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 우리는 이 사건에 대한 판결만 할 뿐입니다. 단 한 번도 피고인의 인생이 끝났다고 말한 적은 없습니다. 오늘의 판결은 피고인이 그날 밤 저지른 사건에 대한 판결입니다. 피고인은 자신이 지나온 시간들을 돌아보면서 앞으로의 인생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내가 무엇을 하지 말았어야 했는지 반성하는 시간을 갖길 바랍니다. 이상으로 재판을 마치겠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섰다. 사람들은 아마도 자신들을 기다리는 따뜻한 집으로 돌아가 오늘 있었던 이야기를 반찬처럼 꺼내어 이야기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그냥 오늘이 나의 마지막이었으면 더 낫겠다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다는 것, 앞으로 더 끔찍한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 너무 두려웠다. 더 이상 기댈 가족도 없는 나는 이 세상에 그저 도태되어 버린 벌레나 마찬가지였다. 차라리 벌레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차가운 감옥에 갇히지도 않을 테고, 그저 말없이 땅바닥만 기어 다니면서 집이 없어도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겠구나 싶었다.
집이 없고, 부모가 없어도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인간의 권리가 아닌 벌레의 권리이다. 나는 인간으로 태어났기에 머물러야 할 곳이 필요했으며, 늘 보호자의 허락이 필요한 청소년이었다. 차라리 태어났을 때부터 고아원에서 자랐다면, 누군가 나를 찾아올 것이라는 기대하는 마음과 한 명씩 나를 떠나가는 상실감을 느끼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내겐 유난히 따뜻했던 봄날 같은 시절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이 황량한 사막 같은 세상을 떠날 때조차 혼자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숨이 막혔다.
아버지는 이런 내게 희망 같은 것을 걸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결국 내게 건 마지막 희망 같은 것은 망상이었다고 판단 내린 듯했다. 마지막으로 아버지를 봤던 날, 나를 바라보던 날의 아버지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나에게 아주 희미한 희망이라도 걸었다면, 나의 인생이 조금 달라질 수 있었을까?' 생각하는 순간, 의미없는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673번, 너 고아라며?"
"그럼 면회올 사람도 없겠네."
"영치금도 한 푼 넣어줄 사람도 없는 거야?"
재판을 마치고 올 때까지 이 감방 안에서도 내 이야기로 흥미진진했던 모양이다. 쓰레기 같은 내 인생도 이런 곳에선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되기도 한다. 나처럼 주변의 어떤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사람들은 그들에게 훌륭한 도구가 되기 때문이다. 쓰다가 버릴 수 있는 도구!
"너무 자책하지 마, 어차피 우린 예비 범죄자들이었어. 그 시간이 언제일 뿐이냐의 문제였지."
눈 사이가 유난히 가운데로 몰려 있는 658번의 그 말이 이상하게 나에게 위로처럼 다가왔다. 순간, 눈빛이 흔들렸지만 난 들키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자신의 인생을 책임지지 못하는 사람은 절대로 타인을 위로할 수 없다고 난 굳게 믿고 있었다. 나만큼의 위중한 범죄를 저지르고 여기에 함께 있는 사람들에게 난 어떤 구원의 손길도 내밀고 싶지도 않았다. 우리는 서로를 향한 칼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673번 면회, 얼른 나와."
673번, 내 이름보다 많이 불리는 수감 번호가 불릴 때마다 내 장기가 땅바닥으로 모두 한 번씩 추락하는 기분이 든다. 학교에서 단체로 간 놀이공원에서 롤러코스터를 처음 탔을 때처럼. 내 장기가 모두 내 몸 밖으로 빠져나갈 것 같다.
모두 이상하게 나를 쳐다봤다. 찾아올 사람도 없고, 영치금 넣어줄 사람도 분명 없는데, 나를 부를 사람이 누구일까 모두 의아한 표정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궁금한 것은 나였다. 나를 찾아올 사람은 아무도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교도관을 따라 걸어가면서 많은 상상을 했다. 엄마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분명 어디서든 내 소식을 듣고 있으면서 내 앞에 나서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세상에 엄마라는 존재는 자기 자식을 한 번쯤 보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이런 곳에서 처음 만날 필요는 없지 않겠느냐고 생각하다가도 금세 누구라도 나를 만나러 와 줄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에 감사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 구멍이 숭숭 뚫린 투명한 창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은 엄마가 아니었다. 순간, 너무나 낯익은 그 얼굴은 바로 담임이었다. 순간, 나는 엄마보다 담임 얼굴을 더 많이 보면서 살았다고 생각하니 어쩌면 내겐 저 투명창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이 엄마였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런 엉뚱한 생각을 끝으로 담임과 마주했다.
"시헌아, 네 재판 보려고 오늘 수업 빠지고 왔어. 많이 힘들지?"
담임은 눈썹 사이를 찡그리다가도 내 표정을 살피며 살짝 햇살 같은 미소로 바라보기도 하면서 나에게 말을 건넸다. 만약 엄마가 있었다면, 이렇게 나를 바라보겠구나 싶었다. 평생 마주하지 못했던 엄마라는 존재가 이 사람이었으면, 하고 생각했다. 내가 태어날 때, 이 사람이 나의 담임이 아닌 엄마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 세상은 내가 가질 수 없는 인생이었다.
"괜찮아요. 선생님."
내 목소리를 겨우 들은 담임은 크게 숨을 한 번 몰아쉬었다. 마이크에 대고 나를 향해 말을 해 주는 단 한 사람. 나는 왜 이렇게도 간절한 담임의 수업을 단 한 번도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었을까 생각했다.
"오늘, 탄원서 제출하려고 왔어. 그런데 큰 도움은 되지 못한 것 같구나. 그래도 시헌아, 선생님은 시헌이가 어디서든 잘 해낼 거라고 믿어."
선생님의 실낱같은 웃음에 '정말 그럴 수 있을까요?' 묻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만약 그렇다면 담임은 내가 분명 희망을 품고 잘 해낼 거라고 믿을 것이고, 분명 희망을 심어 준 죄책감에 나와의 인연의 끈을 놓지 못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요, 선생님. 제 인생은 이미 끝났어요. 할아버지를 밀친 그 슈퍼에서 제 인생은 이미 끝났던 거예요. 그 시간이 천천히 저에게 다가오고 있는 줄 몰랐을 뿐이에요. 저 같은 애는 이미 범죄자가 되기 위해 준비된 아이였어요. 차라리 태어나자마자 끝났다면, 이런 번거로움은 없었을 텐데 아쉬울 뿐이에요."
담임은 아니라고 고개를 좌우로 저었지만, 나는 그만 단념하라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매일 학교에 제시간에 등교하지 않으면 전화를 하던 사람, 밤새 pc방에서 게임을 하고, 나갈 돈이 없어서 전화를 했을 때 제일 먼저 달려와서 대신 돈을 내주고 빵까지 사 주던 사람, 재수 없게 올해 나 같은 학생을 만나서 이렇게 법원까지 와서 쩔쩔매는 얼굴로 투명창 앞에 마이크를 대고 간절히 말하는 사람, 이젠 내 인생에서 이 사람은 '안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나를 위해 애써줄 사람을 만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고개를 숙였다.
"이제 그만 가세요. 위로 같은 건 안 하셔도 돼요. 저는 이곳이 더 익숙한 것 같거든요. 아시잖아요. 저 같은 놈은 처음부터 학교랑은 어울리지 않는 거였어요"
나는 마음에도 없는 말을 내뱉고 쓴웃음을 지었다. 담임이 나를 기억할 마지막 장면이라고 생각했다. 담임은 눈시울이 붉어졌고, 몸 잘 챙기라는 말을 끝으로 일어섰다.
다 빼앗겨 버렸다고 생각했다. 이제 나를 위해 따뜻한 말을 해 줄 사람들을 모두 잃어버렸다. 내 인생은 철저히 버려졌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편이 더 나을 수도 있겠다고 나를 위로했다. 교도관은 나를 데리고 가면서 책 한 권을 내밀면서 담임이 이 책과 영치금을 넣어주고 갔다고 전했다. 숨이 막혔다. 마치 알레르기 증세처럼 목구멍이 막혀 쓰러질 것 같았다. 이내 내 숨통은 간신히 눈가로 눈물을 흘려보낸 후에야 통로를 찾은 것처럼 길을 내주었다. '감사했다'는 말 한마디 하지 못했다. 나는 더 이상 담임을 만나지 못할 것이고, 나는 담임에게도 완전히 쓰레기로 남게 될 것이다. 애써 막힌 목구멍으로 크게 숨을 몰아쉬며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난 예비 범죄자였기 때문에 또 다른 선택지가 없지 않은가!'
내 인생에는 이런 태도가 어울리는 것이라고 설득했다. 어울리지 않게 눈가로 흐른 눈물을 두 손을 올려 옷으로 닦고는 교도관에게 받은 무거운 책을 들고, 다시 원래 있던 곳으로 들어갔다. 한낮의 꿈을 꾸었다고 생각했다. 나에게 남은 것은 단지 두 세계, 나와 똑같은 옷을 입고 다른 번호를 가슴에 새긴 저들과 함께 보낼 세상과 담임이 건넨 책 속의 세계, 그 두 세계만이 나를 향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