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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내누 Oct 20. 2022

나태지옥에서 탈출하라

우리들의 해방일지: 남편 119일째

10월 20일 목요일 생각보다 안 추운 아직 가을


일주일 동안 일기를 쓰지 않았다. 사실 바쁘거나 피곤해서 못 올린 것은 아니고 아내와 협의해 안 쓴 것이다.


대단하진 않지만 몇 가지 이유는 있었다. 일단 넷플릭스 <수리남> 정주행을 했다. 원래 매일 밤 일기를 쓸 때도 이야기를 하면서 쓰기도 하고, 얼른 쓰고 나서 영화나 드라마를 본 적도 많았다. 하지만 <수리남>은 각 에피소드 분량이 1시간이 넘고 다른 걸 하면서 보기엔 아까운 몰입도 높은 작품이었다. 그렇다 보니 일단 1화를 시작한 뒤로는 6화를 다 볼 때까진 매일 애들을 재우면 <수리남>을 보는 게 더 우선이 되어버렸다. 그나마 하루에 한 편 이상은 안 보고 늦게 자지 않은 것만 해도 우리의 자제력은 칭찬할 만하다.


그리고 또 문제는 일기 쓸 거리가 좀 없어졌다는 것이다. 사실 여기에 일기를 쓴다는 건 남들에게도 무언가 이야깃거리가 되거나 정보가 되는 내용이 있어야 할 텐데, 지난 110여 일간 매일 일기를 올리다 보니 최근에는 점점 소재가 고갈되기 시작했다. 반복적인 내용을 또 쓰기는 싫고 그렇다고 새롭고 신선한 아이템은 잘 떠오르지 않으니 점점 일기 쓰는 일이 부담이 되고 있었다. 뭘 쓸지 생각을 미리 해두지 못한 상태에서 일기를 쓰면 쓰는 데 시간만 오래 걸리고 재미도 없는 것을 억지로 쓰는 기분이 들었다.


이러한 연유도 있지만 또 근본적으로는 둘 다 너무 지친 상태인 것도 컸다. 우리는 그간 애들 키우랴 매일 일기 쓰랴, 그러면서 책도 읽고 집안일도 하고 유튜브도 만들고 참으로 부지런하고 바쁜 나날을 보냈다. 이제 둘째도 100일이 훌쩍 넘었고... 이 정도 고생했으면 술 한잔 하거나 쉬면서 편하게 며칠은 드라마나 보고 좀 놀아도 괜찮잖아? 이런 생각이 통했고 결론적으로 아내와 나는 나중에 제주도 한 달 살기를 앞두고 본격적으로 다시 일기를 쓰고, 그 전에는 뭔가 특별한 날이나 쓰고 싶은 게 있는 날만 일기를 쓰기로 협의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안일함은 바로 나태함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우선 나는 목 부상 때문에 수영장보다 병원에 가는 날이 더 많아지면서 아예 수영을 환불해버렸다. 사실 목의 상태가 상당히 좋지 않았으므로 이건 핑계는 아니고 진짜 치료가 우선인 것이 맞긴 맞았다. 그래도 어쨌든 매일 오전을 운동으로 채우던 것이 없어지니 자연스레 몸도 마음도 나태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일기도 안 쓰고 운동도 안 해서 덜 피곤한 만큼 적어도 유튜브는 열심히 만들어야만 했다. 그러나 그것도 아니었다. 요즘 약 7천 명에서 늘어나는 속도가 정체된 구독자 수와 조회수와 시청시간은 나의 동기부여를 떨어트렸고, 나태해진 마음은 이것도 느슨하게 하게 만들었다. 원래 처음 채널 개설 6개월간은 회사를 다니면서도 일주일에 3회 업로드를 했으며 그 이후로도 매주 1회는 꼬박꼬박 영상을 올렸었다. 그런데 이번 10월에는 아직도 2개밖에 올리지 않았다. 이번 주에도 진도를 아직 전혀 나가지 않았으니 올리기 쉽지 않아 보인다.


반대로 술을 마시는 날은 늘었다. 그리고 술을 마시면 당연히 안주로 야식이 빠질 수 없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고생한 우리에게 휴식을 준 것이 아니라 음주와 야식을 통해 수면 시간을 줄이고 살을 찌웠으며 그건 다시금 피로와 건강 악화로 이어졌다. 피곤하니 애들도 당연히 더 잘 놀아주기가 어렵다. 말 그대로 악순환이다.


웹툰과 영화로 나온 <신과 함께>에는 저승의 7가지 지옥이 등장한다. 그중에 '나태지옥'은 자신의 인생을 무위도식하며 허비한 죄를 심판하는 곳이다. 여기서는 회전하는 기둥에 깔리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달려야 한다. 기둥 3개가 계속 돌아가며 깔리고 피해도 끝이 없이 반복된다는 점에서 인생의 악순환을 형상화한 듯싶다. 결국 오늘의 나태함 내일의 나에게 고통을 주거나 미래의 나를 더 많이 달리게 만들 뿐이다. 다시 휴직 초반의 부지런한 나로 돌아가기 위한 첫걸음으로 우선 오늘의 일기부터 업로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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