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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의 '변신'에 나오는 그레고르처럼

by 이생

손가락 붓기가 예전보다 많이 가라앉았다. 하지만, 이렇게 가라앉았다고 무리하면 안 된다는 것을 잘 안다. 관절이 약해져 있을 때, 마치 두 살 난 아기 관절만큼 힘이 없기 때문에 잘못 힘을 주면 관절 변형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설거지는 식기 세척기에 무조건 맡긴다. 예전에는 아침, 점심, 저녁 설거지들을 어떻게 하면서 살아왔는지 모르겠다.


저녁에 퇴근해서 아침 설거지를 하고, 저녁을 먹고 다시 설거지를 하고. 그렇게 쉼 없이 살아온 시절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지금은 그때가 아주 먼 과거처럼 느껴진다. 손빨래도 류마티스 진단을 받고 난 후부터는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

가족들에게 손에 힘이 가는 것은 무조건 부탁한다. 그러다보니 나는 어느새 카프카 소설에 나오는 그레고르가 되어 버린 느낌이다.


<변신>에서 그레고르는 집안을 책임지기 위해 열심히 일하며 살아가지만, 어느 날 벌레로 변하면서부터 그 역할을 잃어버리게 된다. 처음에 가족들은 그를 염려하고 걱정하지만, 점점 경제력을 상실한 그레고르를 그저 애물단지 취급을 하게 된다. 결국 그레고르는 자신의 방에서 죽게 되고, 가족들은 다시 자신들의 일상을 찾아간다. 슬프지만, 인간의 삶에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류마티스 진단을 받고 난 뒤,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줄었다. 어쩌면 스스로 내 몸을 보호하기 위해 고레고르가 되어 버렸는지도 모른다. 이제 내가 할 수 없는 부분을 선언하고 나를 보호하기 위해 애써야 한다.

예전에 근무했던 학교 중에 쓸모 있는 사람이 되자는 의미의 교훈이 있었다. 항상 그 교훈비를 보면서 자신이 쓸모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보면 상처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내 처지가 그 상황이 되어 버렸다.

가족을 위해 요리하는 것도 짐 정리하는 것도 청소하는 것도 심지어 뜰이나 텃밭에 풀 하나 당기는 것조차 부담스런 일이 되어 버렸다. 관절에 무리가 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 스스로 당분간 그레고르가 되어 버리기로 했다.당분간 쓸모없는 역할을 맡기로 한 것이다. 지나친 책임감으로 인해 나를 아프게 한 만큼 내 관절과 마음에 충분한 휴식을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긴 장마가 이어지는 계절이면, 예전의 나는 집안 구석구석을 청소하고 이불 빨래도 부지런히 햇살에 소독하고 텃밭에 풀도 뽑으면서 몸을 움직였다. 그런데 오늘은 그저 식기세척기에 설거지를 돌리고 맨발걷기 대신 의자에 앉아 맨발을 대고 쇼펜하우어의 <인생수업>을 읽으면서 이 계절에 느낄 수 있는 바람만을 만끽했다.

그리고 집에 들어와 딸을 앉고 소파에서 잠들었다. 중학생이 되어 버린 딸을 예전에는 소파에서 자주 앉고 잠들었었는데, 집안일을 한다고 바빠서 한 동안 그런 여유를 즐기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쁜 일상을 핑계로 소중한 일상을 미루면서 살아온 나를 반성했다.


지금 마주한 나의 인생에서 후회되는 일은 어제의 일기처럼 접어두고, 슬픈 기억이 떠오르면 한 번 미소 지음으로써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키도록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부정적인 상황이라고 해서 생각까지 우울하게 가질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긍정적인 생각에서 좋은 일들이 뿌리 내린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나 자신은 나 자신에게만 특별한 존재고, 나는 어쩔 수 없이 이 지구상에서 살아가는 하나의 생명체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 운명에 대한 비관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중력을 버티며 살아가는 나 자신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풀 한포기도 기특하고, 시끄럽게 울어대는 매미도 사랑스럽다. 밤이면 울어대는 개구리 울음소리도 어떤 연주보다 아름답게 들린다. 그런데 밤하늘에 떠 있는 별은 더 이상 어떤 말이 필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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