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손가락을 보는 일이다. 어제보다 손가락이 많이 부었는지 확인하고 전날에 비해 많이 붓지 않았으면 안심이 되고, 조금 더 부은 것 같으면 순간적으로 복잡한 감정이 올라오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어머니가 보내 주신 육개장을 국물은 먹지 않고 건더기만 건져서 먹었는데 역시 육고기를 먹었을 때와 먹지 않았을 때는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어머니가 가끔 반찬을 해서 택배로 보내 주시는데 손가락이 아픈 나에겐 참 감사한 일이다. 오늘은 서리태를 넣어 밥을 짓고, 단호박을 찌고, 두부 요리 위주로 먹었다. 물론 매일 먹는 호박잎도 빠지지 않았다.
호박잎이 세상천지에 널려 있어 어떤 호박잎을 먹을지 고르면 되니 이 또한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호박잎을 찜기에 넣고 잘 쪄진 호박잎을 된장에 싸서 먹으면 나 스스로도 순해져 버리는 느낌이 든다. 이렇게 호박잎만 많이 열리고 호박은 하나도 열리지 않는구나 싶어 포기했는데 호박잎 사이로 보니 동그랗게 생긴 예쁜 호박이 두 개나 달려 있었다. 호박을 따서 볶아 먹으니 그저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뭐 그리 황홀한 맛은 아니지만, 그저 햇살과 흙, 물, 퇴비만 먹고 자란 호박이 내 몸을 건강하게 해 주겠거니 믿고 싶었다.
폭염이 이어지지만 오늘도 역시 봉침을 맞으러 버스에 올랐다. 햇살은 너무 뜨겁지만 파란 하늘에 구름은 정말 그림처럼 예쁜 날씨였다. 구름 사이로 부기가 빠지지 않은 내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하얀 구름 덕분에 내 손가락의 부은 형태가 더 도드라져 보였다.
곧 괜찮아질 거라고 다독이며 손가락을 어루만져 주었다. 그리고 오늘 손가락 사진도 찍어 두었다. 손가락 붓기가 어느 정도 차도가 있는지 가끔 비교해 보곤 한다. 확실히 류마티스 치료 전보다 붓기는 많이 빠져 있다. 약을 줄여 가면 다시 부풀지 않아야 할 텐데 걱정이다.
집에 돌아와 점심을 먹고, 감기약 때문인지 졸음이 쏟아졌다. 예전에는 감기약을 먹어도 그리 기운이 없지 않았는데 감기약을 먹으니 약간 눈도 부은 느낌이 드는 것이 확실히 강한 약을 먹으니 내 몸이 많이 지쳐있기는 한 것 같다.
약은 정말 크기가 작은데도 엄청난 효과를 지녔다는 것이 두렵다. 나는 더욱이 갑상선을 제거해서 신지록신을 아침 공복에 한 알씩 먹는데 너무 독한 약들을 이렇게 먹어도 되는지 걱정이 된다. 하지만, 지금은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 처방받은 약들을 잘 챙겨 먹어서 지금 불편한 증상을 빨리 완화시키는 게 급선무이다. 염증이 많이 줄어서 약을 빨리 줄여갔으면 좋겠다.
내 위장이 얼마나 괴로울까 생각하니 미안해져서 사포나리아 알로에를 잘라서 사과처럼 씹어 먹었다. 부디 알로에가 약으로 지쳐 있는 내 위를 조금이라도 보호하고 회복시켜 주기를 바랄 뿐이다. 예전에 먹던 장마를 샀는데, 내일부터는 마 껍질도 까서 식사 때 몇 조각씩 씹어 먹으려고 한다. 예전에는 주스로 많이 갈아 마셨는데, 주스로 갈다 보면 끈적거리는 부분이 많이 사라지는 것 같아 원래 형태로 섭취해 보기로 했다. 마 또한 위장 보호의 효과가 있으니 괜찮을 것 같다.
생각이 자꾸 흘러간다. 이 생각은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도 가 있고, 예전에 알던 좋은 친구에게로도 가 있고, 어젯밤 꾸었던 꿈에도 가 있다. 어젯밤 꿈이 떠오른다. 예전에 알던 좋은 친구가 나를 보고 차 타는 곳까지 바래다주는 꿈이었는데, 고마웠다. 상황이 변했지만, 변함없이 나에게 친절하게 대해주는 그 친구가 고마웠다. 꿈에서 깨었는데도 그 마음이 여전했다. 그 친구가 어젯밤 내 꿈에 왜 찾아왔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라도 얼굴을 볼 수 있어서 감사했다. 그 친구가 행복하게 잘 지내기를 바라면서 혼자 웃었다. 문득 나 또한 누군가의 꿈에 등장할 수도 있겠다 싶으니 참 흥미로웠다. 내가 아닌 상대방의 꿈속에서 상상해낸 나의 모습이 어떨지 궁금하다. 어쩌면 한 번도 등장하지 않을 수 있겠구나 생각하니 우스웠다.
생각이 다시 구름처럼 흘러간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무기력이 찾아온다. 이래서 직장 선배들이 절대 장기 휴직은 하지 말라고 했나 보다. 편안함에서 무기력으로 넘어가는 것은 순식간이기 때문이다.
예전에 우울증에 대한 책을 읽었었는데, 우울증이 그저 단순한 감정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우울증은 침대에서 일어날 수조차 없으며, 샤워를 한 후 물기를 닦을 힘 조자 빼앗아 가 버리기 때문이다.
아들이 내가 할 일을 도와주려고 한다. 그래서 안 되겠다 싶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고 했다. 이렇게 모든 걸 의존하다 보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도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엄습해왔기 때문이다.
감기약 때문인지, 무력함이 순간 찾아와서 그런지, 기운 없이 누워 있다가 안 되겠다 싶어 일어나 움직이니 다시 기운이 났다. 편안함과 무기력 사이에서 균형 조절을 잘 해야겠다. 류마티스 관절염 또한 힘들지만, 마음에 우울이 찾아오면 그 또한 힘들기 때문이다. 하루에도 여러 번 마음을 조절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