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디내누 Sep 05. 2022

팔을 움직일 자유

우리들의 해방일지: 남편 74일째

9월 5일 월요일 태풍 힌남노 북상 중


둘째가 태어난 지 어느덧 63일째가 됐다. 만 2개월이 넘었다. 그 사이 많이도 컸다. 몸무게는 약 1.7배가 되었고 키는 최근에 정확히 재보진 않았지만 이제 아기 침대에 세로로 눕히면 발이 입구에 거의 닿는다. 이렇게 컸는데도 계속 처음처럼 한 손으로 들고 목욕을 시키다가 허리에 무리가 와서 병원에 가봐야 할 것 같다.


사실 오늘은 태풍의 영향으로 하루 종일 비가 와서 집에만 있었고 일기에 쓸만한 소재도 딱히 없었다. 요즘 아내와 나는 분업을 꽤 체계적으로 해서 전보다 부딪힐 일도 줄고 첫째도 안정적인 하루 일과를 보내게 됐다. 아내가 등원 담당이고 내가 하원 담당이다. 저녁시간은 원래 함께 보내지만 오늘은 하원 후에 비가 와서 친구 집에 가서 놀고 저녁까지 먹고 왔다. 애들 재우는 건 아내가 첫째 취침, 내가 둘째 취침 담당이다.


그런데 오늘따라 둘째를 재우는 데 꽤나 고생을 했다. 비가 와서 시끄럽고 습도가 높아서인지 계속 머리를 좌우로 움직였고, 속싸개로 싸놔서 움직이지 못하는 팔을 빼려고 계속 용을 썼다. 팔을 싸매는 이유는 신생아 모로 반사 때문에 자기 팔에 깜짝 놀라거나, 잘 컨트롤하지 못하는 본인 손이 얼굴을 짓누르고 잠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불과 지난주까지만 해도 재우는 타이밍에 분유를 먹이고, 트림을 충분히 하고, 약간의 빛이 있는 깜깜한 상태에서 백색소음기를 파도 소리로 틀어준 뒤에 팔을 꽉 싸 동여 매 주면 쉽게 재울 수 있었다. 특히 오늘은 낮잠을 그리 많이 안 잤기 때문에 더 금세 잘 줄 알았는데 40분이 넘게 계속 뒤척였다.


뒤척이는 애 옆에서 나도 가만히 있는 게 아니다. 재우기 위해서 불편해하는 것을 해결해주려고 다양한 시도를 한다. 트림을 다시 시키고, 쪽쪽이를 다시 잘 물려주고, 속싸개가 느슨하지 않게 다시 꽉 싸준다. 하지만 오늘은 팔을 꽉 붙들어 맬수록 어째 더 끙끙대고 못 자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마치 탈출 마술을 하는 것처럼 아무리 꽉 싸매도 어떻게든 움직여서 한쪽 팔을 빼냈다. 그럴수록 나는 더 절대 빠지지 않게 팔을 차렷 자세로 만들고 속싸개를 돌돌 말아 꽉 조였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 저항만 커질 뿐이었다.


생각을 고쳐먹고 팔을 풀어줬다. 그렇다고 아예 풀어놓을 수는 없어서 안에서 충분히 팔을 움직일 수 있지만 손을 빼서 얼굴을 만질 수는 없도록 제작된 '에르고 파우치' 안에 넣어주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발차기를 시작한다. 우리 둘째는 유별나게 발이 답답한 걸 싫어한다. 속싸개로 싸놓을 때도 발은 꺼내 줘야만 했었다. 대체 누굴 닮아서 아기가 발에 뭘 싸놓는 걸 싫어하는가 하면 바로 나다. 나는 한겨울에도 맨발에 쓰레빠를 신고 다닐 정도로 발이 답답한 걸 못 참는다. 파우치 지퍼를 살짝 열어서 발만 나오게 살짝 꺼내 주자 그제서야 수면 모드가 시작됐다.


부모가 자녀를 완전히 통제하기 위해 옴짝달싹 못하게 할수록 아이는 반항심만 커지기 마련이다. 물론 신생아를 속싸개로 싸놓는 건 한동안은 불가피하고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그치만 사실 첫째 때 통잠을 잤을 때의 상태가 잘 기억나진 않아도 어쩌면 통잠의 기적은 자기 손 때문에 깨더라도 팔을 마음껏 움직여서 스스로 모로 반사를 극복할 수 있도록 '자유'를 제공한 부모에게 더 빨리 찾아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이전글 언어의 온도, 가족의 주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