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디내누 Sep 16. 2022

바람과 욕심, 기대와 걱정 사이

우리들의 해방일지: 남편 85일째

9월 16일 금요일 하루종일 기를 모아 저녁에 쏟아붓는 비


부모라면 누구나 자녀가 뭐든지 잘 해내길 바란다. 다섯 살이면 아직 아기 티를 벗지 못한 나이지만, 이제 집이 아닌 다른 교육 기관에서 보내는 시간들이 늘어나고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질수록 부모도 새로운 것을 가르치고 싶어지고 여러 기대치라는 것이 생기기 마련이다.


오늘은 첫째가 수영에 가는 날이었다. 키즈 수영장은 보통 주 1회 정도 수업을 하는데, 지난주는 추석 연휴라 2주 만에 가는 것이다. 사실 신체적인 능력으로 보면 아무리 독립심이 강하고 물을 좋아하더라도 다섯 살에 수영을 배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서너 번의 수업을 하는 동안 첫째는 기대 이상으로 즐거워했고 잘 적응했다. 아내와 나는 역시나 태몽이 고래여서 그렇다고 생각하며 대견하고 뿌듯한 마음이었다. 첫째 역시 수영장에 가는 날이면 친구들에게 의기양양하게 수영장 간다고 자랑하며 유유히 떠나곤 했다.


그랬기에 오늘 아침 유치원 등원 준비를 하는데 잔뜩 심각한 얼굴로 첫째가 수영장에 안 가고 싶다고 말하자 아내와 나는 적지 않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하기 싫었는데 지금까지 억지로 한 것이었나? 다섯 살에 하기에는 너무 무리인 것을 성급한 마음으로 욕심을 부렸나? 불안한 걱정과 함께 후회가 밀려왔다.


다행히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보니 수영 자체가 싫지는 않은 것 같았다. 키즈 수영장은 부모가 아니라 선생님들이 탈의실과 샤워실 이용을 도와주는 시스템이다. 같은 타임에 다니는 여러 명의 아이들이 한꺼번에 들어간다. 그런데 샤워할 때 다른 형아들 때문에 부끄럽고 선생님이 차가운 물을 틀어서 힘들었다는 것이었다. 그런 이유라고 하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치만 그냥 하기 싫다고 하면 혼날까 봐 다른 이유를 지어내서 말하는 것일 수도 있고, 이유가 뭐가 됐든 가기 싫어진 이상 억지로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일단 유치원 등원을 시키고  아내와 걱정스레 상의를 했다. 우리의 결론은 첫째의 의사를 존중해주자는 것이었다. 아이가 이렇게 명확하게 의견을 말했는데 그냥 무시할 수는 없다. 다만 수영을 하는  재미있고 좋은데, 샤워실만 불편한 것이라면 그건 해결할 수가 있을  같았다. 수영 선생님에게 확인하니 물만 닦고 나가서 샤워는 집에서 해도 된다고 했다. 다섯  애들은 그런 경우가  있고   애들도 피부가  좋거나 예민한 타입은 집에 가서 씻는다는 설명을 들으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부모 마음은 참 이중적이다. 내 아이가 특출나기를 기대하지만 한편으론 내 아이가 평범하기를 바란다.


유치원 하원 시간에 마음을 단단히 먹고 수영 가방과 함께 미리 준비해둔 마카롱을 챙겨서 집을 나섰다. 첫째는 유치원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수영장에 안 가고 싶다는 얘기부터 했다. 이렇게 싫은데 억지로 데리고 다녔나 한숨이 나오려고 했지만 그래도 아내와 상의한 대로 마카롱을 먹으면서 대화를 시도해봤다.


"혹시 수영 선생님은 좋아?"

"응!"

"그런데 수영하는 게 싫어?"

"아니~"

"그러면 그냥 샤워하는 데서 다른 형아들이 많아서 불편해서 가기 싫은 거야?"

"응~"

"그럼 다행이다! 아빠가 아까 엄마랑 이야기해서 수영 선생님한테 전화해서 물어봤는데, 샤워는 거기서  해도 된대! 집에 와서 엄마나 아빠랑 해도 된대!"


첫째의 표정이 약간은 밝아졌다. 그래도 오늘 가서 해보고 너무 싫으면 억지로 보내지 않을 거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하니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영장에 들어가는 순간까지 몇 번이나 다시 꼭 샤워는 집에 가서 한다고 말해달라고 확인을 하는 걸 보니 분명 거기서 뭔가 싫은 일이 있긴 있었던 모양이다.


아이를 들여보내고 걱정 어린 눈초리로 수영장 안을 지켜봤다. 이제는 내 손을 떠났다. 전문 교육기관과 선생님을 믿는 수밖에 없다. 초조한 마음으로 눈여겨봤지만 다행히 역시 이런 곳에 있는 사람들은 프로들이었다. 수업시간에도 평소보다 잘 배려하는 게 느껴졌고, 샤워실에서도 미리 말해둔 대로 물로 간단히 헹구기만 하고 옷만 갈아입고 평소보다 일찍 밖으로 내보내 주었다. 탈의실 앞에서 기다리던 나를 보자마자 약속한 알사탕을 달라고 하는 표정은 들어갈 때보다 꽤나 밝아져 있었다.


집에 돌아오니 아내가 현관으로 달려 나와 맞이하면서 나에게 눈짓을 보냈다. 같이 가서 직접 보지 못한 만큼 훨씬 불안하고 걱정이 되었을 것이다. 무사히 잘 해내고 왔다는 말에 마치 대학교에 합격한 것처럼 기뻐했다.


사실 어찌 보면 아이의 성장 과정에서 결국 꼭 필요한 교육들 외에 나머지는 결국은 부모의 어떤 바람과 기대감을 담고 있을 것이다. 앞으로도 어떤 사교육이라도 그게 부모의 과도한 욕심이 아닐지, 그로 인해 아이에게 역효과가 나타나 오히려 새로운 걱정을 몰고 오지는 않을지, 늘 신중해야 되겠다고 다짐했다.

작가의 이전글 잠자는 게 싫은 아이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