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주어진 최대의 형벌이었다

by 이생

선생님은 내가 책을 다 읽기 전에 책을 보내 주셨다. 나에게 책을 읽는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책을 읽지 않는다면 선생님과의 인연은 끝이 날 것 같았다. 더이상 내 곁에 있던 어른들이 하나, 둘 떠난다는 것이 너무나 두려웠다. 더욱이 혈육으로 맺어진 가족 관계도 아닌데 내일이라도 당장 연락을 끊는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생님이 보내 주는 책만은 꼭 읽어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했다. 혹시 나를 보러 단 한 번이라도 와 주신다면 책에서 의미 있었던 부분을 말함으로써 선생님이 보내 주신 책을 열심히 읽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그것은 마치 아기가 엄마 뱃속에서 탯줄과 연결되어 있는 깊은 유대 같은 것처럼 나에게도 아직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안정감을 찾고 싶었기 때문이다.


책을 읽어나가면서 나는 이 책 속에서 언젠가 어린 나이에 내가 여기에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 찾아보고 싶었다. 나의 입장에서가 아닌 객관적인 상황에서 나를 관찰하고 싶었고, 앞으로의 삶의 오류를 줄이고 싶었다. 다른 아이들처럼 평범하게 살아갈 수 없다는 것에서 내가 그 한순간의 실수를 만들어 낸 삶을 살았던 것을 다시 거슬러 올라가고 싶은 욕구가 들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 삶을 선택하기에 저렇게 자유롭고 행복한 가정 안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예전에 선생님은 수업 시간에 책 속엔 길이 있다는 뻔한 말씀을 해주곤 하셨다. 그때 그 말은 내게 아무런 의미 없는 말이었다. 나는 그 사실을 믿지 않았지만 지금은 너무 간절하게 그 길이 있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이 생겼다. 그래서 나의 길도 책 속에서 찾을 수만 있다면 '이 창살 끝 어딘가 그 길이 나에게 연결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양심 없는 간절함을 품기도 한다.


나를 포함한 이곳에 있는 아이들은 왜 자유로운 공간에서 살아가지 못하는지 그 이유가 너무나 궁금했다. 우리에겐 무엇이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었는지 답을 찾고 싶었다. 나는 사실 여기에 있으면서도 '내가 그날 그 친구네 집에 가지 않았더라면', '할머니가 나를 조금 더 오래 보살펴 주었더라면', '아버지가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이었다면', '내가 그 친구가 슈퍼에 가자고 했을 때 거절했다면' 이런 생각들을 수없이 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날, 순간의 실수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우리가 말하는 한순간의 실수라는 것은 살아왔던 각자의 시간들의 과오가 누적된 결과라고 생각한다. 내가 잘못 살아온 지난날의 시간들로 인해 슈퍼 할아버지는 안타깝게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나는 이 사실들을 다시 되돌릴 수 없으며, 평생 누군가의 목숨을 해친 사람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


가장 괴로운 것은, 그 시간들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이다. 누군가를 죽게 만든 사람이라는 이 죄책감으로 내 숨통을 조여오는 공포 속에서 밤을 지새우기도 한다. 어느 밤은 나 자신에게 짙은 혐오가 밀려와 수없이 구토를 해야만 했다. 그렇게 내 더러운 오물들을 토해내도 시간은 나에게 깨끗했던 과거를 결코 돌려주지 않았다.

나는 더 이상의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없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고 생각했다.


이곳에 들어온 지도 벌써 한 계절이 흘렀다. 사실 이곳에서의 시간은 유난히 더디게 흘러간다. 누군가의 삶을 파괴했다는 것은 나 역시 자유롭게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것에 대한 합당한 대가가 무엇일까, 내 스스로의 목숨 값을 내놓는 것으로 마무리 지을 수 있을 것인가 고민하고 있을 때, 교도관이 나를 불렀다. 누군가 나를 면회 왔다고 말했지만, 나는 그 사람이 선생님이라는 것을 알았고, 밑줄을 그어 놓았던 책의 한 구절을 되뇌었다. 내가 선생님의 의도대로 변화할 마음가짐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조금의 가능성이라도 남아있는 인간이라는 것을 알려 드리고 싶었다.


교도관을 따라 문으로 들어섰을 때, 어색한 듯 웃음 짓는 선생님의 표정에 불안했다. 예전에 나를 보러 오셨을 때와 다른 표정이었다. 그때는 절망적이지만 슬픈 감정을 애써 삼키며 차분한 실금 같은 미소를 지으셨다면, 오늘은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훌훌 떠나가 버린다는 안도감에 한결 가벼워진 표정 같은, 이제 선생님과 나 사이에 간절히 기대하는 것이 사라져버린 그런 불안하지만 명쾌한 미소를 지으셨다.


불안한 나는 먼저 말을 꺼냈다.

"선생님 저 여기서 정말 잘 적응하고 있어요. 그리고 선생님이 보내주신 책도 거의 다 읽어가고 있고요."

내 목소리는 사실이 아닌 것처럼 이내 떨리고 말았다. 선생님은 한숨을 내쉬고는 웃으셨다.

"괜찮아, 책 보내주는 거, 너무 부담 갖지 말고, 힘들 때 위로가 된다면 읽어봐. 그래도 읽고 있다니 너무 다행이다."

선생님은 어깨가 들썩일 정도로 깊은 숨을 내쉬고는

"시헌아, 선생님 이제 여기에 못 올 거야."

선생님은 한동안 외국에 나가 있어야 할 일이 생겼다고 말씀하셨다. 왜 외국에 나가셔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없었고, 나는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럴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순간, 여러 감정이 섞여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마도 선생님은 내 표정을 보면서 뭔가 내게 불쾌한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하셨을 것이다. 마치 급체한 것처럼 내 감정이 순간 엉켜버리고 말았다.


결국 나는 내 곁에 아무도 남지 않는 형벌을 받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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