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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내누 Aug 14. 2022

어제의 나와 우리

우리들의 해방일지: 아내 51일째

8월 13일(토) 습한 여름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뜨렸다...! 엊그제 '레알' 샴페인을 터뜨리며 놀았더니 어제 너무 힘들었다. 일기도 못쓰고 첫째와 뻗어버려 어제의 일기를 오늘 쓰고 있다. 


새벽 수유 담당까지 하면서 난 잠이 너무 부족했고 오전 내내 좀비와 같았다. 오후엔 좀 일어나 첫째와 놀아주자니, 둘째의 칭얼댐이 들려오고 두 아이를 남편과 내가 동시다발적으로 한 공간에서 보고 있자니 자꾸 부딪힘이 생겼다. 


아무래도 안되겠어! 마음의 소리를 듣고 얼른 씻고 첫째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후- 살 것 같다. 하루에 나갔다 들어오는 시간이 1시간은 되어야지 몸도 마음도 진정이 되는 것 같다. 


첫째와 둘만의 외출은 늘 즐겁다. 집에서와 달리 집 밖에선 의젓한 아들이다. 근처 마트에서 시원하게 놀멍 쉬멍 밥까지 먹었다. 메뉴는 돈가스다. 같이 나온 수프를 맛있게 먹더니 한 그릇 더 먹고 싶다길래 사장님께 부탁해 수프 한 그릇을 더 얻었다. 막상 새 수프가 나오니 안 먹고 싶어 하는 첫째의 태도에 난감하다. 먹으라고 하면 엄마 보고 먹으라고 하고. "엄마는 수프 안 좋아해" 했더니 "안 좋아하는 것도 먹어야지. 한 입 먹어보고 얘기해"라고... 늘 내가 첫째에게 하는 말을 똑같이 하는 첫째의 말에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났다. 

 

해질녁 동네 공원으로 향했다. 첫째가 애정 하는 동네 친구네를 만났다. 오랜만의 만남이라 엄마들 간에도 수다가 쉴 새 없이 이어졌다. 대부분 아이들 이야기, 아이 키우는 이야기다. 아이들 둘이 노는 걸 보노라면 어쩜 저렇게 행복할까 싶을 만큼 즐겁게 논다. 이 놀이는 깜깜한 밤까지 이어져 첫째와 집에 도착한 시간은 9시 30분 무렵이다. 


"동생이 자고 있으니까 조용히 씻자." 


내 말에 첫째는 기특하게도 아주 조용히 샤워를 하고 책을 몇 권 읽다가 나와 이불에 누웠다. 


"엄마, 우리 자기 전 이야기해야지." 


첫째의 요구에 이야기를 나눠 보려고 하는데 늘 그렇듯 이 녀석은 내가 어떤 질문을 하던 "모르겠어"라고만 한다. 그 동안은 "그럼 우리 이야기 그만하고 자자"라는 패턴으로 내가 대화를 포기해 왔다. 그런데 이제 좀 달라져야겠다. 내가 내 기분과 생각을 말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언젠가 이 아이도 날 따라 하지 않을까? 내 잔소리를 따라하듯 말이다.  


"엄마는 오늘 너와 밖에서 노는 게 참 재미있었어. 아까 낮에는 기분이 안 좋았는데, 기분이 좋아지더라고. 동생도 아껴주고 엄마, 아빠 말도 잘 들어서 늘 고마워."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아무 말 대잔치를 했던 것까지가 내 기억의 마지막이다. 아마 나도, 첫째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잠에 빠진 모양이다. 그렇게 가족 좀비 무비의 결말은 모두가 잠의 바다에 풍덩 빠지는 엔딩으로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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