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해방일지: 아내 107일째
10월 8일(토) 화창한 가을날
오늘은 환상적인 가을 날씨였다. 하늘은 쾌청했으며 구름은 두둥실 떠다녔다. 얇은 티 한 장만 입어도 덥지도 춥지도 않았다. 이런 날씨에 주말 나들이 계획이 없다니. 평소 같으면 우울했을 테지만 요새처럼 먹구름 낀 육아 주간엔 어디에 가는 게 오히려 부담스럽다.
최근 나는 마음을 비웠다. 곧 유치원 설명회 기간이 다가오지만 어떤 유치원도 알아보지 않았다. 영어센터 수업에서도 선생님께 영어보다는 아이가 수업 중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거나 산만하게 행동하지 않도록 잘 봐달라는 말만 했다.
오늘 남편의 회사 동료 결혼식이 있어, 반나절 정도 독박 육아를 해야 했다. 감사하게도 친정엄마가 도와주시기로 해서 엄마와 오랜만에 점심을 함께 먹었다. 첫째를 다 먹이고 엄마와 따로 이야기를 나누는데 엄마가 말씀하셨다.
"애를 니 입맛대로 하나하나 다 맞추려고 하지 말아라. 너는 너고, 애는 애야. 사사건건 하지 말아라, 네 잔소리만 듣다가는 애 성격 다 버린다. 적당히 타일러 가르치되 유머러스하게 잘 넘기고 애한테 화내지 말아라. 걔는 그럼 더 엇나갈 뿐이야."
나도 다 아는 말이다. 누가 그렇게 하기 싫을까. 그래도 안된다고 나름 내가 겪는 고충도 토로했지만 한편으론 나의 훈육 방식을 조금 반성하게 되었다. 다름 사람이 하는 말이라면 모르겠지만 아이를 몇 년 간 봐주신 엄마가 하는 말씀이기에 더 귀담아듣게 된 것 같다. 안 그래도 그러려고 했는데 엄마 말을 들으니 더 수월하게 노력하게 됐다.
오늘도 아이가 점심 먹을 때, 샤워하기 전, 양치할 때 약간의 고비들이 있었다. 울기도 했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하지만 그 끝이 점점 짧아지고 있었고 시간을 주면 본인이 스스로 진정하고 나에게 다시 다가왔다.
'그래, 이 정도가 어디야. 더 욕심내지 말자.'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고 했다. 말로도 때리지 말아야 한다. 냉장고 앞 가족 공용 화이트보드에 이렇게 썼다.
"고운 말, 예쁜 말!"
사소한 걸로 실랑이하지 않고, 아이에게 더 자주 칭찬의 말을 해주고, 스킨십하는 나날이다. 그 사이 둘째는 알아서 혼자(가 아니라 남편이 잘 돌보면서) 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