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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내누 Sep 07. 2022

타임 리미트는 4시간

우리들의 해방일지: 남편 76일째

9월 7일 수요일 맑고 맑음


태풍이 지나가고 어제부터 환상적인 가을이 시작됐다. 정말 집에만 있기엔 아까운 날씨다. 여기에 내가 월화목금 수영에 다니기 때문에 다른 외부 스케줄은 되도록 수요일에 소화하고 있다. 마침 둘째가 또다시 예방접종을 해야 하는 시기라 아내와 둘째를 데리고 외출할 계획을 세웠다.


사실 예방접종은 걸어서 갈 수 있는 동네 병원에서 해도 된다. 하지만 아내는 전에 조리원 퇴소일에 BCG 예방접종을 했던 병원이 썩 마음에 들었던 모양인지 그곳을 가고 싶어 했다. 내 기억으로도 명의 포스의 베테랑 의사 선생님과 친절하고 능숙한 간호사들이 있는 곳이다. 걸어서 갈 순 없지만 그래 봐야 차로 10분 거리다. 차로 가려면 번거롭지만 대신 병원 다음 코스를 좀 더 다양하게 생각할 수 있다.


대략 10시 반쯤 분유를 먹이고 기저귀 가방에 짐을 챙겨 집을 나섰다. 신생아는 잠깐만 외출해도 가져갈 것이 많다. 일단 가장 기본인 기저귀와 가제손수건과 물티슈를 넉넉히 챙겼다. 만약을 대비해 여분의 옷과 속싸개도 담고 쪽쪽이도 2개, 여분의 손싸개도 하나 더 넣었다. 사실 대부분은 사용 안 할 수도 있는 것들이지만, 밖에서 갑자기 필요해지면 속수무책이다. 첫째 때는 방심하고 덜 챙겼다가 크게 당황했던 적이 몇 번 있었다.


근데 사실 이 정도면 굉장히 최소한의 짐만 챙긴 것이다. 밖에서 분유를 먹이려면 적당한 양의 분유, 적정한 온도의 물을 담은 보온병을 챙겨야 하고 당연하게도 젖병도 챙겨야 한다. 그치만 오늘은 출발 직전에 먹이고 다음에 먹을 시간 전에 돌아올 것이므로 생략했다. 우리 둘째는 요즘 낮에는 4시간 간격으로 먹고 있으므로 오후 2시 반까지만 집으로 오면 충분하다는 계산이다.


우선 소아과에 들러 예방접종을 했다. 오늘은 주사 2방에다 먹는 약까지 총 3가지 예방접종을 한 번에 하는 날이다. 우리만 너무 무리하게 하는 게 아니라 원래 다 그렇게 하는 접종이다. 물론 아기 입장에서는 좀 힘들 것 같기는 하다. 둘째는 한쪽 허벅지에 한 발씩 주사를 맞을 때마다 "애앵~" 하고 매섭게 울었지만 잠깐 의사 선생님과 대화를 하는 사이에 금세 그치고 먹는 약을 맛있게 쩝쩝대며 먹었다. 아내는 울음 끝이 길지 않은 걸 보니 순한 애일 것 같다고 미소를 지었다.


주사를 맞느라 고생해서인지 둘째는 차에 타자마자 잠에 들었다. 계획대로 다음 행선지인 맥도날드DT로 향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특히 드라이브 스루를 즐겨 이용한다. 대부분 아기들은 차의 진동으로 카시트에서 잘 자는 편이다. 외출을 했을 때 애를 데리고 식당에 가서 고생하느니 맥도날드와 스타벅스 드라이브 스루를 이용하면 쉽고 맛있게 밥과 커피를 해결할 수 있다. 우리 원래 계획은 맥도날드DT 주차장에서 햄버거를 먹고 다음 코스로 스타벅스DT를 들러서 드라이브를 하다가 집에 가는 것이었는데, 주차장에 자리가 없었다.


집 주차장에서 먹어야 하나 생각하다가 근처에 있는 올림픽공원에 가기로 했다. 결과적으로 이게 신의 한 수였다. 둘째가 푹 잠든 사이 주차장에서 음악을 들으며 햄버거와 감자튀김을 맛나게 해치우고 시계를 보니 아직도 12시 반밖에 되지 않았다. 시간도 넉넉하고 날씨가 워낙 좋아서 산책을 하러 나섰다. 아기띠 안에서 쿨쿨 자는 둘째를 안고 아내와 올림픽공원 8경 중 하나인 '들꽃마루'를 거닐었다. 환상적인 파란 하늘에 언덕과 언덕 사이가 들꽃으로 채워진 전경이 그야말로 일품이었다.


찍는 사진마다 작품이  정도의 멋진 경치를  보고 둘째는 계속 잠만 자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같이 육아휴직을 하고 있다. 아직 당분간은 평일 낮에도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올림픽 공원이든 어린이 대공원이든 한강공원이든   있다. 둘째에게 자연경관을 보여주는  다음으로 미루기로 했다.


한참 잔뜩 경치를 즐기며 산책을 다니다 보니 어느새 오후 2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약간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와서 아기 침대에 눕히자마자 둘째가 "앵~" 하고 울면서 깨어났다. 배꼽시계가 울린 것인지 등 센서가 작동한 것인지 모르지만 어쨌든 4시간 안에 돌아왔으니 문제없다.


"집에 오자마자 우는 걸 보니 집순이는 아닌가 봐~ 밖에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겠어"

아내가 분유를 타면서 말했다. 아무래도 올 가을은 첫째가 유치원에 있는 사이에 셋이서만 마실을 많이 다니게 될 것 같다. 다음번에는 4시간의 타임 리미트 없이 자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게 준비를 해야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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