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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내누 Aug 15. 2022

부모와 부모님 사이

우리들의 해방일지: 남편 52일째

8월 14일 일요일 흐림


친구가 갑작스러운 장인상을 당했다. 이런 날에는 문득 부모님과의 관계를 떠올려보게 된다.


사실 나는 20대에는 부모님과 사이가 정말 좋지 않았다. 크게 싸우고 1년 간 본가에 가지 않았던 적도 있다. 그러다 30대가 되고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고 키우면서 부모님과의 관계가 180도 달라졌다.


이런 변화의 이유는 세 가지 정도인 것 같다.


우선 첫 번째는 경험이다. 원래 사람은 다들 부모님에 대해 감사하며 산다. 하지만 막연히 길러주신 은혜가 크다고 생각은 해도 그게 얼마나 감사할 일인지 체감적으로 잘 와닿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부모가 되어서 애를 키우게 되면 뼈저리가 경험한다. 아기 하나를 사람으로 길러내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일인지를. 내가 아이들에게 쏟는 사랑과 희생을 나에게 베풀어준 우리 부모님이 이만큼 힘들고 어려운 것을 해내신 거였구나. 이런 마음이 저절로 든다.


 번째는 용서다. 원래 사람들은 부모님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지만 대개 한켠에 서운함도 품고 있다. 어린 시절 혹은 학창 시절에 부모님께 정말 억울하게 크게 혼났다거나, 심한 말을 듣거나 체벌로 훈육을 당했던 기억 하나쯤은 흔한 일이다. ‘우리 부모님은 나를 사랑하지 않아친부모님이 아닐  같아라고 생각하며 베개를 적시는 날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녀를 키우면서 깨닫게 되는  부모는 슈퍼맨도 아니고 성인군자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쉽게 말해서 내가 5 때의 부모님은 바로 지금의  정도의 젊은이다. 당연히  엄청 대단하게 깨달음을 얻은 인간도 아니고 그냥 애가 있는 젊은 아빠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러니까 우리 부모님도 나처럼 그냥 어쩌다 화도 나고 짜증도 나는  당연했던 거다. 힘든 날도 있었을 것이다. 중고등학교 시절의 부모님도 마찬가지다. 지금 내가 이대로 10년이 지난다고 갑자기 해탈하여 성인군자가 될까? 10년이 아니라 20 30 지나도 그럴  같지는 않다. 우리 부모님도 나처럼 그냥 보통의 존재였던 거다. 자식 때문에 참을 인자를 새기는 순간 반대로 부모님이 나를 서운하게 했던 일들도 용서할  있다.


세 번째는 협동심이다. 요즘 세상에서는 자녀를 키우려면 많든 적든 부모님의 도움을 받게 된다. 때론 부탁하기가 죄송할 때도 있고, 양육 방식에 이견이 있다면 트러블이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부모님과 내가 나의 자녀를 잘 키운다는 공동의 목표를 가진 ‘원 팀’이 된다는 사실이다. 물론 내 자녀는 나와 아내의 피가 반씩 섞여 탄생한 사람이다. 그러니까 뭘 해도 이쁘고 내가 온 힘을 다해 키운다. 그런데 부모님을 기준으로 해도 우리 애들은 피를 1/4씩 물려받은 혈육이다. 그분들 입장에서도 그냥 ‘내 자식이 낳은 아기’라 마지못해 돕는 게 아니라 손자 손녀라서 그렇다는 거다. 부모님과 장인 장모님도 나만큼이나 우리 첫째와 둘째가 잘 되기를 바란다. 애들이 지금처럼 잘 자라준다면 협동심은 커지고 가족이 화목해질 것이다.


오늘 저녁은 오랜만에 장모님과 우리 어머니가 동시에 우리 집에 계시는 시간이 있었다. 오후에 놀러 오신 장모님께 티빙으로 임영웅 콘서트를 틀어드려서 그걸 보다가 늦게까지 계신 사이에 내일 우리 부부가 첫째를 데리고 외부 일정을 갔다 올 동안 둘째를 봐주기로 한 우리 어머니가 집에 오셨다. 첫째는 양쪽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워낙 좋아하고 사랑받는 존재다. 둘째는 41일 만에 아주 무럭무럭 잘 크고 있다. 양가 부모님들은 우리 애들이랑 있으면 입꼬리가 내려갈 줄을 모른다.


우리 부부가 대단한 효자 효녀는 아니지마는…이런 손자 손녀를 보게 해 드렸으니 우리 부부도 효도는 할 만큼 한 게 아닌가 싶다.


그나저나 오늘은 오랜만에 엄마 옆에서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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