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해방일지: 아내 111일째
10월 12일(수) 시원한 가을날씨
면허딴 지 14년. 접촉사고 경험 1번(나의 과실). 대형사고 경험 1번(상대 100% 과실).
그렇게 나는 장롱 면허가 되었다. 결혼하고 나니 남편이 거의 운전을 한다. 아이가 태어나니 더 그렇다. 남편이 운전할때도 속도가 좀 날 때, 다른 차가 끼어들거나 할 때. 무섭다. 운전이 무서운 것 뿐만 아니라 차에 타고 도로에 나가는 게 무서워졌다.
운전을 못한다는 게 나의 컴플렉스가 되어버렸다. 왜냐하면 운전을 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제 내 인생에 운전은 없어'가 아니라 '나도 운전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존재해서다.
그래서 연수를 받고 있다. 휴직의 좋은 점이다. 매주 수요일 2시간씩 4번을 받는다. 30만원이다. 비싸다. 그래도 받는다. 믿을만한 사람한테 추천받은 아주머니 강사다. 여러가지 팁을 배운다. 너무 돈을 거저 버시는 것 같지만 그래도 뭐. 지금 이 시간이 나에게 매우 소중하다.
오늘은 두 번째 연수 시간이었다. 인왕스카이웨이와 북악스카이웨이를 갔다. 운전을 하면서 멀미가 나긴 처음이다. 나보다 초보인 차를 한 대 추월했고 내 뒤에 따라 오는 차들을 먼저 보내주기도 했다.
사이드미러는 앞문 손잡이에 걸치게 보이면 된다고 배웠다.
핸들을 열심히 감았다 그대로 놓으면 자연스레 풀린다고 배웠다.
차선을 바꿀 땐, 사이드로 오는 차 한 대를 찍고 걔가 지나가자마자 바로 들어가면 된다고 배웠다.
차선 바꿀 때 핸들 너무 꺾지 말라고 배웠다. 옮기려는 차선에 앞바퀴 걸치면 그냥 앞으로 쭉 가기.
사각지대는 몸을 좀 숙이고 사이드를 보면 체크할 수 있다고 배웠다.
급코너를 돌기 전엔 속도를 충분히 줄여야 한다고 배웠다.
급코너를 돌땐 핸들을 충분히 감아야 한다고 (빨리 풀고) 배웠다.
핸들을 돌릴 땐 한 손으로 감고 반대 손으론 반대 쪽을 잡으라고 배웠다. (어깨 꺾어가며 돌리지 말라고)
규정속도를 잘 지키라고 배웠다.
뒷 차가 빵빵대도 조급해 할 필요 없다고 배웠다.
좌회전을 할 때는 금을 왼쪽 바퀴에 걸치며 가면 된다고 배웠다.
코너를 돌 때는 바깥 쪽 벽을 기준으로 넓게 돌면 된다고 배웠다. (안쪽만 의식하면 차가 올라타게 된다고)
네비는 티맵이 좋다고 배웠다.
적어놓고 보니 아줌마가 놀고 먹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두 스카이웨이를 돌고 오니 조금은 자신감이 붙는다. 이제 우리 집 차에 조금씩 적응해 가야겠다. 우리 집 차가 된 지 벌써 2년째지만 아직도 어색한 우리집 차.
사실 큰 사고를 한번 겪고, 그 차가 폐차 되고, 차가 바뀌면서 운전을 할 엄두도 내지 못하게 되었다.
그리고 엄마가 되고 나니 간이 쪼그라들은 것 같다. 운전뿐만 아니라 만사 쫄보처럼 소심해졌다.
운전을 하며 잃어버린 내 자신감을 되찾고 싶다.
이여사라 해도 괜찮다. 나도 한 때는 청년이었다. 다시 그때처럼 용기를 갖고 운전을 하자.
제주도를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