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반지를 팔았다

오래전에

by 김소영

실 반지를 하나 샀다. 비싼 애들 운동화 두 켤레를 사고 나니, 내 것도 하나는 사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반지는 생각보다 비싸진 않아, 만 오천 원쯤 되었는데, 그것도 사실은 두 개를 사면, 하나를 더 주는 식이었다. 오늘도 늦는다는 남편의 말에 자랑도 할 겸 반지 사진을 찍어 보냈는데, 답이 없었다. 우리끼리 논 사실이 괜스레 미안해서, 자랑해서 미안하다 전했는데, 남편의 손사래가 전화 너머까지 전해질만큼 크게 부정하며 말을 주춤거렸다. 그저 와이프의 자랑이었을 뿐이었는데, 남편은 몇 년 전으로 시간을 거슬러 미안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혼반지는 진작에 팔아 버린 지 오래였다. 월셋집에 집에 있는 차라곤 유모차가 다였으니, 집에 값나가는 물건이 있을 리 만무했다. 그래도 오래도록 팔지 않고, 열심히 차고 다녔는데, 아이가 크게 아파 병원비를 못 내는 상황에서도 반지를 지킬 이유는 없었다. 반지, 그까짓 게 뭐라고.


그게 그토록 사무쳤던가. 남편은 없던 약속을 만들어 술을 잔뜩 먹고 들어왔다. 미안하다 해야 하나.


남의 아픔에 내 아픔을 빗대어 위로를 받아서는 안 되겠지만, 내 과거에 내 현재를 빗대어 위로를 받는 것은 괜찮겠지. 늘 자기 위로를 일삼는 성격의 나는 삶이 지치고 어려울 때, 어떤 순간보다 아기가 아프던 때를 떠올린다. 정확히 말하면, 가난하고 아기가 아팠던 시절을 떠올린다. 반지가 있었던 시절이지만, 나를 도와달라는 기도밖에 할 줄 몰랐던 마음 가난하던 시절에 나는 반짝인 적 없던 결혼반지를 팔아 아이의 웃음을 샀다. 그때 처음, 사람은 돈을 먹고 산다는 걸 조금이나마 깨달았던 순간이었다. 그래서인지 내게 결혼반지를 팔던 때는 생각보다 기쁜 순간이었다. 병원비를 내고도 돈이 남아, 혼자 계신 아버님께 맛있는 밥 한 번 사드렸다. 벌어서 산 밥이 아니어도 무척 기뻤다. 뭐 남편한테는 반지 팔아 기분이 좋다는 말은 못 했으니 혼자 슬퍼했을 수도 있겠다.


결론은 반지가 잘못했네… 가 아니라,

지금의 삶이 퍽이나 행복하다는 것이다. 코로나로 갈 곳도 없고, 편하게 숨 쉴 곳도 없지만, 거리를 두고 생각을 정리하고 있다. 아이들의 커가는 모습을 눈에 열심히 담고 있고, 더디게 흐르는 틈 사이에서 글을 쓸 수 있음에 감사한다. 달라진 일상 속에서 사실 정말로 달라진 것은 현재를 마구 달리다가 놓쳐버렸던 많은 것들을 바라볼 시간을 얻었다는 것이다. 달리던 순간에 잔상처럼 떠오르던 과거는 죄책감이나 후회로 남았지만, 잠깐 앉아 있는 지금은 추억이라는 것으로 남는다. 더는 부러 숨기고 싶은 흐릿한 과거가 아닌, 선명히 남은 소중한 기억인 것이다. 그리고 새삼스럽게 우리가 그런 기억들을 먹고 현재를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는다. 잠깐 쉬다가, 다시 걸으면서 현재에서 미래로 걷는다. 그리고 그 순간, 찬란하게 꾸민 미래는 더 이상 꿈이 아닌 현재로 존재한다. 내 인생이라는 영화는 그 옛날 디즈니 무비에서 이제 막 붓을 덴 미키마우스처럼 종이에서 튀어나와 자기 이야기를 그려나갈 것이다.



다들 힘들어서, 힘내라는 말을 건네는 것이 민망한 요즘이다. 크게 도움되지 않을 말로 위로를 전하기엔 나의 영혼도 그리 건강하지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이들에게 그리고 앞으로 더 많이 사랑할 이들에게(혹은 나 자신에게) 무언가를 건네는 것은 우리가 전부 잠깐 앉아 있지만, 네 옆에 내가 있고, 그 옆에 내가 있어 우리가 곧 걸을 것임을 전하고 싶기 때문이다.

다만, 사랑하기 때문에.

다들 사라지거나, 날아가지 않고 영원히 무겁게 내 옆에 있길 바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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