠에 혹은 책 사이에, 사진첩 어딘가에 오래도록 행복의 순간으로 남아있었을 것이다.

  창작은 그런 것이다. 쓰는 이도 즐겁고, 읽는 이도 즐거운 것. 초보 작가의 여유일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창작이 즐겁다. 엄마로서 아내로서 직장인으로서의 삶을 살면서 하루 중 글을 쓸 수 있는 1시간 남짓한 시간이 내게는 가장 즐거운 시간이다. 그건 너나 그렇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것이 그림을 그리는 일이든, 노래를 부르는 일이든, 우리가 사랑하는 많은 일들은 대부분 창작의 이름 아래 존재한다. 아이를 돌보는 일 또한 마찬가지이다. 엄마들은 매일 반복되는 기저귀 갈기, 식사 준비, 가사 노동으로 급기야 우울증까지 앓기도 한다.

  육아휴직을 쓰고 있는 지인은 ‘마트에서 장을 보다가 갑자기 눈물이 나더라고…’하며 민망하다는 듯 말했었다. 누구나 그런 순간은 있어.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같은 엄마로서 어떤 말이든 해주고 싶었다. 마주 보고 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카톡으로 남겼다. 많이 힘들겠지만, 이보다 값진 일은 없을 거라고. 경력 단절이 아니라, 아무나 할 수 없는 아주 큰 경력을 쌓고 있는 거라고. 그리고 그걸 앓아주는 사람도 분명 있다고.

분명한 것은 누구보다 창의적인 활동을 왕성하게 하고 있는 거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한 인간을 인간답게(?) 빚어내고 있는 것이니까.

  조금은 유치하고 서툰 언어 전달 정도였지만, 진심이었다. 호기롭게 창작을 논할 때, 우리는 창작의 고통을 생각지 못한다. 아이를 낳을 때도 겁을 먹을지언정, 남들 다하는 거 나라고 못할 쏘냐며 열심히(?) 시작한다. 하지만 나의 바닥을 아이에게 보일 때, 엄마들은 고통스럽다. 이 얼마나 큰 창작의 고통인가. 고통은 육아가 창작의 이름 아래 있다는 것을 증명해준다. 그리고 우리가 익히 들었듯이 그 고통은 찰나의 기쁨을 위해 존재한다. 그리고 그 찰나의 기쁨을 먹고사는 우리는 세상 모든 것을 가졌다 여기며 다시 고통을 감내한다.  


  아이가 좋아하는 ‘단방귀 장수’라는 이야기가 있다. 어떤 방귀가 다냐는 아이의 질문에 우리 아가의 방귀가 그렇지 하고 웃으며 얘기했다. 아이를 키워본 경험이 있다면, 아기 손가락과 목덜미에서 나는 고릿한 냄새가 무엇인지 알 것이다. 분명 달다. 살 냄새인지 분유 냄새인지 알 수 없는 그것은 내 기억에 오래도록 남아 둘째를 갖게 했다. 단방귀도 아가의 방귀가 아닐까 짐작해 봤다. 참 희한하게도 우리는 그 냄새를 맡으며 좋아한다. 믿을 수 없겠지만, 달콤하기에. 고통(?)을 참으며, 기쁨을 느끼는 것이 아니다. 고통스럽지 않을 만큼 달콤하다.

  과연 내게도 글을 쓰면서 그런 순간이 올까 싶지만, 언젠가는 고통스럽지 않을 만큼 달콤한 창작을 할 것이다. 육아만큼 1차원 적인 일은 없다 말하는 세상에 모든 엄마들에게 말하고 싶다. 세상 고차원적인 일을 하고 있다고. 고통이 달큰하게 오르는 멋진 일을. 누구보다 경험하고 싶은 멋진 순간을 여행하고 있는 거라고.


  즐거움으로 해나가다 보면, 육아든 글이든 기쁨의 순간이 오지 않을까 싶다.

  역시 창작은 고통보단 즐거움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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