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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내누 Aug 15. 2022

우리들의 행복한 외출

우리들의 해방일지: 아내 53일째

8월 15일(월) 비 올 듯 말 듯 선선


광복절 연휴다. 어머님 찬스로 정말 오랜만에 첫째와 남편과 내가 모두 함께하는 외출을 하게 됐다. 아무래도 첫째 맞춤형 외출이 좋을 듯하여 판교 현대백화점의 어린이 미술관에 가기로 했다. 첫째에게도 어젯밤 미리 얘기해 두었기에 아침 일찍 출발할 수 있었다.


미술관 오픈 시간은 오전 10시. 우리는 9시 10분쯤 집을 나섰다. 길도 막히지 않았다. 백화점 개장 전 여유롭게 주차장에 도착하여 미술관에 들어갔다. 여러 미술 작가들의 전시를 모아놓은 주제였는데, 미취학 아동들이 한참 관심 있어할 숫자나 알파벳을 주제로 한 책과 삽화들이 많았다.


우리 첫째는 돌을 지나고서부터 부쩍 숫자와 알파벳 등의 활자에 대한 관심이 지대했다. 할아버지가 사주신 듀플로 레고에 쓰여 있던 글자를 보며 숫자와 알파벳을 금방 인지하게 됐다. 그리고 맞벌이하는 나와 남편 대신 주양육자가 되어주신 우리 엄마(외할머니)와 달력도 읽고 낱말 카드도 보면서 알파벳, 숫자, 한글까지 금방 익혔다. 아이에게 글자란 그야말로 '놀잇감'이었기 때문에 이 아이는 지금도 알파벳을 참 좋아한다.


그런 첫째에게 오늘 전시란 맞춤형 공간이었다. 그림책 속의 abc와 숫자를 찾아내고 abc를 한 글자씩 잘라 콜라주를 만들며 이곳에서의 시간을 맘껏 즐겼다. 그동안 이런 전시나 체험 공간을 적극적으로 알아보고 데려 다닐 만큼 부지런하진 않았던 게 미안할 만큼 첫째는 정말 신나 했다.


점심을 먹고 두 번째 놀이장소로 이동했다. 웹 서칭을 하다 좋아 보여 내가 예약한 아이들 놀이공간이다. 어른들은 밖에서만 지켜보고 아이들만 들어가서 선생님과 한 가지 주제로 놀이를 하는 곳인데 오늘의 주제는 '공룡'이었다. 막상 놀이가 시작되니 '공룡'과 크게 관련 있는 놀이를 하는 것 같진 않았지만 부모에게 한, 두 시간의 휴식을 선사하고 아이에겐 즐거운 시간을 선물한다는 점에서 괜찮은 선택이었다. (재방문 의사는 없지만) 흙 수업과 체육 수업을 했는데 체육 수업에서의 우리 아이 텐션은 이 세상 것이 아니었다. 20대 청년 선생님과 다섯 살쯤 돼 보이는 남자아이 셋이 하는 에어 바운서 놀이는 세상 즐거운 미끄럼틀의 무한반복 루틴이었다. 아이는 끝나고 나오자마자 아쉬웠는지 "심심해"라며 칭얼댔지만 곧 진정하고 얌전히 귀가 차량에 올라탔다. (놀이가 끝나서 아쉽다는 것을 '심심해'라고 하는 듯하다)


그리고 집에 올 때까지 신나고 즐거운 텐션 그대로를 유지하며 집에 와서도 무탈히 샤워와 저녁식사를 마치고 쿨쿨 잠에 들었다. 첫째가 평소 가끔 말도 안 되는 떼를 쓰는 적도 있는데 오늘은 그런 것도 없었다. 그저 엄마, 아빠와 함께 외출하게 된 지금을 최선을 다해 즐기겠다는 듯 진심으로 즐겼고 감사해하는 것 같았다.


상황이 달라지면 사람은 자연히 성장하나 보다. 예전엔 당연했던 이 외출이 오늘 우리 세 가족에겐 너무 특별하고 소중해서 모두들 서로의 기분을 거슬리지 않으려고 조심조심 배려하기에 바빴다. 이렇게 우리들의 동반 길이 늘 특별하고 소중하게 된 것은 둘째의 덕이 크다. 앞으로 둘째가 외출이 가능할 만큼 커서 우리가 네 식구로 좀 더 많은 나들이를 다니더라도 이런 특별함을 소중히 기억하고 유지하도록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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