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디내누 Sep 06. 2022

보통의 육아  

우리들의 해방일지: 아내 75일째 

9월 6일(화) 태풍이 지나간 뒤 맑음


태풍이 서울을 비껴갔다. 너무 다행스러운 일이다. 첫째의 유치원은 교육청 지침에 따라 휴원했다. 하지만 정규 과정을 안 하는 것뿐이지 원하면 등원할 수 있었다. 첫째는 아빠의 자전거를 타고 즐겁게 등원을 했다. 집에는 나와 둘째가 남았다. 아빠는 오빠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수영을 하고 올 거다. 그 사이 둘째가 순둥 하게 낮잠을 자면 최상의 시나리오가 될 수 있다. 


모로 반사가 심한 둘째는 오늘 낮부턴 속싸개를 싸지 않고 지내보기로 했다. 밤마다 속싸개로 동동 싸매진 팔을 빼겠다고 갖은 용을 다 쓰는 둘째가 안쓰러웠다. 생각해보면 팔을 움직이고 싶은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누가 내가 잘 때마다 두 팔을 꽁꽁 못 움직이게 싸맨다 생각하면 얼마나 괴로울까? 하지만 모로 반사로 엉엉 울며 좀처럼 잠에 들지 못하는 둘째에겐 자신의 팔과도 적응할 시간이 필요한 게 틀림없었다. 


맘마 먹고 기분 좋은 상태에서 엄마와 단 둘만의 시간을 보낸 둘째는 햇빛 샤워를 받으며 거실에서 나른하게 낮잠을 잤다. 비록 두 팔이 움직일 때마다 조금씩 깼다 다시 잠에 들곤 했지만 말이다. 그 사이 나는 이런저런 집안일을 마칠 수 있었다. 


귀가한 남편과 점심을 먹은 뒤 도서관에 갔다. 첫째를 위한 책 몇 권을 빌리고, 나를 위한 책도 읽었다. 요새 열심히 읽고 있는 <엄마 심리 수업> 책을 마무리했다. 이 책은 너무나 큰 교훈을 준 책이고, 잊을 만하면 다시 꺼내 읽고 싶을 만큼 좋은 책이라 구매 생각까지 했다. '엄마 냄새'에 대한 생각, 아이의 자발성이 얼마나 중요한 지, 입말과 맘말, 엄마의 무의식이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 환상에 불과한 애착 이론 등 여러모로 나의 육아를 편안하고 긍정적으로 변하게 해 주었다. 얼마 남지 않은 <엄마 심리 수업>을 마저 읽고 집에 돌아왔다. 


이제 아빠는 첫째 하원을 시키러 나가고, 다시 나와 둘째 둘만의 시간이다. 이제 눈만 마주치면 씩 웃는 애교쟁이 둘째와 눈 맞춤 놀이도 하고, 다리 운동도 하고 둘째의 역방쿠 옆에 살포시 누워 같이 모빌을 봤다. 이 아이가 보는 세상은 이런 세상이구나. 둥실둥실 떠다니는 흑백의 모빌을 바라보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눈이 살살 감긴다. 그렇게 둘째와 나란히 누워 살짝 낮잠을 잤다. 


어느새 첫째가 집에 올 시간이다. 오늘도 놀이터에서 거하게 놀고 아빠와 집에 온 첫째. 오늘은 유치원에 가지 않은 친구들이 많았는데 남편이 그들 중 누구누구는 함께 낮에 모여 놀았다더라, 당신도 엄마들과 더 자주 교류하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그런데 그 말이 왜 이렇게 듣기 싫은지, 신경질이 팍 났다. 다른 엄마들과 비교당한 것 같은 느낌이 싫었고 굳이 어색하게 동네 엄마들과 지금 이상으로 친해져야 하는 게, 특히 이미 친해진 그룹에 뒤늦게 내가 끼어들어가야 하는 게 부담스러워 거북했다. 남편에겐 알았다고 했지만 정말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런 기분도 잠시, 첫째와 둘째 먹이고 씻기고 재우느라 오늘 저녁도 다 갔다. 다행히 첫째의 취침 시간이 둘째가 태어난 이후로 점점 더 당겨지고 있다. 원래 우리 첫째는 10시쯤에도 잠에 들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보통 9시 30분까지 놀다가 치카를 하고 책을 읽고 10시쯤 불을 끄는 게 다반사였다. 그러나 둘째가 집에 오면서 둘의 수면 시간을 9시 취침 7시 기상을 잡아가기 위해 남편과 애쓰고 있다. 이를 위해 첫째의 실내 집안 놀이는 대폭 줄였고 대신 밥 먹고 살짝 논 뒤 치카와 책 읽기까지 모두 9시 전에 마치는 걸 목표 삼고 있다. 물론 지켜지지 못하는 날도 많지만 이제 대부분 10시 이전에 두 아이의 취침이 완료된다. 


오늘도 수고했다. 이제 나의 시간이다. 눈에는 졸음 한가득이지만, 잠깐이나마 나를 위한 시간을 알차게 쓰고 잠에 들어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팔을 움직일 자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