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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가질 수 없는 타인의 세상 이야기 - 저작권

by 이생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류시화 시인의 책 제목이다. 이것이 작가의 책 제목이라는 것을 깨닫기 전, 저작권 관련 주제를 생각했을 때, '나는 너가 아니고 나인가'라는 구절이 떠올랐다. 순간, 나는 이 제목을 내가 생각해 낸 것이라고 착각했었다. 그런데 그 구절을 곱씹을수록 어디선가 들어봤던 내용이라는 생각이 떠올랐고, 결국 류시화 시인의 책 제목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당시 읽어보진 않았어도 류시화 시인의 책을 검색하던 과정에서 스치듯 봤던 제목이 내 기억의 일부로 남아 내가 생각했던 구절이라 착각했던 것이다.


'나는 너가 아니고 나인가'라는 구절을 떠올린 것은, 단순한 모음의 차이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은 그저 단순한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나'와 '너'의 차이, 어쩌면 'ㅏ'와 'ㅓ'변화로 단순해 보이는 듯하지만, 그것이 가리키는 대상은 분명 다르며, 그 모음의 차이는 그들의 생각을 넘어 그들과 관련된 세상을 포함하는 것임을 말하고 싶었다. 그리하여 '너의 것'을 '나의 것'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는 생각은 시도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전하고 싶었다.


애니메이션 영화 <코코>에서 주인공인 미겔은 음악을 좋아하는 소년이다. 멕시코 명절인 '망자의 날'에 전설적인 가수 델라크루즈의 기타에 손을 댔다가 죽은 자들의 세상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미겔은 자신의 고조할아버지인 헥터의 존재를 알게 되고, 헥터는 자신의 존재를 아무도 기억하지 않아서 소멸될 위기에 처했다가 억울한 상황에서 벗어나면서 가족들과 만나게 된다. 살아 있을 때, 헥터는 델라크루즈와 함께 공연을 하러 다녔는데, 가족이 그리워져서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헥터의 노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델라크루즈는 결국 헥터의 술잔에 독을 타서 그를 죽이고, 그의 음악 노트를 훔쳐 유명한 가수가 된다. 이를 모르는 미겔의 고조할머니이자, 헥터의 아내인 이멜다는 어린 딸 코코를 키우며, 음악을 아예 없애고, 구두 만드는 일로 살아가게 된다. 그녀에게 음악은 가족을 포기하게 만든 상처로 남았던 것이다. 결국 헥터와 이멜다는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되지만, 그들이 지나온 세월은 결코 보상받을 수 없는 것이었다.


헥터와 델라크루즈, 즉 '나'와 '너'는 단순한 그들의 존재를 넘어 그들을 키운 부모들과 그들이 함께 하고픈 가족들까지 모두 다르다. 델라크루즈는 음악이 전부였기에 남의 목숨을 헤쳐서라도 음악을 하고 싶었겠지만, 헥터는 음악을 포기해서라도 가족에게 가고 싶었던 인물이다. '나의 것'과 '너의 것'을 구별하지 못하고, 그 존재 가치를 침범한 결과는 그저 자신이 갖고 싶은 것을 갖게 되는 결과만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삶과 관련된 모든 것을 파괴하는 결과를 만들었다.


델라크루즈의 욕심 즉, '너의 것'을 '나의 것'으로 만들려는 그 마음은 헥터를 간절히 기다렸던, 코코와 그의 아내를 절망 속에 살아가도록 만들었으며, 그의 손자인 미겔에까지 좋아하는 음악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남의 것을 자기 것으로 차지하려는 마음, 그 이기심에서 모든 것이 비롯되었다. 저작권은 단순히 시, 음악, 소설, 영화로 표현된 작품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나'와 '너'라는 한 글자에서도 'ㅏ'와 'ㅓ'의 변화는 단순히 모음을 회전시킨 것 그 이상의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는 것처럼 한 곡의 음악, 한 편의 시와 글 속의 한 구절은, 그것을 만들어낸 '그'의 모든 것을 의미한다. '그'를 성장시킨 부모의 마음과 노력, 그리고 인내의 값이며, '그'가 했던 수없이 많은 생각들과 삶의 과정을 내포한다.


류시화 시인의 책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에는 인디언 부족의 영토를, 지나가는 통로로만 사용하겠다는 약속을 깨고 그 영토를 침범하고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지 않음으로써 그 부족의 평화를 무너뜨린 백인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자연'을 개발해야 하는 대상으로만 보고, 그들의 삶의 터전을 파괴함으로써 이득을 취하는 무리들이 그 '자연'을 보존하고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고 있는 인디언 부족에게 얼마나 잔인한 결과를 초래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나의 입장만이 아닌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자신의 판단으로 인해 타인에게 미칠 영향을 짐작해 본다면, 그래서 그 이기심을 멈출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화엄경 유심게에서 말하는 바처럼, 마음은 화가와 같아서 모든 것들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우리에게 몸과 마음이 있다는 것은, 우리가 몸으로 행하기 이전에 마음으로 미리 그려봄으로써 우리가 하려는 일들이 나를 비롯하여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가늠해 보는 지혜를 선물한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세상엔 다양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태어난다. 그러기에 내가 가지지 못한 능력을 분명 타인이 갖고 태어나게 마련이고, 내가 원하는 삶이 타인이 이뤄놓은 삶일 수 있다. 하지만, 분명 그것은 '타인의 삶'이지 '나의 삶'이 아님을 인정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이상적으로 보이는 삶이 결코 행복하고 완벽한 삶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가장 행복한 삶이란, 자신이 이뤄낸 삶 속에서 평화를 찾으며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류시화 시인의 책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에서 가장 널리 애송되는 인디언들의 기도문이 있다.

"나는 내 형제들 위에 군림하기 위해 힘을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나의 큰 적인 나 자신과 싸울 수 있도록 힘을 원하는 것입니다. 나 자신이 삶 속에서 언제나 깨끗한 손, 똑바른 눈을 갖도록 도와주소서."


오로지 내가 채워가는 삶으로도 만족하고 행복을 발견하는 지혜가 필요한 것 같다. 내가 이룬 나의 삶을 존중할 수 있는 힘을 기를 때에야 비로소 남의 삶도 존중하는 힘이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영화 <코코>에서 헥터는 세상을 떠나고 어린 코코는 할머니가 되어 기억을 거의 잃었지만, 먼 옛날 코코의 어린 시절, 아버지가 만들어서 들려줬던 노래, <Remember me>를 기억해 내고 손자인 미겔의 기타 연주에 따라 함께 부른다. 저작권은 '나의 것'과 '너의 것'을 구별하는 기본적인 태도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나의 것'과 '너의 것'은 단순히 '나'와 '너'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세상'과 '너의 세상'의 문제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나'와 '너'가 사라져도 그들이 남긴 세상은 남기에 우리는 타인의 세상을 침범하는 우려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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