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가 나를 떠나가 버린 것 같다. 그런데 류마티스는 오늘도 내게 머물렀다. 발가락 중간 관절이 약간 꼬이는 느낌이 들었다가 왼쪽 발바닥이 살짝 아프려고 시동을 걸었는데 그런 순간이 오면 내 마음이 힘들어질까 봐 마당으로 나가서 맨발 걷기를 했다. 뜨겁게 달궈진 돌 위도 걷고 황톳길도 걸었다.
가끔씩 오른쪽 엄지발가락 관절도 시동을 걸까 말까 하는 것처럼 애매한 느낌이 있지만, 그럴 때 맨발 걷기를 하면 이상하게 심리적인 요인일 수도 있겠지만 편안해진다.
나에겐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에 내가 믿고 있는 것을 할 뿐이다. 알로에도 먹고, 나또도 먹고, 마도 잘라먹고, 호박잎도 먹는다. 몸에 좋다는 영양제를 먹다가 때로는 내가 약을 너무 많이 먹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 이틀에 한 번씩 먹기도 한다.
류마티스 통증이 나를 적응시키고 길들이지 않고 떠나가기를 기도한다. 아침 일찍 일어나 맨발걷기를 하면서 책을 읽는데 공감이 되는 부분도 많았고, 지금의 나의 심정을 이해하는 듯한 내용이어서 나도 모르게 위로를 받는 느낌이었다.
우리는 살면서 타인의 삶을 위로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는데 모든 사람들이 그 기회를 통해 상대방을 감싸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기회를 잡으려 하지 않거나 오히려 상처를 주면서 끝을 맺는 경우가 있다.
류마티스 진단을 받은 후, 학교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체험학습을 가야 하는데 담임이라 빠지겠다고 말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진단을 받은 지 한 달도 넘지 않았기 때문에 약을 먹는 시간이 다가오면 굉장히 통증이 심했던 시기다. 그런데 선배 여선생님 중 한 분이 힘들 테니 본인이 가시겠다고 하셨다.
나는 감사했지만, 괜찮다고 말씀드렸다. 그 선생님 역시 자가면역질환으로 치료 중이셨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내 고통을 이해하셨기에 약으로 아직 길들여지지 않은 나를 배려하신 것이다. 그런데 며칠 후, 다시 나에게 본인이 다녀오겠다고 하시면서 교무부장님께 말씀드렸다. 나는 죄송했지만 더 이상 거절하지 못했다.
너무나 감사했다. 그리고 나의 인생 선배님 역시 항암 투병으로 힘드셨을 텐데 병원에 가서 오래 기다릴 나를 위해 미리 아침에 가서 병원을 예약해 주시고, 다양한 정보를 찾아 주시고, 위로의 전화나 문자를 이틀에 한 번 정도 해주신다. 요즘도 가끔 힘들 때 들으라고 좋은 클래식 음악과 좋은 풍경의 사진을 보내 주신다.
타인을 위로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건강하고 여유가 있어서 하는 것이 아니다. 타인의 삶이 자신의 삶만큼 소중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바닥으로 떨어져 본 사람은 그 높이가 어느 정도라는 것을 가늠할 수 있다. 그래서 상대방이 지금 얼마나 힘든 상황인지 이해한다.
그 깊이를 감히 추측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함께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힘을 내서 그 상황을 이겨내고 타인의 삶마저 위로하면서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분명 고통 없이 삶을 누리는 것은 너무나 행복한 일이다. 하지만,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나에게 또 다른 고통을 주는 것은 현명한 행동이 아니다. 누군가는 딱딱한 껍질을 짊어지고 가는 삶도 있고, 누군가는 부드러운 흙을 끊임없이 오르내려야 하는 삶도 있으며, 때로는 끊임없이 날갯짓을 하면서 하늘을 날아야 하는 삶도 있는 것이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삶도 있지만, 그렇지 못하는 부분도 분명히 존재한다. 아무리 원칙을 따른다고 해도 불가능한 영역이라는 것은 언제나 존재한다. 나에게 없는 것이 상대방에게는 있을 수 있고, 타인에게 발견하지 못하는 부분이 분명 나에게는 있을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생존 방식을 잘 발견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통해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호박잎을 따러 가위를 들고 뒤뜰로 가는데 호박 줄기가 데크 바닥까지 뻗어나가고 있었다.
그 넝쿨 아래 매미의 껍질이 보였다. 매미가 자신의 껍질을 벗고 어딘가로 떠나간 것이다. 얼굴도 못 본 매미지만, 그 매미의 삶을 응원해 주고 싶었다. 매미의 껍질이 집 뒤뜰에 있다고 하니까 아들이 말한다.
“매미는 참 불쌍해요. 몇 년 동안 땅속에 있다가 겨우 나와서 며칠 살지도 못하고 죽으니까요.”
“매미는 땅속에 있던 시절이 더 행복했을 수도 있지.”
“땅 속에 있는데요?”
“물고기는 물속에 있는 게 더 행복하잖아.”
“사람에게 땅은 답답하지만, 매미는 다를 수도 있을 것 같아. 사람도 엄마 뱃속에 있을 때 오히려 편안하다고 느낄 수도 있잖아. 어쩌면 저렇게 울어대는 게 땅 속 시절이 그리워서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아들은 그럴 수도 있겠다고 웃는다. 깊어가는 여름 밤, 각자의 삶이 힘듦에도 불구하고 타인의 어려움을 마주하고 손을 내밀어 주는 따뜻한 영혼을 지닌, 낮에도 반짝이는 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그들이 건강하기를, 그리고 치유받기를, 그리고 행복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