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분명 날 사랑하지 않았다

by 이생

엄마는 분명 날 사랑하지 않았을 것이다. 살아 있으면서 자신이 낳은 자식을 한 번도 보러 오지 않는다는 것은 내 존재를 부정하고 싶다는 의미라고 생각했다. 사실 엄마에 대한 미련은 중학생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버려야 하는 감정이었고, 가진다고 해도 나에겐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아이들 곁에 너무나 다정하게 있는 존재가 나에겐 없다는 사실에 가슴이 아픈 것도 나에겐 우스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할머니는 엄마가 없어도 훌륭하게 잘 자랄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어쩌면 그 말을 신앙처럼 믿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내게 그런 일들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할머니 옆에서 숙제를 잘해가지고 갔지만, 숙제가 내 인생을 바꾸지 못한다고 느끼면서 숙제는 물론이고, 수업도 듣지 않았다. 나에겐 그저 잡음 같은 것에 불과했다. 어떤 수업에서도 내 인생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 같은 것을 알려주는 법은 없었다.


그 지루한 관심 없는 옛날의 지식으로 나의 고민을 해결하기엔 시간 차가 너무 많이 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선생님들도 나에게 관심이 없었다. 나와 선생님들 사이엔 교과서가 있었고, 그 장벽은 너무나 높았다. 그것은 중학생이 되면서 다른 나라의 언어처럼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것이 되어 버렸다. 학교에선 나를 기초반으로 분류했지만, 그곳에서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것은 다른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수업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을 말해주는 듯했다.


나에겐 공부에 대한 어떤 의지도 없었다. 학년이 올라가면 또다시 기초반이 되고, 난 이렇게 졸업장만 따는 것이 맞는 것인지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 내가 기초반이 되고, 그 기초에서 벗어나질 못해도 그것은 어떤 누구의 책임도 아니었다. 학교에선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에 관심이 없고, 내가 하지 못하는 것에만 더 집중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기초반에 들어가면서 다른 친구들이 듣는 수업을 도저히 알아듣지 못하는 귀가 있다는 것을 알았으며, 그들의 인생을 쫓아가기엔 이미 늦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내가 잘하고 싶은 것, 또는 잘할 수 있는 것에 대한 목표를 상실했다. 매 순간, 내가 잘하지 못하는 것에 집중하느라 나 자신에 대한 의지조차도 잃어버릴 지경이었다. 선생님들은 나보다 더 안타까운 눈빛으로 나를 애써 가르치려 했지만, 그들도 나를 감당해야 하는 그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는 눈치였다.


인생의 큰 중심축이 있다면, 나는 그 중심축에서 점점 멀어져 원의 가장 변두리를 향해 치닫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다른 친구들은 그 중심축에서 멀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거대한 폭풍우에 맞서고 있다면 나는 이미 그 바람의 영역에서 벗어나 그저 스스로 버려지기를 기다리는 인간처럼 느껴졌다.


사랑받지 못한다는 것, 나의 출생을 부정한다는 것, 어떤 누구도 나의 삶을 응원하지 않는 것들 앞에서 사람은 희망을 잃게 된다. 그보다 나의 인생을 망가뜨림으로써 그들을 괴롭게 하고 싶다는 충동마저 느꼈었다. 하지만, 나의 불행 앞에서 아무도 슬퍼할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두려웠을지도 모른다. 그런 두려움이 찾아올 무렵, 내게 찾아온 그림자가 있었다. 그들은 내게 담배를 권했고, 술을 가져오게 했다. 가끔은 아버지가 사놓은 술병 중, 몇 개를 가지고 가기도 했다. 아버지는 없어진 술병 같은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도저히 남의 인생을 책임져 줄 만한 여유가 없었다. 그에게는 어린 시절, 어머니를 폭력으로 일삼는 아버지라는 어두운 그림자에 간신히 쫓겨 다닐 만큼의 간절함 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잘못된 연대라는 것은 혼자 숨겨진 동굴만큼의 긍정적 의미도 없을지도 모른다. 내가 만약 아버지처럼 자신만의 동굴에 들어가 문을 닫고 있었다면, 담임이 다른 아이들의 수업을 빼고 나를 찾아오게 하는 번거로움은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분명 다른 사람을 미리 해치려는 쪽보다 당하는 편에 가까웠으므로. 누구나 가지고 있는 양날의 검을 잘 간직하고 살았다면, 나는 분명 적어도 이곳이 아닌, 내 방에서 누워 있을 것이라는 후회가 밀려왔다.


더 이상 내 인생을 잘못된 연대에 휘말리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나는 철저히 고립되어 지내다가 이곳을 만약 떠날 수 있게 된다면, 아주 먼 곳으로 혼자만의 성에 철저히 갇혀 버릴 것이라고 다짐했다. 어쩌면 이런 생각은 이미 늦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의 생명값을 내 몸으로 어떻게 내놓아야 하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저 내 인생이 빨리 흘러갔으면 좋겠고, 내게 남은 인생은 그리 길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엄청난 연대처럼 같은 죄수복을 입고 있는 그들과 나 사이에 구별할 수 있는 것은 빨간 표지에 장미꽃이 그려져 있는 책뿐이었다. 담임이 주고 간 책. 릴케 시집이라고 적혀 있었다.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그의 이름이 너무나 부러웠다. 담임은 이 책을 절대 쉽게 들고 올 사람이 아니다. 평소 교과서보다 책 한 권을 읽을라고 했던 담임의 그 말이, 내겐 마치 예언처럼 느껴졌다. 순간, 어쩌면 내가 이 책을 다 읽을 무렵 담임이 나를 다시 보러 와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오로지 내가 기댈 수 있는 것은 헐겁게 적혀 있는 글씨들 뿐이었다. 빽빽한 글씨들이면 들춰 보지도 않으리라는 것을 담임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시였다.


- 때때로 한밤중에 문득

바람은 어린아이처럼 잠을 깬다.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글자들이 내게 있다는 것이 위로가 되었다. 담임은 어쩌면 나를 다시 보러 올지도 모른다. 나를 낳지 않았지만, 나를 보러 와 줄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어렴풋한 희망을 꿈꾸었다. 그렇다면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을 꼭 말하고 싶었다.


희망을 꿈꾸면 안 된다고 하면서도 그럴 수 없는 처지가 되었을 때, 어리석게 불가능한 것을 꿈꾸게 된다. 나는 범죄자가 되었고, 내 곁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너무 두렵다. 아무리 반성을 한다 해도 지나간 과거는 결코 되돌아오는 법이 없다. 남아 있는 내 인생과 그날밤의 시간을 바꿀 수만 있다면, 그런 일이 가능할 수 있다면 기꺼이 바꾸고 싶었다.


- 나는 죽고 싶다. 혼자 있었으면 한다.

맥박이 터질 만큼

불안해지리라는

생각이 든다


내 마음이 릴케라는 시인의 시 속으로 들어갔다. 그가 느꼈을 그 두려움과 불안함이 어쩌면 나와 비슷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나 많은 생각들로 머리가 터질 듯하다. 생각을 내 몸에서 분리하고 싶다. 멀미가 난다. 이 차에서 내리고 싶다. 견디기 힘든 밤이다.


난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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