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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nah Jul 22.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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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인어아가씨- 브런치*저작권위원회 안데르센 공모전


‘올해의 유튜버 상은 애리얼 양에게 돌아갑니다!’

띵동. 통장 입금 소리에 단꿈에서 깬 앨리얼의 눈에 ‘125,000원이 입금되었습니다’라는 문자가 들어왔다. 코앞에서 보는 대도 보이지 않나 싶어 안경을 닦고, 0자를 세고 또 세어보았다. 알고는 있었지만 차라리 꿈이었으면 하는 액수였다. 이번 달에도 월세를 못 내면, 요리는 고사하고 입에 풀칠도 못할 상황이었다.  


‘계란은 여기가 싸고, 오늘 이 마트 행사하네…’ 잔고를 생각하면 마트 근처에도 가지 말아야 하지만, 오늘 스페셜 게스트를 모시고 방송을 하려면 발품을 팔아서라도 재료를 마련해야만 했다.  


‘두구두구두구, 여러분! 오늘의 스페셜 게스트, 누구일까요~?’

‘엄마겠지’

‘뻔해도 너무 뻔한 거 아니야’


  연신 올라오는 매몰찬 댓글들에 시작부터 날갯죽지가 저렸다. 하지만 엄마를 불러놓고 이미 흔적뿐인 날개라고 꺾인 날개를 내놓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 서둘러 오늘 준비한 요리를 소개했다. 댓글을 본 엄마는 등짝이라도 후려칠 기세로 노트북을 덮었다가 다시 열었다. 그리곤 방송이 끝날 때까지 말이 없었다. 탁탁탁. 톡. 쏴악. 퐁. 연신 요리 본연의 소리만이 오가고, 혼자 떠들다 지친 나도 BGM을 틀어놓고, 탁탁탁. 톡. 엄마를 도왔다. 사실 엄마는 먹여 주지도 못할 요리를 하면 뭘 하냐며 줄곧 나오기를 꺼렸었다. 하지만 엄마가 있어야 엄마 김치찌개를 끓일 수 있다는 우김에 가까운 간청에 결국 딱 하루만 도와주기로 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망쳐 버리다니.

잘 끓여진 김치찌개에 밥을 비벼 먹으면서 연신 눈물이 났다.  


‘쟤 또 질질 짠다’

‘엄마가 김치찌개 한다 길래 왔다가 중2병 보고 돌아갑니다’


엄마는 이번에야말로 전원 코드를 뽑았다.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엄마는 언제 와봤을까 싶은, 동네 어귀에서 제일 비싸다는 카페로 나를 데려갔다. 벌게진 눈과 코가 망고 빙수를 보자마자 푸쉬. 하고 가라앉았다.

‘사장님, 이 망고 빙수 누가 만드시는 거예요?’ 어린애처럼 눈을 반짝이는 내게 사장님은 대답 대신 번호 하나를 건넸다. ‘제 딸이 유명한 유튜버입니다.’  


‘요즘엔 뭐 아무나 다 유튜버 한대? 내다 버려라’ 집에 돌아온 엄마는 괜히 비싼 돈을 썼다며 화를 냈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수화기 너머로 젊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유명 먹방 유튜버였다. 내가 배우고 싶은 것은 요리였지 먹방이 아니었다. 서둘러 전화를 끊으려는 내게 원하는 것을 줄 수 있을 것 같으니 일단 만나자 했다. 띵동. 통화음 사이 들리는 수익료 입금 소리에 다급히 알림을 보니 만원 입금. 더 망설일 것도 없이 그녀의 사무실로 향했다. 그녀가 원하는 건 간단했고,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달콤했다. 아무리 표정을 다듬고, 천천히 말해도 나의 손은 누구보다 다급하게 도장을 찍고 있었다.  

  그녀의 마법이었을까. 이미 아무 말 없이 끝난 엄마와의 방송이 SNS 여기저기를 돌며 ‘말이 필요 없는 엄마의 김치찌개’, ‘눈물이 날만큼 맛있는 엄마의 밥상’ 등으로 재창조되었다. 매일이 스페셜 게스트였고, 통장 잔고는 세보 기도 전에 0 하나가 더 붙어있었다. 장을 보고, BGM 때문에 골머리를 썩을 일은 더욱 없었다. 유튜버 앨리엇이 아닌 인간 김지현이 원하던 대로 요리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목소리를 주고 다리를 얻지 않았다. 다만 먹방 요정의 스크린 밖에서 그녀의 칼이 되고, 그릇이 되었다. 영원히.  


‘여러분, 오늘도 직접 요리하고 직접 먹는 먹방 요정입니다. 제가 개발한 레시피가 궁금하신 분은 구독과 좋아요를 눌러주세요!’


  먹방계의 퀸이 된 먹방 요정은 내가 지은 밥을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유튜버 앨리얼은 원래 그가 가던 길 대로 거품처럼 사라졌다.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으니 행복한 결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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