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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내누 Aug 14. 2022

프로 주부의 무탈한 일요일  

우리들의 해방일지: 아내 52일째 

8월 14일(일) 비가 쏟아질 것 같지만 쏟아지지 않았음


개운하게 기상했다. 어제 쓰러져 푹 잔 덕분이다. 일어나니 모두가 꿈나라. 둘째가 깨려 하길래 남편에게 더 자라고 한 뒤 둘째 아침 수유를 하고 토닥이니 다시 잔다. 첫째도 엄마를 찾는 듯하더니 거실로 나와 다시 잔다. 남편도 둘째를 나에게 인계하고 다시 잔다. 


자유다! 이 자유 시간에 난 집안일을 한다. 억지로 하는 게 아니라 굉장히 기분 좋게, 여유롭게 한다. 아무의 방해도 받지 않고 하는 집안일이 또 꿀맛이다. 이게 7년 차 주부의 짬이다. 애 둘을 낳으니 나도 많이 변한다. 수북이 쌓인 젖병 설거지를 하고, 식기세척기를 열어보니 어라? 어제 넣은 그릇을 아직도 안 돌렸다. (정확히는 그제 밤에 넣은 것들이다...) 어제 상태가 영 메롱이었던 나와 남편 모두 잊은 것이다. 서둘러 식세기를 돌리고, 건조기의 빨래를 꺼내 갰다. 다시 또 한 번의 빨래를 돌리고, 청소기까지 돌렸다. 다 끝내니 너무 개운하다. 


그러고도 아무도 일어나지 않는다. 나는 여유롭게 유튜브로 '대화의 희열 - 오은영 편'을 보면서 아침 식사 준비까지 했다. 그쯤 되자 첫째가 일어난다. 일어난 첫째와 아침을 먹는다. 첫째의 메뉴는 늘 그렇듯 사과 한 알, 식빵, 우유 한 잔이다. 난 냉장고에 굴러다니던 아보카도와 스트링치즈를 꺼내고 계란후라이를 해서 아보카도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었다. 첫째와 책을 읽으며 아침을 다 먹자 둘째의 인기척이 들린다. 


더 재우려면 더 재울 수도 있겠지만 이미 10시다. 첫째와 둘째에게 말을 걸어보니 둘째가 일어난다. 아마 지난밤 푹 자지 못했던 게 아닐까 싶다. 어쨌든 모두가 늦잠을 자고, 특히 둘째가 분유를 먹고 2시간이나 더 잔 덕분에 느긋하게 집안일을 하고 첫째와 아침을 먹을 수도 있어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아침이었다. 


둘째와 남편이 일어나고, 남편에게도 아보카도 샌드위치를 해주었다. 그리고 난 유튜브로 홈스트레칭을 했다. 14분짜리와 7분짜리 영상 2개를 보면서 따라 했다. 첫째도 내 옆에서 어설프게나마 따라 한다. 그 모습이 정말 귀여웠다. 스트레칭을 마치고 나의 '스트레칭 대장' 스티커를 하나 또 붙였다. 20개 채우면 나에게 주는 선물을 하나 살 것이다. 


점심 메뉴는 볶음밥이다. 첫째에게 유부초밥 vs 볶음밥, 두 가지의 선택권을 주자 첫째가 볶음밥을 선택했다. 신김치와 소시지, 당근을 꺼내 밥과 볶았다. 아이도 남편도 잘 먹어 기뻤다. 밥을 먹인 뒤 그 둘을 내보냈다. 늘 그렇듯 밖에 나가기 싫다는 첫째를 설득해 남편이 데리고 나갔다. 나갈 땐 나가기 싫다, 들어갈 땐 들어가기 싫다, 첫째의 이 지겨운 레퍼토리는 언제쯤 끝이 날까. 휴우- 정말 쉽다가도 어려운 아이다. 막상 나가서는 아빠랑 즐겁게 잘 놀고 올 거면서 꼭 그런다. 


둘이 나간 뒤엔 친정엄마가 집에 오셨다. 둘째 맘마도 먹이고 이야기도 나누며 얼굴을 익혔다. 난 그 사이 샤워도 하고 간단히 장도 봐오고 자질구레한 다른 집안일들도 할 수 있었다. 첫째와 아빠는 재밌게 노는지 인증 영상들이 전달된다. 오후 5시쯤 귀가한 남편은 올림픽공원에 임영웅 콘서트를 하고 있다는 정보를 주었다. 우리 엄마는 임영웅을 좋아한다. 마침 티빙에서 생방송 중계 중이라 엄마를 위해 임영웅 콘서트를 틀어주었다. 엄마는 임영웅 콘서트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는 것에 너무 기뻐하며 콘서트가 끝나는 8시까지 집에 계시다 가셨다. 그 사이 시어머니도 집에 오셨다. 어머님은 오늘 주무시고 내일 둘째 돌보기를 도와주시기로 했다. 남편은 육아휴직까지 하고, 조부모님들은 원할 때마다 집에 와주시고. 난 참 복이 많다.  


아이들은 저마다의 귀여움을 뽐내며 할머니의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 첫째는 영특함으로 둘째는 아기 만의 풋풋함으로 매력을 어필했다. 밤이 되었다. 이제는 잘 시간이다. 난 첫째를 재우고 남편은 둘째를 재우고 지금 다시 육퇴 시간이다. 오늘은 우리 둘 다 12시 전에 자기로 했다. 잘 자야 잘 놀고 육아도 잘할 수 있다.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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