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의 데이트

우리들의 해방일지: 남편 59일째

by 디내누

8월 21일 일요일 덥고 흐리고 빗방울 조금


주말에 아이 둘을 하루 종일 집에서 데리고 있는 것은 회사 다니는 것보다 힘들다. 그래서 우리는 얼마 전부터 주말엔 되도록 한 명이 첫째를 데리고 나가고 한 명이 집에서 둘째를 보면서 1대 1로 대인방어를 하고 있다.


오늘은 내가 외출 담당이었다. 더운 날씨, 비어 가는 냉장고, 조만간 있을 둘째 50일 촬영과 다가오는 가을을 생각해 장보기와 쇼핑을 하기로 정했다. 사실 어찌 보면 아이 입장에서는 노는 것도 아니고 재미있을만한 구석이 없는 계획이지만 그래도 첫째는 순순히 따라나섰다. 이렇게 아빠와 아들의 데이트가 시작됐다.


사실 우리 첫째는 엄마를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긴 해도 소위 말하는 '엄마 껌딱지'는 아니다. 물론 집에서는 계속 엄마를 찾거나 뭘 할 때마다 엄마와 하고 싶어 하긴 한다. 하지만 엄마가 놀아줄 수 없는 상황이면 혼자서도 책을 보거나 놀이를 하면서 시간을 잘 보낸다. 외출할 때도 아빠랑 둘이 나가는 것에 전혀 거부감이 없다. 오히려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다. 아빠랑 나가면 차나 자전거 뒷자리에 타고 다닐 수 있어서 편하고 아빠랑만 할 수 있는 재미있는 경험들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와 아내가 공통적으로 느끼는 점은 혼자 데리고 나가면 첫째가 말을 정말 잘 듣는다는 것이다. 묻는 말에 대답도 잘하고, 하자고 하는 것에 대해 토를 달거나 떼를 쓰는 일도 거의 없다. 집에 있을 때나 둘이서 데리고 다닐 때와 무엇이 달라서 이런 지 꼭 파악해서 써먹어야 하는데 아직 정확한 이유는 알아내지 못했다. 대신 오늘 데이트를 하면서 아들을 관찰하다 보니 이 녀석의 몇 가지 특징은 알 수 있었다.


- 우리 아들은 나를 따라 한다

원래 모든 아들에게 있어서 아버지는 동경의 대상이면서 라이벌이다. 하지만 둘이서 다니면서 우리 아들이 정말 나를 똑같이 따라 한다는 걸 체감할 수 있었다. 나는 에스칼레이터를 타면 한 손으로 손잡이를 잡고 한 칸 위에 발을 올리고 짝다리를 짚고 삐딱하게 서는 습관이 있다. 근데 오늘 첫째가 나를 유심히 보더니 발을 한 칸 위에 딱 올리면서 똑같은 자세를 취하는 것이 아닌가. 나를 통해 세상을 보고 나의 행동, 말투, 습관을 일부러든 무의식 중에든 따라 하면서 결국 닮아간다. 단점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서는 나부터 고쳐야 한다.


- 우리 아들은 자기 주도적인 성향이 강하다

애들이 네댓 살 정도 되면 원래 할 줄 아는 게 많아지면서 뭐든지 다 자기가 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 첫째는 이런 성향이 꽤나 더 강한 것 같다. 아이와 옷을 사러 다니면 당연히 부모가 입혀보고 비교해 보는 게 당연한 일이다. 근데 얘는 일단 디자인이나 색깔에 선택권을 줘야 한다. 게다가 오늘은 심지어 자기가 혼자 옷가게 탈의실에서 입고 나오겠다는 게 아닌가. 다섯 살 주제에. 처음엔 황당했지만 딱히 안된다고 할 이유도 없어서 그러라고 했다. 자기 혼자 입고 나와서 거울을 보는 애를 옷가게 직원분도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 우리 아들은 계획대로 하는 걸 좋아한다

오늘 출발 전에 쇼핑리스트를 종이에 써서 갔다. 내가 MBTI에서 J의 성향이 강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혼자 애를 데리고 그런 쇼핑몰에 가는데 뭘 살지 미리 딱 정해놓지 않으면 우왕좌왕하고 시간낭비를 할 것 같아서였다. 근데 첫째는 이런 성향을 그대로 닮아서 마트에서 카트에 태우고 그 종이를 줬더니 내가 물건을 하나 담을 때마다 남은 쇼핑리스트가 뭔지 읊어주기 시작했다. 자기 먹고 싶은 걸 사달라고 떼를 쓰기는커녕 목록에 없는 걸 사려고 하면 그건 리스트에 없는데 왜 사냐고 나무라기도 했다.


- 우리 아들은 긍정적이다

리스트만 생각하면서 물건을 막 담다 보니 어느새 카트가 가득 차서 넘칠 지경이었다. (실제로 나중에 계산해보니 19만원 어치였다...) 혼자 애를 데리고 온 것 치고는 너무 짐이 많아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차에 실을 때나 집에 갖고 올라가는 것이 가능할까 머릿속으로 각을 재며 시뮬레이션을 해봤다.


"휴우- 우리 너무 많이 사서 아빠가 다 못 들 것 같은데 어떻게 하지?"

어떻게든 되겠지 생각하면서도 농담 반 진담 반 말하자 첫째는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도와줄게! 다 못 들면 하나씩 하나씩 옮기면 되지!"


- 우리 아들은 나를 친구처럼 대한다

장보기와 쇼핑을 하고 집에 물건을 올려두고 나서 약간 더위가 꺾인 시간에 다시 밖에 나왔다. 새로 산 킥보드를 타보자는 구실이었는데, 사실 신체활동을 더 해서 힘을 빼놓고 아내에게 약속한 대로 저녁시간까지 나갔다 오기 위해서였다. 놀이터에서 킥보드를 한참 타다가 아이스크림을 먹자고 꼬셔서 좀 더 떨어져 있는 공원까지 갔다. 1+1 행사 아이스크림을 사서 각자 하나씩 먹는데 첫째는 나보다도 더 빨리 먹어치웠다.


"아빠. 이거 (내 아이스크림) 남은 거 나랑 나눠 먹을까?"

"아니ㅋㅋ 똑같은 거 하나씩 먹는데 이걸 나눠 먹으면 너만 더 많이 먹는 거잖아ㅋㅋ"

"그럼 빨리 먹어~~!"


더 달라는 것인 줄 알았는데, 그런 생각도 있긴 있었겠지만 결론은 핸드폰 하지 말고 빨리 먹으라는 거였다. 장보기와 쇼핑과 아이스크림 나눠먹기. 뭔가 연인이나 부부끼리 할법한 데이트를 아들과 하는데 나름 재미가 있었다. 얼른 커서 쏘주 한잔 하자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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