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질문

by 이생

법정에 들어서는 순간 알았다. 바람은 멀리 언덕이나 바다에서 불어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마음속에서 불어온다는 사실을. 내가 마주해야 했던 어린 시절의 풍경들에서 늘 추웠던 이유를 알 것 같다. 내게 온풍이 불어온 적은 없었다. 누군가는 하늘에는 별빛이 있고, 지상에 별이 있다면 사람들의 따뜻한 눈빛이라고 했는데, 지금 나를 바라보는 눈빛은 모두 식어버린 별빛들이었다. 그들에게 따뜻함을 잃어버리게 한 것은 나인 걸까? 나는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생각했다.


그 순간, 어젯밤 꿈을 생각해 냈다.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가자며 택시를 부르자고 했다. 다른 집은 한 대씩 있는 허름한 자동차도 우리에겐 허락되지 않았다. 아버지는 계속 택시를 불러야 한다고 했지만, 정작 아버지는 휴대폰을 들고 있지 않았고, 나는 내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으려고 했는데, 버튼이 눌리지 않았다. 휴대폰 버튼은 아무리 해도 눌리지 않고, 나는 너무나 많은 신발들 속에서 잃어버린 운동화 한쪽을 찾기 위해 애를 썼지만, 할 수 있는 것은 꿈에서 깨는 일뿐이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꿈에 나온 건 일주일만이다. 아버지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집에 와서 이틀 정도 계속 연이어 잠을 자다가 다시 일을 하러 가곤 했는데, 대부분은 집에서 하는 일은 술에 취해 잠드는 일뿐이었다. 아버지가 다시 일을 하러 돌아간 후면 술병을 갖다 버리는 일이 마치 나의 루틴처럼 당연한 듯했다. 그런 행동이 나에겐 아빠와는 다른 삶을 살겠다는 의지였던 것 같다. 그냥 집에 술병을 쌓아두는 일은 생활을 잃어버린 모습 같았다. 이상하게 그 술병은 그저 술병 자체가 아니었다. 아버지의 고단한 삶이 느껴지기도 하고, 할머니의 한 섞인 넋두리의 잔상 같은 것이었다. 그것들을 지켜보고 싶지 않았다. 언제 쓰러져서 깨질지 모르는 술병 같은 인생은 살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다.


아버지가 마시다 남긴 술병을 치우면서 난 싱크대에 서서 그 술병에 담긴 술을 마치 음료수처럼 마시곤 했다. 이상하게 속이 쓰린데도 그런 쓰라림이 마치 진정한 나를 찾은 것 같은 마음까지 들게 만들었다. 그렇게 아프고 쓰리고 우울한 것은 모두 내가 입어야 할 옷처럼 느껴졌다. 난 운명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선 그럴 리 없다고 부정했다. 그때는 그래도 내게 희망 같은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믿었다.


내가 마시는 술은 아버지가 남긴 술의 양만큼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나는 다른 사람이 가르쳐 주지 않아도 술을 꽤나 잘 마시는 아이가 되어 있었다. 어떤 날이면 속이 너무나 쓰려 일어나 보면 아버지는 이미 떠나간 후였다. 라면 하나 해장할 시간도 없이 가버리는 아버지는 그렇게 한 달 동안 나를 혼자 두면서도 그리 넉넉한 편은 아니었다. 아버지는 한 달에 한 번 나에게 생활비를 가져다주었지만, 그건 나를 대하는 최소한의 예의였던 것 같다. 포기하고 싶어도 더 이상 맡길 사람이 없어 끝까지 잡고 있어야 하는 줄 같은 존재가 나였던 것이다. 나 역시도 그랬다. 학교에서 쓸 수 있는 가족이라고는 아버지 밖에 없었다. 다른 아이들이 한참을 써 내려가는 가족 사항란에 나는 그저 아버지 이름 밖에 쓸 것이 없었다. 늘 아버지의 직업란은 비워 두었다. 사실 아버지가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는 것도 있지만, 일정치 않게 건물 공사를 하러 다니는 아버지의 직업을 그렇게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직업을 정확히 적지 않아도 대부분 선생님들은 구체적으로 물으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때론 학교에서 나의 가정환경이 넉넉지 않다는 것을 알고 생활비를 지원해 주기 위해 아버지의 직업을 물어보았는데 나는 늘 집을 지으러 다니신다고 말하면, 선생님들은 아버지의 일을 '건축업'이라고 써 놓곤 하셨는데 나는 그 말이 너무 멋있어 보이기까지 했고, 그렇게 세 글자로 줄여서 적어주는 선생님이 감사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어떤 선생님은 '일용직'이라고 적었는데, 그 말이 나에겐 감옥처럼 느껴졌다. 나는 다른 세상을 꿈꿀 수 없는 아이라는 낙인처럼 들렸다. 나는 더 성장할 필요도 없는 존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냥 나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아버지의 직업은 나에겐 나를 나타내는 상징 같은 것처럼 느껴졌다. 직업엔 귀천이 없다고 하는데, 아직도 직업에는 귀천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학교생활도 열심히 하고, 공부도 잘했다면 아마 아버지의 직업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을 텐데 나는 그렇지 똑똑하지도 현명하지도 못했다.


지난겨울, 친구 집에 모여 술을 마셨고, 술이 떨어지자 술을 더 사 오자는 친구와 함께 늦은 밤 할아버지가 지키고 있는 구멍가게에서 술을 사고 나오려는데 할아버지 계산대에서 돈을 본 친구는 나에게 아무 말없이 고개를 할아버지 쪽으로 한번 휙 돌리고는 다짜고짜 할아버지를 밀치고 계산대에 있는 돈을 꺼내려고 했다. 할아버지는 친구의 손을 꼭 잡고 놓지 않았고, 나는 그 순간 그곳을 벗어날 방법은 친구를 돕는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 같다. 결국 실랑이중에 할아버지를 밀치면서 할아버지는 머리를 부딪혔고 우리는 돈을 챙겨 다시 친구 집으로 돌아왔다. 친구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자 친구들은 모두 놀라면서도 가져온 돈으로 무얼 할 것인지 궁금해했다. 이상한 일은 할아버지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그날 밤, 내가 술을 마시지 않았다면, 내가 친구집에 가지 않고 집에서 그냥 게임이라도 하고 있었다면, 내가 술을 사러 가지 않고, 다른 친구를 가게 했다면, 그리고 내가 평소에 아버지가 남긴 술을 마시지 않았다면, 그리고 할머니가 나를 혼자 두고 떠나지 않고 조금만 더 사셨다면, 아니 내게 처음부터 엄마가 있었다면, 나는 어쩌면 그 자리에 있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랬다면 할아버지는 돌아가시지 않았을 테고 누군가의 판결에 의해 내 인생이 달라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간신히 버텨내고 있던 아버지의 삶도 무너지지 않았을 것이다. 아버지는 나를 면회 온 이후 집으로 돌아갔고, 그날이 아버지의 마지막 날이었다.


"피고인, 마지막으로 할 말 있나요?"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난무한 말들을 끝으로, 그날의 수업을 마친 선생님처럼 판사님은 나에게 마지막 기회처럼 질문을 했다.

난 마치 판사님의 그 말을 기다렸던 것처럼 질문했다.

"판사님, 이제 제 인생은 끝난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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