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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내누 Aug 13. 2022

밤에는 자야 해요

우리들의 해방일지: 남편 51일째

8월 13일 토요일 간헐적 비


어젯밤엔 샴페인을 터트리고 아내와 너무 기분을 내고 말았다. 일기를 올리고 와인잔을 기울이면서 조촐한 파티를 하는 정도로 시작했는데, 엄마 아빠의 시간을 위해 배려해준 것인지 9시에 잠들었던 둘째가 2시가 되어서야 울음을 터트렸다. 5시간이나 잔 것이다. 물론 기쁜 일이지만, 잘 시간에 '어차피 곧 먹여야 하니까 이것만 보자'라고 <마녀사냥2>까지 보다가 2시까지 잠에 들지 않았던 우리는 사실 평소보다 더 잠이 부족했다.


육아 입문자의 바이블로 통하는 '삐뽀삐뽀119' 책에서는 수면에 대하여 57페이지나 할애하여 매우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여기에서 이런 문구가 있다. '아가가 잔다고 카톡 하거나 인터넷 보다가는 쉴 시간이 부족해서 정말 고생할 수 있답니다.' 그리고 사람에게 잠이 부족하면 이런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나열한다.


- 몸과 마음이 힘들어서 일상생활이 힘들어집니다.

- 주의력이 떨어지고 사고의 위험성이 높아집니다.

- 집중력이 떨어져 학습능력도 떨어집니다.

- 졸려서 불안정한 성격을 보이고 쉽게 좌절하고 충동적이 되고 스스로의 감정을 잘 조절하기 힘듭니다.

- 잠을 적게 자면 비만이 더 많이 생깁니다.


물론 이건 아가들에게 수면교육을 잘해서 수면의 질을 높여주어야 하는 이유와 수면이 부족하면 성장하면서 생길 수 있는 문제를 설명하기 위한 내용이다. 하지만 잠을 충분히 자야 하는 건 어른도 마찬가지다. 저기 나열된 문제들은 실은 거의 오늘 내가 겪은 것들이었다.


일단 새벽 5시경에 둘째와 고군분투하는 아내 때문에 잠시 깼다가 다시 잠에 들었다. 아내는 새벽수유 담당이라 이때 또 못 잤으니까 나보다 새벽잠이 더 부족했을 것이다. 나는 그 뒤로 첫째가 8시쯤 일어나서 놀아달라고 하는 바람에 강제로 기상하게 됐다. 반쯤 감긴 눈으로 아이와 놀아주고 아침 준비를 한창 하고 있는데 9시 반쯤 아내와 둘째가 같이 일어났다. 둘째는 평소보다 잠을 푹 잔 것 같이 기분이 좋은데 아내도 나처럼 퀭한 눈을 하고 있었다. 토요일마다 하는 영어놀이수업 <잉글리시에그>를 데리고 갔다 오는 동안에도 졸음은 가시지 않았다. 집에 와서 보니 아내도 오전 낮잠을 잘 줄 알았던 둘째가 잠을 안 잔다며 한숨을 쉬고 있었다.


이런 상황은 오후에도 이어졌다. 오늘따라 유난히 둘째는 낮에 잠을 자려하지 않고 계속 보챘다. 첫째와는 둘 중 한 명이 계속 놀아주어야 했다. 그러다 보니 둘 다 낮잠도 잘 새 없이 늦은 오후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 사이에 극도로 예민해진 아내와 공격적인 말도 몇 번이나 주고받았다. 오늘은 참 못난 아빠였다. 그나마 아내가 첫째를 데리고 쇼핑몰에 갔다가 첫째의 친구 및 그 부모님과 공원에서 시간을 보내고 오지 않았더라면 저녁까지 그런 분위기가 반복될 뻔했다. 다행히 둘째도 잠깐 아빠가 저녁 먹는 시간 동안 자줘서 조금 쉴 수 있었다.


아무래도 이래선 안 될 것 같다. 나는 원래 원래도 밤에 늦게 자고 아침잠이 많은 편이다. 어느 정도냐면 올해 들어서 12시 전에 잔 날을 손에 꼽을 수 있다. 보통 새벽 1시쯤 자서 아침 7시 반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는 사이클이었다. 늘 잠이 부족했다. 근데 휴직하고서도 그러고 있다니. 그나마 낮잠을 잠깐씩이라도 자고 '커피냅'으로 정신을 차리게 만들기도 하지만, 그저 임시방편일 뿐 부족한 잠을 보충하기엔 역부족이다.


아이들에게 가르칠 때는 솔선수범이 중요하다. 부모가 안 하면서 아이에게는 하라고 하는 것은 명분이 없다. 아기에게 수면교육을 하면서 제일 먼저 가르치는 것이 낮과 밤을 구분하는 것이다. '지금은 밤이고, 밤에는 잠을 자야 한다.'라는 당연한 사실을 알려주는 데서 출발한다. 근데 오늘 유독 잠을 안 자는 둘째가 나를 보는 눈빛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너나 잘하세요"


그래 오늘부턴 일찍 잘게 아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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